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어디까지 가봤니?

[도서] 50년간의 세계일주 이 세상 모든 나라를 여행하다, 앨버트 포델

by 샘바리
내 삶의 다른 많은 부분도 그랬다. 나는 모든 것을 시도해보려 했고, 모든 것을 흡수하려고 했고, 할 수 있는 모든 열정으로 일을 하려고 했다.

2000년 직후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많은 나라를 가볼 수 있는지 한 번 알아보자. 재미있을 것 같았다.(천만의 말씀!) 2003년 말까지 나는 최대 110개국을 갔다. 그때 나는 보험 수명 차트로 볼 때 남은 10~20년 여생 동안 '모든' 나라를 가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깨달았다.

물론 흥미진진한 도전이었다. 그러한 위업을 달성 가능한 일이고, 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계 모든 나라를 방문했는지 알아내려고 기네스북에서부터 위키피디아까지 조사했지만, 그런 카테고리는 찾을 수 없었다. 모든 나라를 방문한 사람이 쓴, 혹은 그런 사람에 대해 쓴 책이나 기사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국가가 되려면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지 공부했고, 새로 생긴 나라들을 조사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나는 결심했다.

그렇다. 정말, 진정으로, 마침내 결심했다. 모든 나라를 가보겠다. -목표수정 中
냉장고 벽면을 채우고 있는 마그넷. 가보고 싶은 나라는 더욱 많다.

쥘 베른의 고전 <80일간의 세계 일주> 덕분인지, 혹은 1박 3일 밤도깨비 해외여행까지 등장한 최근 항공기의 발달 덕분인지. 노인의 파란만장 모험담을 모은 <50년간의 세계일주>에서 '50년'이란 시간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고 실제 모든 나라를 적어도 발도장이라도 찍고 왔다는 걸 보니 50년이란 세월을 이해할 수 있었다. <플레이보이>를 편집하기도 했던 괴팍한 노인 탐험가는 여행에 앞서 '세계일주'의 정의를 내렸다. (그래서인지 그의 여행기는 자극적이고 MSG가 잔뜩 뿌려져 있다.) UN에 가입 유무에 따라 국가로 인정하고 그는 193개국에 발도장을 찍었다. 아울러 정치 사회문화적인 이유로 UN 미가입국가인 대만, 바티칸 시티, 코소보 등, 약 200 국가가 넘는 모든 나라를 여행했다. 어느 순간, 여행이 지겹진 않을지? 그의 여권은 얼마나 도장이 많이 찍혀있을까? 문득 궁금했다.


20대까지 여행이라곤 자신이 자란 미국, 나아가 옆동네 캐나다가 전부였던 그는 프랑스를 다녀온 이후 여행의 매력에 푹 빠졌다. 강박증에 가까운 여행 중독자가 된 그는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가리지 않고 세계 방방곡곡을 누볐다. 무려 200개가 넘는 나라를 다녔지만 책의 대부분은 위험천만한 아프리카 여행기가 차지하고 있다. 우리에게 여행지로 잘 알려진 동남아나 파리, 런던 등 유명한 대도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AIDS 발발률 1위, 내전으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도시, 가난과 기아가 판치는 나라, 부패가 일상에 만연한 도시 등 그가 걸어온 여행지는 결코 안전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적어도 살면서 절대 가보지 않은 곳들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안전을 이유로 여행금지 국가로 정해진 시리아 같은 아중동 국가나, 통일이 되지 않는 이상 밟을 수 없는 북한에 대한 묘사는 생생하고 신기했다.


우리가 묵은 양각도 국제 호텔(외국인 관광객과 외교관들만 묵는 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대동강의 작은 섬에 지어 평양과 완전히 차단되었다. 밝게 조명을 비추고 신중하게 설계하고 관리하며, 호텔로 이어지는 좁은 다리는 매일 24시간 경찰이 지키고 검문한다. 양각도에서 나가는 모든 문 역시 경비가 지킨다. 나흘째 밤, 나는 나가는 길을 하나 발견했다. 지하 풀장에서 나가면서 나는 일부러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무심한 듯 몇 개의 사람 없는 지하 복도를 이리 저리 가다가 호텔 뒤편으로 통하는 잠기지 않은 출구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살짝 밀어보았다. 주차된 차가 없는 작은 주차장으로 이어졌다. 나는 발을 내디뎠다. 아무도 없었다. 자유였다! 나는 안개에 싸여 있는 다리 쪽으로 한가로이 걸었다. 약 12미터쯤 갔을 때 경찰이 옆에 나타나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으로 돌아간다면 훨씬 더 안전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 당장!


앨버트 포델이 북한, 파프아뉴기니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 참 말 안듣게 생긴 괴짜 노인이다.


물론 그의 여행 방식을 절대 지지하고 싶지는 않다. 지뢰밭에서 야영을 한다거나, 식인 상어가 있는 강가에서 수영을 하는 짓은 돈을 준다고 해도 하지 않을 일들이다. 게다가 영웅담처럼 내뱉는 불법적인 출입국과 위기탈출은 이야기로 들어서 웃어넘기지, 실제 지인이었다면 머리채를 잡고서라도 말렸을 일들 투성이다. 내게 여행기가 주는 매력은 크게 두 가지다. 내가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시공간에 대해 추억하고, 타인이 느낀 감동을 공감하는 게 첫째다. 그리고 내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을 채워주는 게 둘째다.


그런 점에서 <50년간의 세계일주>는 두 번째 요소에서 매력적이었다. 아울러 여행기는 특색이 있어야 손이 가는 편이다. 마치 대체 왜 여행을 가나 싶지만 투덜거리면서도 여행을 꿋꿋이 이어가는 빌 브라이슨처럼 말이다. 사진이나 영상이 클릭 한 번이면 생동감 넘치게 나오는 시대인 만큼, 글에 저자만의 색다른 경험이나 매력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위험한 상황을 더 아찔하고 긴박하게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저자는 합격이다. 쉽게 말해 위험한 여행 썰을 정말 잘 푸는 느낌이다. 자극적이면서도, 너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재밌게.


살면서 과연 몇 개 나라에 가볼 수 있을까? (출처 : 픽사베이)


여름휴가를 정할 때면 최저가, 연월차 붙이기 신공을 고뇌하는 나는 여전히 '공항' 이란 단어가 설렌다. 만남과 이별의 장인 공항에서는 언제나 애틋한 감정이 샘솟는다. (물론 인천공항의 깨끗하고 세련된 이미지 덕분일지도 모른다. 특히 한산한 2 터미널!) 여름휴가를 앞두고 <50년간의 세계일주>를 읽었더니 더욱 여행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 한걸음 벗어나 떠나보면 깨닫는 게 참 많다. 단순히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전부가 아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과 오롯이 나 자신만의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그 추억에 대한 힘으로 한 해를 또 버텨나가는 원동력을 얻는 법이다.


누군가는 여행 갈 돈을 아껴서 미래에 투자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세에 불과하다고 '여행'의 존재 이유를 폄하한다. 예를 들면, "욜로 외치다가 골로 간다!"처럼. 하지만 반복된 일상에 찌들고 온갖 스트레스에 번 아웃당하는 현대인에게 여행 말고 다른 즉각적인 명약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충동구매가 그나마 좀 비슷하려나?) 나와 내 가족에게 여행은 지루한 하루하루를 버텨낼 제법 큰 힘을 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여행가지 않을 자유도 있다. 누군가는 여행 계획을 짜고,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 가는 것 자체가 큰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은 게으르거나 도전정신이 부족한 게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진정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타까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승무원도 지지 않았다. 부드럽게 착륙하지 못하고 쿵쿵거린 후 그녀는 방송했다. "신사숙녀 여러분, 더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캥거루 기장님이 비행기의 남은 부분을 천천히 몰고 가는 동안 안전벨트를 풀지 마시고 그대로 자리에 앉아계십시오. 짐칸을 여실 때는 조심하세요. 분명 험한 착륙 때문에 물건들의 자리가 바뀌었을 테니까요." 비행기에서 내릴 때 나는 수석 승무원에게 언제나 이런 식이냐고 물어보았다. "오, 그래요. 우리는 비행이 즐거워야 한다고 믿거든요. 우리 단골들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들도 한몫 하죠. 저 할머니처럼요. 그녀는 착륙한 다음 비행기를 나서면서 기장에게 물었죠. '우리 방금 착륙한 거예요? 아니면 격추당한 거예요?'"


공항만 가면 '설렘'의 감정이 한껏 피어오른다. (출처 : 픽사베이)


<50년간의 세계일주는>는 결코 100% 만족스러운, 추천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다. 여성 동행자를 중동 군인에게 넘겨줄 뻔한 걸 기지랍시고 허풍처럼 늘어놓는다거나, 49살 어린 부인을 만나 긴 여행의 종착역으로 결혼을 택한 것 등 불편한 것도 제법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여행한 나라의 위험하고 비합리적인 상황에 대해 짜증을 내거나 미개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그 사태의 원인이나 이유를 조목조목 살펴보는 건 칭찬할 일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제일 적절한 선택이었다. 해외여행에 대한 부푼 기대감과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적당한 비율로 선물해줬다. 이제 떠날 일만 남았다. 진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안전하게' 돌아오자. 나의 소중한 일상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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