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이 공존하는 초인의 존재, 그리고 BTS.

[도서] 데미안, 헤르만 헤세

by 샘바리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그림1.png 고전문학 3종 세트가 매진이라! 덕질 말고 공부하라는 건 옛말이다. (출처 : 빅히트샵 홈페이지)


"아이돌 덕질할 시간에 책을 한자라도 더 읽어!"란 말은 이제 구시대적 유물이 되었다. 세계를 누비는 방탄소년단은 단순히 아이돌 음악계뿐 아니라, 문화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방탄소년단 기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공식 온라인몰 '빅히트 샵'에서 DVD, 앨범, 응원봉뿐 아니라 도서를 판매 중이다.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을 담은 '화양연화'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3가지 버전이 있고, 심지어 3권의 고전문학은 빅히트샵에서 전부 매진이다. '사랑의 기술'(에리히 프롬), '융의 영혼의 지도'(칼 쿠스타프 융), '데미안'(헤르만 헤세). 단순히 예쁘게 잘생긴 가수들이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는 게 그만인 시대가 아니다. '청춘', '성장' 등을 주제로 스토리텔링을 이어가고 팬과 아티스트가 소통하며 숨겨진 의미를 찾아가는 재미까지 선사하는 게 트렌드다. 그 중 인상적인 것은 역시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의 모티브로 쓰인 <데미안>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조언에 늘 등장하는 유명한 문장. 바로 헤르만 헤세의 걸작 <데미안>의 한 장면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유리알 유희>, <수레바퀴 밑에서>, <싯다르타>로 유명한 헤르만 헤세의 명작 중 하나인 <데미안>은 특이한 이력이 있다. 이미 유명한 작가로 거듭난 헤세는 온전히 작품성만으로 평가받고 싶어서 에밀 싱클레어라는 다른 이름으로 <데미안>을 출판했다. 이름은 숨겨도, 작품의 깊이는 숨길 수 없었을까? 헤세는 <데미안>으로 독일 폰타네상을 수상할 뻔했지만 사양했고, 결국 본인의 정체를 대중에게 드러냈다. (1920년부터는 저자 이름을 헤르만 헤세로 바꿔서 출판했다.)


헤세는 히틀러의 나치즘이 곧 법이던 당시 상황 속에서 애국주의에 동조하지 않은 채 자신의 길을 걸어 수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세는 '자기실현'이란 거대한 주제를 가지고 감성적이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곳곳에 수많은 상징을 숨겨놓았다. 헤세는 제1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데미안>을 선보였고 시대상과 묘하게 맞물리며 사람들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소설 속 싱클레어는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해 중상을 입었고 그의 '친구이자 인도자'인 데미안의 도움으로 한층 성장한다.) 패전 이후 무거운 분위기 속에 살아가는 청년들의 말 못 할 고뇌와 응어리를 건드려 수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전쟁으로 인간성을 상실한 채 허무하고 피폐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독일 청년들이 특히 열광했다. (참전 군인들이 <성경>과 더불어 전장에서 가장 많이 읽은 책이란 말이 있을 정도였다.)



에밀 싱클레어(a.k.a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 <데미안>

싱클레어는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온화하고 맑은, 다정함이 가득한 가정에서 단정하게 자란다. 하지만, 나쁜 짓거리를 자랑삼아 떠벌리고 다니는 친구 프란츠 크로머에게 거짓말을 하는 순간 평화롭던 데미안의 세계는 거세게 요동친다. 커다란 자루 하나 가득 사과를 과수원에서 훔쳤다고 이야기를 꾸며낸 뒤부터 싱클레어는 완전히 크라머의 손아귀에 놀아난다. 무시무시한 크라머의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면 고이 모셔둔 돈을 가져오고, 누나를 데리고 나오기까지 해야 하는 싱클레어의 세계는 이미 점점 악으로 물들어 간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았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싱클레어는 아파하지만 '선의 세계'에 속한 가족에게 '악의 세계'에 발을 담근 자신의 진짜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다. 오히려 ''한 가족 사이에 대비되는 ''한 자신의 존재에 더욱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좌절한다.


그때 등장한 이가 바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데미안이다. 어찌 보면 힘들어하는 싱클레어에게 구원을 선물한 천사와도 같은 존재다. (역설적으로 데미안은 독일어 단어 데몬(Damon)을 연상시킨다.) 느닷없이 이마에 표적을 단 카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밝은 세계'에 의존해 있던 싱클레어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물론 크라머란 극심한 고통을 제거해 주면서. 하지만, 싱클레어는 선생님, 부모님에게 배워 온 '카인과 이벨' 이야기와는 다르게 카인을 훌륭한 이로 평가하는 데미안을 멀리하려 한다. 분명히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선의 입장에서 그것은 모욕적인 해석이고 잘못된 시각이었기 때문에, 싱클레어는 평범하고 조용히 '밝은 세계'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이상하게도 데미안에게 끌리는 마음을 피할 수 없어 고뇌한다. 나아가 점점 하나씩 기존 규범과는 사뭇 다른 생각을 수용한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 곁에 매달렸던 도둑들, 독심술과 주의력 집중과 같은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며 싱클레어는 자신만의 생각을 서서히 만들어간다. 물론 묘한 공허와 고립감과 함께 나이를 먹었고, 데미안의 떠난 빈자리를 느끼며 시간은 흐른다. 음주처럼 금지된 법칙을 어기고 뜨거운 희열을 맛보며 최악의 낙제생으로 자라난 싱클레어. 그때 우연한 기회에 베아트리채를 그리기 시작한다. 단 한마디도 말을 나눈 적이 없는 소녀지만 싱클레어는 깊은 영감을 받고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인상적이고 신비스러운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데미안의 얼굴이 남아 있다.


그리고 데미안의 쪽지에 담긴 그 이름 '압락시스'. 이것은 바로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적 과제를 지닌 어떤 신성'으로 이야기의 핵심 주제와 연결된다. 절대 선과 절대 악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뉘며 하나의 세계에 속해야 한다는 법칙을 거부하는 헤세의 생각을 담고 있다. 싱클레어는 그 무렵 또 하나의 스승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난다. "예감들이 떠오르고 자네 영혼 속에서 목소리들이 말하기 시작하거든 곧바로 자신을 그 목소리에 맡기고 묻질랑 말도록.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님 혹은 그 어떤 하느님의 마음에 들까 하고 말이야. 그런 물음이 자신을 망치는 거야."라고 외치는 오르간 연주자와의 만남도 어느덧 결별의 단계에 접어들고 자신의 내면에서 데미안과 같은 인도자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마침내 데미안은 자신의 꿈속에 등장하는 이의 모습을 현실에서 발견한다. 바로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 그녀를 '수호자이자 어머니, 운명이자 연인'이라 생각하며 싱클레어는 한층 더 '자신 속에 있는 뛰어난 존재'에 가까워진다. '죽음의 냄새가 나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충격적인' 세계의 영향력 아래서 말이다. 그 충격적인 세계는 '세계의 몰락도 아니고, 지진도 아니고, 혁명도 아닌' 바로 전쟁이었다. 사태는 긴박하게 돌아갔고 싱클레어와 데미안 모두 전장에 나갔다. 그리고 부상당한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고, 그의 키스를 통해 에바 부인을 만나고, 마침내 '자신 속에 있는 뛰어난 존재'와 하나가 되는 경험에까지 이르게 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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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면 좋을 책 <데미안>&<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데미안>을 접한 개인적 감상은 시간의 흐름과 맞물려 사뭇 달랐다. 한창 중고교 필독서라는 거창한 광고 와 함께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사이에서 보랏빛을 내던 <데미안>. 그 당시 <데미안>은 한 편의 성장 소설이었다. 흔들리고 괴로워하며 자신의 참모습에 다가가는 싱클레어의 모습은 공감이 가고 연민이 들었으며 묘한 매력을 느꼈다. 언젠가 데미안처럼 나에게 길을 인도해주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친구의 모습을 기대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싱클레어가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며 (그가 생각하기에) '선한 세계'를 망가트리고 '악한 세계'로 발 디디는 순간이었다. 누구나 언젠가 한번쯤은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이에게 거짓말을 하며 그에 대한 후회에 괴로워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전공 수업 때 니체를 수박 겉핥기 식이었지만 조금 배우고 나니 묘하게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초인'이란 개념이 연상됐다. 한 아이의 개인적인 혼란을 섬세하게 그려내었던 <데미안>이 딱딱하고 깊이 있는 철학 소설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소설 모두 하나의 명언으로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바로 '신은 죽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한 명언이 아닌 엄청난 의미가 담겨 있는 집합체구나.)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는 데미안.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며 '카인과 이벨'을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며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는 그의 모습에서 '초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헤세는 절대적인 선악의 대립을 부정한다. 책의 시작 부분 '두 세계'에서부터 이에 대해 언급한다. 바로 '사랑과 엄격함, 모범과 학교, 맑음, 깨끗함, 성경 말씀과 지혜'로 표현되는 '선한 세계'. 그리고 '무시무시하고, 유혹하는, 무섭고 수수께끼 같은 물건들, 도살장과 감옥'으로 나타나는 '악한 세계'. 그 두 세계는 결코 경계가 그어져 있지 않다고 헤세는 말한다.


어두운 골목들과 환한 집들, 탑들, 시계 치는 소리와 사람들 얼굴, 편안함과 따뜻한 쾌적함으로 가득 찬 방들, 비밀과 무시무시한 유령의 공포로 가득 찬 방들. 따뜻하고 비좁은 방의 냄새, 토끼와 하녀들의 냄새, 가정 처방약 냄새와 마른 과일 향기가 난다. 그곳에서는 두 세계가 뒤섞였다. 밤과 낮이 두 극으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가장 기이했던 것은, 그 경계가 서로 닿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두 세계는 얼마나 가까이 함께 있었는지!
devil-1566853_960_720.jpg 인생을 절대 선, 절대 악으로 나눌 수 있을까? (출처 : Pixabay,gunthersimmermacher)


절대 선과 절대 악으로 나누어지는 철저히 이분법적인 사고가 가득한 세계는 폭력이 가득한 세계다. 남과 북, 동양과 서양, 독일인과 유태인, 미국과 소련. 완벽하게 둘로 나누어진 상대는 타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데미안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종의 '표적'을 남기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다. 그 위험성과 참혹함을 1차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으로 생생히 경험했기에 더욱 헤세는 이를 알리려고 비난을 무릅쓰고 글을 써 내려갔던 것은 아닐까? 선과 악을 떠나 한 인간 속에 내재하는 초인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힘은 분명히 존재한다. 스스로 의미를 해석하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자 '자신의 세계'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다. '초인'과 같은 존재로 데미안은 길의 방향을 일러줬을 뿐이지 결국 싱클레어 내면의 자신과 만날 수 있던 원동력은 싱클레어 자신의 힘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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