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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진 Jan 13. 2019

적막한 비엔나의 밤을 붙잡으며

이제 더 이상 떠남이 두렵지 않은 여행자가 보내는 열 번째 러브레터

@Do&Co Bar, 오스트리아 비엔나


딱 한 잔만 더 하고 싶어요

비엔나 한인 민박을 예약하며 나눈 사장님과의 대화입니다.


김수진: 어디서 야경을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울까요?

사장님: 비엔나는 야경이랄 게 없어요. 밤에 아무도 나가지 않거든요.


농담일 줄 알았던 사장님의 말씀은 놀랍게도 현실이었습니다. 비엔나에 있는 대부분의 가게들은 해가 지면 칼같이 문을 닫더군요. 심지어 일요일에는 상점가 전체가 문을 닫아 점심 한 끼 먹겠다며 나선 저희를 당황시키기도 했죠. 


아무리 비엔나의 현실이 이렇더라도, 관광객으로서 매일 밤 착실히 숙소로 돌아갈 순 없지 않겠습니까. 여행지에서 만난 마음 맞는 친구와 딱 한 잔 더 하기 좋은 알코올 플레이스를 여러분께도 공유해볼까 해요.



슈테판 성당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 '도앤코(Do&Co)'

둘째 날부터 동행한 민박집 친구 'H'는 영국에서 일하고 있는 동갑내기였습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읊조렸던 '해외에서 일하고 싶다'라는 저의 꿈을 실천하고 있는 친구라니, 설레는 마음을 담아 먼저 인사를 건넸죠. 그녀는 영국 친구들이 알려준 비엔나 명소 몇 곳을 저에게 추천해줬는데, 그중 하나가 도앤코(Do&Co)였습니다. 


도앤코의 가장 큰 매력은 창가 자리 앉아 슈테판 성당을 마주 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어찌나 가까운지 불이 환하게 켜진 밤에는 타일 하나하나를 유심히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목이 아프도록 올려봐야 했던 성당을 마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곳의 가치는 높죠. 칵테일 한잔과 견과류 약간에 12유로 정도. 비엔나의 높은 물가 대비 나쁘지 않은 가격입니다. 


저희는 창가에 앉아 마치 오래된 친구인 양 이제 막 30대에 여자로서의 삶, 사회 초년 생을 갓 지나 진짜 일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 사회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이국 땅에서 당차게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그녀가 멋져 보였다가 안쓰러워 보였다가를 반복하길 수 차례. 우리는 그저 서로를 말없이 응원하기로 결론지었습니다. 다음 여행은 꼭 영국으로 오라는 그녀의 말과 함께요.


낭만적이면서도 노곤한 분위기에 자연스레 속 이야기를 흘러 보내고 싶다면,

주저 없이 도앤코 바를 방문하시길 추천할게요.




영국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펍 '캉구루(Kanguruh)'

비엔나에서의 마지막 밤. 이대로 보내긴 아쉬운 마음에 숙소에서 쉬고 있는 친구 'H'를 불러냈습니다. 딱 한 잔만 하자고요! 일 분 일 초라도 아껴보고자 숙소와 가까운 비엔나 서역 주변의 펍을 급하게 찾았습니다. 그중 가장 평점이 좋았던 캉구루로 결정. 어느새 정든 친구와 곧 헤어진다 생각하니 캉구루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집니다.


펍에 들어섰는데 마침 월드컵 경기를 중계하고 있습니다. 영국 도심 외곽으로 순간 이동한 느낌에 휩싸였지요. 뚜벅뚜벅 걸으면 나무 바닥이 삐걱댈 것 같은 브리티시 펍에 살며시 스며들어 봅니다.


다크 비어와 IPA를 한 잔씩 앞에 두고 어색하지만 서로 고마웠다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내일이면 비엔나를 떠나 각자로 어디로 향할 것인지도요. 마치 내일 헤어지지 않을 사람들처럼 가벼운 일상 토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유독 사람들과의 이별을 힘들어하는 사람인지라 그녀와 헤어진다는 사실이 무척 슬펐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존재조차 몰랐던 저의 퇴사를 격려해주고 앞으로 더 잘 될 거라며 용기를 불어넣어 줬을 만큼 따뜻한 그녀라 더욱 그랬겠죠. 여행이 끝나고 반년이나 흐른 지금도 해가 바뀌거나 여행 사진을 보다 그녀가 생각날 때 한 번씩 연락을 하곤 합니다. 그럼 그녀는 마치 옆 동네 사는 친구처럼 태연스레 답장을 해주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이가 지구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요즘. 

오늘 한번 더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여행지에서의 한 시간이 일상의 하루와 같다고 생각해요. 여행을 마치고 일상에 복귀해서도 그 시간을 몇십 번씩 곱씹게 되니까요. 혹시 지금 여행 중이시라면,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이를 붙잡고 주저 없이 한 잔 더 기울이시길 추천드려요. 


이 글에 공감하고 있는 당신과의 한 잔을 꿈꾸는

일상 여행자 김수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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