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81년생 마리오, 인문학 협동조합
"언젠가는 게임이 스포츠가 될 수 있다.", "게임으로 전세계 젊은이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정신 나간 소리를 믿었습니다.
- 전용준 게임캐스터
1981년 닌텐도의 상징 마리오가 태어났다. 게임은 사회악이자 머리를 굳게 만드는 병폐로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물론 셧다운제나 최근 여러 언론 보도를 보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끔찍한 총기 사건 가해자는 FPS 게임 중독자로 지목받고, 언론이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초점을 '폭력'이 아니라 '게임'으로 맞추기도 한다. 리니지 폐인, 메이플 사기 등은 거의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할 수준이다. 심지어 PC방 전원차단으로 공격성을 증명하려 했던 MBC 뉴스 리포트가 떠오른다. (내기 바둑을 두는 인자한 할아버지도 판을 엎으면 멱살 잡을 거다. 힘들게 촬영한 리포트 편집하다가 전원이 차단되더라도, 웃을 수 있을까?) 일부 사례를 가지고 지나치게 전체를 일반화하는 오류가 유독 게임에는 빠지지 않는다.
쫄쫄이 교복을 입은 무서운 형들이 돈을 뺐는 오락실, 컵라면에 과자를 먹어치우며 '4:4 헌터 무한'을 다투던 PC방, 야자를 도망치고 위닝을 하며 빨간 컨디션에 울고웃던 플스방. 다양한 공간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게임은 우리의 학창시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스포츠로 수억 원의 돈을 벌고, 심지어 아시안게임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어 공중파에서 게임 중계를 하는 시대다. 북유럽 시골청년들이 한국은 몰라도 LOL(League of Legend) 페이커는 누군지 알고 있다. <81년생 마리오>는 삼국지, 스타크래프트, 프린세스 메이커, 슈퍼마리오 등 명작들과 함께 한국 사회에 물들어 있는 다양한 문화를 재조명하는 책이다. 추억의 게임을 소재로 자본주의, 계급, 젠더, 사회현상을 돌이켜보는 시도는 게임 매니아인 나에게도 충분히 즐거고 신선한 시도였다. 내게도 게임은 분명 소소하지만 즐거운 추억들이 가득한 오랜 친구다.
후후 불어 팩속 깊숙이 낀 먼지를 제거하고, 게임보이를 시작했다.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려면 최대한 빠르게 슈퍼 마리오에게 버섯을 쥐어주며 쿠퍼를 무찔러야만 했다. 친구가 놀러오면 스트리트파이터의 블랑카로 전기를 쏘아대며 짜릿한 시간을 보냈다. 집안에 유일한 TV를 차지하고, 거실에서 널브러져 게임을 하는 건 만천하에 게으른 모습이라 눈치를 봐야만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금기의 유혹과 정해진 시간에 끝판왕을 깨야 하는 제약은 내게 더욱 짜릿한 쾌감을 줬다. 결혼식 전날에도 아마 마스크팩을 붙이고 PS4를 즐겼다. 아버지는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 아직도 애들같이 게임이냐고 허허 웃으신다. 물론 어린 시절처럼 따끔한 호통이 아닌 흐뭇한 핀잔이었다. 아버지는 늘 그렇듯 내가 원하는 건 최대한 들어주려 노력하신다. 당신보다 항상 자식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내 기억이 맞다면 게임보이도 마찬가지였다.
맞은편 아파트를 어린 나는 울면서 나섰다. 잔뜩 게임보이를 자랑하고, 집에 데려가놓고 혼자 패드를 독차지한 친구가 너무 얄미웠다. 자존심 상하게도 '한 목만.' (항상 한몫이란 단어를 썼는데 몫인가? 목인가? 목숨을 줄여서 목일까? 내 몫을 뜻하는 몫일까?)을 계속 했지만, 친구는 징하게도 죽지 않았다. 서럽게 울던 내게 자초지종을 듣고 아버지는 나를 곧장 가까운 매장에 데려가셨다. 가장 좋아보이는 매끈한 콘솔과 몇몇 추천 팩을 사들고 의기양양하게 내 손을 잡고 집에 돌아오셨지만, 아마 엄마에게 등짝을 맞지 않으셨을까 싶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늘 아버지는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남들보다 잘해주진 못해도 못해주진 않으려고 애쓰시는 분이다. 그래서인지 스마트폰 맞고에 열중하시는 모습마저도 귀여우시다. 늘 남에게 베풀고, 민폐를 끼치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아버지가 맞고에서나마 과감하고 호쾌하게 'GO~!'를 내지르시는 모습은 흐뭇하다.
여동생은 종종 내가 게임을 하는 것을 '보는' 걸 재밌어했다. 번걸아서 패드를 들고 순서대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진심은 아니라 예의상) 직접 해보라고 권해도 그냥 보는 게 더 재미있다고 자리를 지켰다. 그냥 옆에서 조잘거리며, '쟤는 진짜 빠르다, 아니 저기로 가야지, 아 거의 다왔는데' 추임새를 넣었다. 모니터로 바둑알이 돌아다니는 축구 게임 CM(현재 Football Manager)을 제외하고는 제법 많은 게임을 즐겨봤다. 그리고 옆에서 TV를 보며 나의 조작 실수로 떨어지는 캐릭터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최근 아프리카,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에서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어린 동생과의 시간을 생각하면, 그런 현상은 낯설지 않다. 나도 원코인 플레이 영상을 보다보면 20분이 훌쩍 지나가더라.
돌이켜보면 2P 플레이가 가능한 크레이지 아케이드 정도는 같이 했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이 둘다 일하러 가시면 같이 집앞 장터에서 저렴하지만 푸짐한 곱창을 사들고 와서 맛있게 먹었다. 자전거를 타고 적당한 거리의 동양문고로 가서 책을 잔뜩 읽고는 꼭 가는 코스가 있었다. 건너편 맥도날드에서 300원 짜리 아이스크림, 더 달콤한 200원 짜리 자판기 우유를 뽑아 들고 함께 먹으며 초코 콘이란 신상에 놀라곤 했다. 그리고 둘이서 두팔을 걷어들고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뿌듯하게 칭찬을 기다리며 부모님을 맞이했다. 패드를 쥐고 있진 않았지만, 동생은 제법 오랜 시간 소소한 일상의 미션을 함께 깨나가고 있었다. 훌쩍 커버려 외국에서 일하고 있는 동생이 문득 그리운 날이다. 넷플릭스에 밀려 먼지가 쌓여가는 PS4를 켜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요즘 게임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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