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떠남이 두렵지 않은 여행자가 보내는 열한 번째 러브레터
@카페 자허, 오스트리아 비엔나
저는 대표적인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만 마시는 사람을 가리키는 신조어)'입니다. 제 사전에 따뜻한 음료란 존재하지 않죠. 하얗게 입김이 서리는 한 겨울에도 제 선택은 무조건 아이스 라테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유럽은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 외에는 따뜻한 커피가 기본이더라고요. 프라하나 부다페스트에서는 매일 아침 아이스커피를 찾아 스타벅스를 방문했는데, 비엔나에서는 그마저도 찾기 어려워 저 사실 많이 슬펐습니다.
저 같은 또 다른 얼죽아들을 위해, 그리고 디저트의 도시 비엔나를 만끽하고 싶은 예비 여행자들을 위해 비엔나 3대 카페라 불리는 '카페 자허'와 '카페 데멜', 그리고 '카페 란트만'을 비교해보려 합니다.
자허 토르테의 원조, 카페 자허입니다. 비엔나 오페라 극장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빨간 파라솔이 덮인 카페죠. 카페 내부는 마치 씨씨(SISI) 왕비가 살았던 그 시절처럼 우아하고 고풍스럽습니다.
자허 토르테를 겉으로 봤을 땐 그냥 초콜릿 케이크가 아닐까 싶겠지만, 한 입 먹어보면 미묘한 맛에 놀라시게 될 거예요. 케이크 시트 안의 살구 쨈과 휘핑크림이 어우러져 달콤한데 느끼하지는 않은 독특한 맛을 만들어 내거든요. 굳이 왜 이 먼 곳에서 초콜릿 케이크를 먹나 했는데 시트 사이에 얇게 발린 살구 쨈이 케이크 전체의 맛을 바꾸더라고요. 한 마디로 맛있습니다.
자허 토르테 하나에 아인슈페너 한 잔과 멜랑지 한 잔을 마십니다. 얼죽아에게는 연하고 미적지근한 커피였지만 내부 분위기에 취하니 제법 맛있더라고요. 서비스가 곧 친절을 뜻하는 한국과 달리 다소 불친절하다 느꼈던 비엔나에서 만난 가장 친절한 카페이기도 했습니다.
호프부르크 왕궁 구경 후 저녁 시간 전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들어간 카페 데멜. 카페 자허의 토르테가 맛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굳이 한 번 더 먹을만한 메뉴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가볼 생각이 없었는데 동행의 손에 이끌려 엉겁결에 들어갔습니다. 베이커리는 맛이 없었지만 아메리카노 아이스를 마실 수 있었기에 개인적으로는 대만족이었던 카페였습니다.
카페 데멜의 토르테는 자허 토르테에 비해 수분감이 적고 살짝 바스러지는 식감이 강합니다. 게다가 토르테의 포인트였던 살구 쨈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탓에, 그냥 말 그대로 초콜렛과 바싹 마른 시트 케이크를 함께 씹는 맛이었죠. 저는 촉촉한 무스 식감을 좋아하는 지라 별로였는데 깔끔한 베이커리를 좋아하는 동행은 맛있다며 먹는 걸 보면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습니다.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은 카페 데멜의 베스트 메뉴는 애플파이라는 점이겠죠.
친구 'H'가 오전 내내 시간을 보낸 곳이에요. 세 시간 넘게 한 곳에 머무르고 있다고 해서 의아해했는데 들어가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고즈넉한 실내와 웨이터의 미소는 마치 시공간이 멈춘 듯한 여유 있는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식사부터 디저트, 카페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올라운드 레스토랑답게 커피 / 디저트 / 메인 디쉬 각 메뉴판이 따로 준비돼 있습니다. 메뉴 또한 다양해서 오전 내내 그곳에 있었다는 내 동행은 벌써 세 번째 디저트 메뉴를 즐기고 있었죠. 현지 언어나 메뉴가 낯설 이들을 위해 일러스트로 메뉴가 그려져 있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박물관 몇 곳을 들리며 마리아 테레지아에 꽂혀있던 저는 망설임 없이 처음 보는 메뉴인 '카페 마리아 테레지아'를 주문했습니다. 진한 에스프레소 위에 풍성한 크림과 귤껍질 슬라이스가 얹어져 텁텁한 끝 맛을 상큼한 귤 향이 감싸주더라고요. 비주얼조차도 여왕답게 너무나 완벽했습니다.
체코가 맥주의 나라였다면, 비엔나는 디저트의 도시임이 확실합니다. 현지인들에게 맛집을 물어봐도 모두들 레스토랑 대신 베이커리나 카페를 추천합니다.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카페가 아니더라도 비엔나의 모든 카페들이 달콤한 디저트와 풍성한 목 넘김의 커피를 제공한다고 하니, 디저트의 도시 비엔나에선 꼭 한번 커피 한 잔과 베이커리를 즐기시길 바라요. 자칫 지칠 수 있는 여행의 순간을 달콤하게 마무리해줄 테니까요.
저랑 커피 한잔 하실래요?
이제야 미적지근한 멜랑지 한 잔이 그리워진 여행자 김수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