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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진 Jan 13. 2019

프라하 한복판에서 써내려 간
일기 한 자락

이제 더 이상 떠남이 두렵지 않은 여행자가 보내는 열다섯 번째 러브레터

@플릭스 버스 정류장, 체코 프라하


본인의 성격을 백 퍼센트 알고 계시나요?

본인의 성격을 백 퍼센트 알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단언컨대 저는 아닙니다. 제가 저를 데리고 30년이나 살았는데 아직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면이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며 새롭게 알게 된 제 성격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예상치 못한 변수에 크게 불안해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이 예측 가능해야 마음이 편하다 보니 그렇지 않은 상황에 금세 지치는 겁니다.



어머니께서 여행을 떠나는 저에게 가장 바란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일이든 개인의 삶이든 모든 것이 누군가의 뜻대로만 돌아갈 수 없어.

작은 변수가 생기더라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대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빠르게 찾는 첫걸음이 되었으면 해


신이 모두를 돌볼 수 없어 보낸 것이 엄마라더니, 정말 그녀는 신일지 모릅니다.


그냥 지나가면 사고, 깨달음을 얻게 되면 배움

길었던 서론을 정리하고 여행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저는 국가 간 이동 수단으로 Flix Bus를 예약했습니다. 대학생이 아닌 제가 기차를 타기엔 가격대가 높았고, Flix Bus 정류장이 각 나라별 숙소에서 가장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프라하에서 비엔나까지도 이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는데 여기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프라하의 화폐 단위는 코루나인데 유로처럼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현지에서 잔돈을 모두 처리하고자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날 여행 기념품을 잔뜩 사댔죠. 다음 날 아침에 Flix Bus 정류장으로 향할 트램 티켓을 더 샀는데도 잔돈이 아직 남는 겁니다. 버스를 탈 시간이 아슬아슬한데도 남겨둔 125 코루나가 아까워 꿋꿋이 아침 식사 거리를 샀습니다. 지상에 올라와 구글맵을 찍어 보니 버스 시간 3분 전! 아슬아슬하게 Flix Bus 시간에 맞춰 트램에서 내렸는데 아뿔싸, 그곳은 Florenc 기차역이었습니다. 제가 가야 하는 버스역은 기차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있었고, 저는 결국 버스를 놓쳤습니다.


그 날 프라하에서 제일 많이 웃은 여자, 나야 나

돈 좀 아껴보겠다고 19 유로에 Flix Bus를 끊었는데 결국 현장에서 59유로를 주고 버스 티켓을 다시 샀습니다. 신용 카드로 끊었으니 수수료까지 포함해 한화 기준 약 8만 원 정도네요. 제가 아까워했던 125 코루나는 한화로 6천 원 정도의 돈이니 겨우 6천 원이 아끼자고 8만 원이나 쓴 셈입니다. 허한 마음에 캐리어에 앉아 혼자 엄청 웃었습니다. 정말 편하게 그냥 여행 다닐 거야 라면서도 야금야금 예산 계획과 여행 스케줄을 짜 온 저였는데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내다니요. 


한국이었다면 속상한 마음에 창구 직원에게라도 호소했을 텐데, 여유 있는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 못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습니다. 아무 문제없는 척 티켓 창구로 다가갔는데 줄 맨 앞에서 티켓 시간을 놓고 싸우는 프랑스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여행 내내 그리도 여유로워 보였던 유럽 사람들도 아쉽게 차를 놓치니 다급 해지네, 사람 인생 다 똑같구나 싶어 또 한 번 웃음이 났습니다. 단언컨대, 진짜 이 날 프라하에서 제일 많이 웃은 사람은 저일 겁니다.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e 티켓을 찬찬히 읽어봤더니 심지어 '15분 전에 미리 도착하세요. 1분이라도 늦게 오시면 expired 됩니다. 다시 끊어야 돼요.'라고 친절히 쓰여있었습니다. 사실 Flix Bus는 취소하면 바로 바우처(voucher)가 나오기에, 미리 취소하고 그 바우처로 한 시간 뒤의 티켓을 다시 끊었으면 조금이라도 손해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아마 너무 당황해서 이런 방법조차 생각을 못 했던 거겠죠.


저는 3배나 더 비싸게 끊은 버스 티켓을 들고 플랫폼에 앉아 차게 식은 샌드위치와 스프라이트를 먹었습니다. 앞 쪽에 125 코루나보다 싸게 파는 핫도그 집을 바라보면서요. 무슨 정신인 건지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 샌드위치를 들고 셀카도 한 장 찍었습니다.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

여행은 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부딪히면, 저도 몰랐던 제가 몇 번이나 튀어나오더라고요. 아마 영등포역이나 고속버스 터미널이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휩쓸리지 않았겠죠. 


아무튼 덕분에 여행을 통해 저는 또 다른 제 모습 하나를 알게 됐습니다. 이 또한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겠죠.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어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여행을 추천하며 선배 여행자 김수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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