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죽음은 끝이 아니라 전환이다.' 이 말은 모두에게 위안이 되었다.
이 책은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살리는 일기다. 이 책은 인간 종에 관련된 과학적 상식을 알려주는 백과사전이다. 이 책은 스포츠의 진정한 재미를 살펴보는 에세이다. 테니스를 하는 아버지, 농구를 했던 글쓴이.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부자는 서서히 지난날을 되새기며 한층 돈독해진다. 아버지의 지나친 허풍과 심하다 싶을 정도의 고집을 퉁명스럽게 비판하다가도 결국 책의 맨 앞장은 "나의 아버지(1910~)에게"다. 데이비드 실즈는 지루한 내용을 지겹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다양한 인간 생애와 관련된 상식을 유명인의 명언과 절묘하게 버무려 독자가 다음 장을 부담 없이 넘기도록 도와준다. 베이브루스, 게오르그 니부어,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 다 빈치, 마키아벨리, 볼테르, 괴테, 부처, 칼 마르크스, 우디 앨런 등.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의 명언이 차례대로 나오고, 은근히 말장난 개그도 숨어있다.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데 길가 곳곳에 알사탕이 놓여있는 격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기원전 44년에 키케로는 말했다. '아무리 늙은 사람이라도 1년은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낳다.' 그렇게 말하고는 기원전 43년에 죽었다. 임종의 자리에서 미국의 작가 윌리엄 사로얀은 말했다. '누구나 죽어야 하지만 나는 늘 나만은 예외일 거라고 믿었다' 에드워드 영은 '누구나 사람의 생명이 유한한 것을 알지만 누구나 자신을 빼놓고 생각한다'라고 썼다. 인도의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이런 문답이 있다. ' 세상의 하고많은 놀랄 일들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무엇이냐? 사람이 주변에서 남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단순 정보 전달이 지겨워질 때쯤 간간이 유머를 섞어준다. 농구에 임하는 그의 자세도 무척 흥미로웠다. 스포츠의 재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나로서는(게다가, 농구와 테니스 둘 다 즐기는 나에게는!) 공감 가는 부분이 참 많더라. 오히려 농구 에피소드만 따로 모아서 이어 보고 싶을 정도였다. 사실 남들이 보기에는 그깟 공놀이에 뭐 그리 죽기 살기로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니, 사실 그게 이성적으로 맞는 일이다.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인 일에 다치는 것도 감수하고, 죽어라 한계를 뛰어넘는 건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쾌감과 재미에 이끌려 또 경쟁하고, 뛰는 것이다. 이에 관련된 과학적 상식은 오히려 덜 나온 듯한 느낌이다. '성' 관련된 킨제이 보고서 스타일의 분량보다, 스포츠와 함께 나오는 여러 상식이 담겼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가지는 언어와 스포츠다. 나는 그 사랑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이제 나는 운동선수와는 거리가 멀다. 요통이 있고, 어깨 힘줄염이 있고, 무릎관절이 불안정하고, 양쪽 다리에 균형이 맞지 않아서 신발에 깔개를 깔았고, 얼마전부터는 뒷목이 저릿저릿할 때가 있다. 반면에 97세인 아버지는 테니스 엘보 말고는 그다지 아픈 데가 없는 것 같다. 아버지는 비가 오면 짜증을 낸다. 밖에서 걸을 수 없고 실내에서 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어떻게 보면 바로 그런 자세였다. 기존의 지혜를 의심해보라는 것, 스스로 본 시각을 고집하라는 것, 언어를 운동장처럼 생각하라는 것, 운동장을 천국처럼 생각하라는 것. 아버지는 내 입과 내 타자기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을 사랑하라고 알려주었고, 내가 내 몸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사랑하라고, 다른 누구의 거죽이 아니라 내 거죽에 담겨 있는 사실을 사랑하라고 알려주었다.
죽음. 모든 인간이라면 공평하게 맞이하는 유일한 것이다. 부자도 죽고 거지도 죽는다. 남자도 죽고 여자도 죽는다. 노인도 죽고 아이도 죽는다. 결국 모두가 맞이하는 종착역은 '죽음'이란 같은 결과물이 기다린다. 누구나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가 죽는다는 만고불변의 법칙을 믿지 않으려 한다. 법칙마저 바꾸려고 진시황제는 또 다른 이들의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역설적으로 죽음은 곧 삶의 자양분이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면, 즉 인간의 유한함을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삶은 윤택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은 그 유한함을 체감할 때 비로소 빛난다. 인간의 생명이 무한하다면, 순간순간 마주하는 소중하고 찬란한 '현재'의 중요성을 절대 알 수 없다. 어차피 반복되고, 다음에는 다르게 행동하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절대 인생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면. 비로소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도 담담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돌연 무릎이 꺾여 먼지투성이 땅으로 엎어진다. 몸을 받치려고 팔을 쭉 뻗는 바람에 손이 돌멩이에 온통 긁힌다. 아버지는 호주머니에서 칼을 꺼내어 선인장 낮은 가지를 베고, 손바닥으로 물을 받아 마신다. 아버지가 이겼다. 또 아버지가 이겼다. 언제나 아버지가 이긴다. 하지만 결국에는 아버지도 진다. 우리 모두 언젠가 진다.
농구 시합에서 죽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담담한 말. 마지막 장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담백하게 표현하는 말. 은근히 마음을 짠하게 하는 구석이 많은 책이었다. 특히 '유서'부분은 가슴이 찡하더라. 남겨진 이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 수많은 위인과 유명인들은 제각각 자신의 특색, 성격대로 유쾌하게 하고 싶은 말을 세상에 남기고 떠났다. 하지만 모든 공통점은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원망하기보다는 고마움과 미안함, 아쉬움이 곳곳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더는 고칠 게 없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마지막 순간에는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에 오롯이 집중하기 때문에, 비난과 원망의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내 곁에서 설거지는 하는 어머니의 부산스러움이 다시 들리지 않는다면? 내가 통화한 목소리가 사랑하는 그녀의 마지막 생생한 음성이었다면? 아니면 사소한 일상을 더이상 만끽하지 못하고 훌쩍 떠나버려야 하는 운명이 내게 닥친다면? 새삼 지금 '현재'에 충실하고, 후회 없이 그리고 대책 없이 행복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강렬해진다.
'내가 죽으면', 이것은 내 어머니의 유언이다. '내 육신을 화장하고 재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처리해주기 바란다. 내 마음 같아서는 심장, 콩팥, 각막을 기증하고 싶지만, 암 환자의 장기를 이식할 수는 없으니 안 될 것이다. 화장이 유대 율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생명 없는 육체를 처분하는 방법으로 화장이 가장 지각있는 수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종교적인 장례식은 바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특별한 형식 없이 그냥 모여서 서로 힘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을 것 같다. 나는 세상을 떠나면서 아무런 후회도 쓰라림도 없다. 나는 멋진 인생을 살았다. 그대들 모두에게 평온한 미래가 있기를. 샬롬.' 끝을 앞둔 사람의 체념이 읽힌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무엇일까?
내 마지막 말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의 묘비명은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지 뭐.
고맙고 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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