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숙면이 내게 올까요?

[도서] 잠의 사생활, 데이비드 랜들

by 샘바리
잠은 삶에서 단절된 순간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전체 퍼즐에서 빠져 있는 3분의 1이다.


잠을 자야만 하는 순간에는 꼭 잠이 오질 않는다. 잠을 자지 말아야 하는 순간에는 꼭 잠이 온다. 이렇게 역설적이고 신비한 영역을 <잠의 사생활>은 흥미롭게 분석한다. '잠'만큼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일상생활의 활동이 있을까? 학창 시절에는 귀가 아프도록 삼당사락(三當四落)을 외치며 잠을 줄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키가 크기 위해서는 적어도 밤 9시에는 잠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른한 오후에 선물과도 같은 귀중한 '시에스타'가 있는 나라도 있다. (혹자는 이를 보고 경제 위기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게으른 행동이라고 비난하지만, 부러운 건 사실이다.) 여전히 숙면과 관련된 시장은 불티나게 팔린다. 메모리폼 베개, 음이온 매트를 시작으로 클래식 모음 CD의 부제 중 십중팔구는 '잠이 잘 오는'이다. 반대로 잠을 깨기 위한 노력도 여전히 뜨겁다. 더 강한, 더 자극적인 각성제는 역동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며 타우린 용량을 크게 크게 광고한다. 우리가 가장 알고 싶지만, 가장 모르고 있는 '잠'의 영역. <잠의 사생활>을 이에 대한 호기심의 크기를 키워주는 훌륭한 자양분이다.


회색 침구가 요즘 부쩍 맘에 든다. (출처 : Jason Abdilla / Unsplash)


<잠의 사생활>에선 잠을 잘 잘 수 있는 비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잠과 관련된 온갖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을 늘어놓는다. 한 장씩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것만은 확실하다. 잠들기 전에 이 책을 손에 잡으면 그날 푹 자기는 글렀다는 것이다. 저저는 잠에 관련된 다양한 사례와 분석들을 병렬적으로 담았다. 남녀 수면 패턴의 차이, 침대와 숙면의 상관관계, 조명의 영향, 잠과 스포츠, 역사적인 수면 비법, 잠을 깨기 위한 수많은 각성제, 수면 섹스, 수면 박탈. 온갖 흥미로운 잠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알차게 담겨 있지만 역시 가장 흥미로운 건 '몽유병'이었다. 그중에도 '잠결에 저지른 살인'의 주인공 켄 파크스의 사례가 특히 눈에 띈다. 그는 어느 날 밤 침대에서 일어나 고속도로를 지나 장인과 장모의 죽이려 달려들었다. 그리곤 양손에 큰 상처를 입은 채 경찰서에 찾아가 외친다.


방금 내가 두 사람을 죽였어요. 맙소사! 내가 방금 두 사람을 죽였다고요.


여기까지가 켄 파크스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부분이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그는 몽유병 상태였고, 이는 '사건 수면'으로 분류되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자는 동안 잠을 자면서 말하고, 먹고, 운전하고, 자위하고, 심지어 섹스까지 할 수 있는 인간이라니! 무겁고 잔혹한 주제였지만 그만큼 자극적이고 인간이란 존재의 무궁무진함에 놀랐다. 잠을 빼앗으면 정신적, 신체적으로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볼 수 있다. 쥐가 아닌 사람 역시 똑같이, 아니 더 심각한 수준의 아픔을 겪을 게 분명하다. 앞서 나온 '사건 수면'은 매우 특이한 사례라 할지라도 코골이, 불면증은 누구나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병이다. 우리가 병으로 인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어마어마한 고통일 것이다. 정상적으로 푹 잘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새삼 느꼈다.


한 주민은 기자에게 왜 자신이 파크스를 찍지 않는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몽유병은 어쩌면 (용서받을 수도 있겠죠) 의학적인 문제이지만, 횡령은 문제가 다르죠."
파크스는 인생에는 결코 만회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전체 후보 중 꼴찌를 차지했다.


고양이도 잘 잔다. (출처 : Kate Stone Matheson / Unsplash)


문득 내 경험이 떠올랐다. 정말 피곤하게 운동을 하고 난 밤이면 종종 가위에 눌리곤 했다. 눈이 떠지고 정신은 깨었는데 돌덩이처럼 무거운 몸은 움직이질 않는 아찔한 순간이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감에 시달릴 때면 나도 모르게 새벽에 깨서 닥치는 대로 뭔가를 먹는다. 무의식의 영역이지만 아침에 깨어나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걸 지켜보는 가족의 놀라움은 둘째 치고. '오늘은 편하게 잠들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오히려 완벽한 수면을 방해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너무나, 편안하게, 더할 나위 없이 잘 자고 있다. 라지 킹 사이즈의 푹신한 침대 매트, 홈쇼핑에서 구매한 보드라운 이불, 적당한 높이의 메모리폼 배게는 최상의 조합이다. 평소 12시가 넘어서까지 휴대폰을 하며 뒹굴거리던 생활 패턴도 바꿨다. 일찍 눕고, 눕자마자 잠들고. 더 이상 잠은 골칫덩어리가 아니다.


한편,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침실 문화에 대한 문화적 접근도 흥미로웠다. 아이와 함께 자는 것이 정서적 유대감에 도움이 된다며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나라, 아이와 따로 자는 게 자립심과 독립적인 마음을 갖는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나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차이보다는 일관적인 습관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이는 침대의 딱딱함, 푹신함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무리 최첨단 기술이 총 집약된 수백만 원짜리 최신형 침대라 할 지라도 지금 당장 내가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침대보다 못하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심지어 아스팔트 바닥과 별 차이가 없다니!) 그만큼 우리 인간의 정서적인 안정감과 본인이 지닌 믿음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 엿볼 수 있었다.


민델은 수면 훈련이 옳으냐 함께 자기가 옳으냐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일관성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녀는 내게 "아이들은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예측할 수 있을 때, 잠자리에 드는 시간의 의식을 더 편안하게 받아들여요."라고 말했다. 홍콩의 그 환자는 일관성을 유지하기만 했더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건 충분히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어린이의 잠에 관한 한, 수면의 질을 예측하기에 더 나은 지표는 함께 자기에 대해 부모가 내리는 선택보다는 규칙적인 습관이다. 밤마다 똑같은 시나리오를 일관성 있게 따라야 아이를 재우는 시간이 작은 전투로 변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2008년, 의학 학술지 <스파인>에 실린 연구 결과는 딱딱한 침대 문제에 최종 결론을 내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 연구 결과는 딱딱한 매트리스에서 자는 사람이나 푹신한 매트리스에서 자는 사람이나 허리 통증을 느끼는 정도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딱딱한 침대를 좋아하느냐 푹신한 침대를 좋아하느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취향일 뿐, 의학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여러분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침대는 여러분이 이미 누워 자고 있는 침대일 가능성이 높다.


개편안! (출처 : Matthew Henry / Unsplash)


가만히 책을 읽다 보면 남자는 참으로 철딱서니 없고 걱정 따윈 없는 미련한 인간으로 비친다. 남자는 코를 고는 비율도 훨씬 높고, 잠버릇이 나쁠 확률도 높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가장 심각한(아니, 절대적인) 문제인 아이가 도중에 깨는 일에도 여자에 비해 늦게 일어나고, 일찍 잠들어 버린다. (사건 수면 역시 주로 남성에게 나타나는 특성이라고 알려졌다.) 진화론적인 이유인지, 혹은 사회문화적인 이유인지 몰라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 육아에 있어서 경력단절이 일어나는 비율이 훨씬 높은 대한민국에서, 육아까지 잠을 핑계로 미룬다는 건 참 이기적인 일이 아닌가. 재밌게도 부부가 한 침대를 쓰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남성은 혼자 잘 때보다 배우자와 함께 잘 때 잠을 훨씬 잘 자는 경향이 있다. 여성은 잠도 훨씬 곱게 자며 남편보다 아내가 불면증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역시 이 때문이다.


남성은 혼자 잘 때보다 배우자와 함께 잘 때 잠을 훨씬 잘 자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배우자의 코 고는 소리를 듣는 불편이 없이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잔다는 사실이 주는 정서적 이득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짓궂은 장난이라고 해야 할까, 여성은 코를 골 확률이 남성보다 훨씬 낮을 뿐만 아니라, 잠도 훨씬 곱게 잔다. 그 결과는 밤의 소극으로 나타나는데, 남편보다 아내가 불면증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훨씬 많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갈수록 잠이 건강에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것은 결혼 생활을 더 건강하게-그리고 더 행복하게 만드는 부수 효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맹수도 졸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출처 : Wade Lambert / Unsplash)


나도 내 나름대로 잠을 잘 자기 위해서 노력하고 관심이 많은 편이다. 잠들기 전에 꼭 스트레칭을 가볍게라도 하고, 무릎 밑에는 쿠션 하나를 더 놓아둔다. 목에는 메모리폼 베개를 살짝 놔두고 최대한 정면으로 잠들기 위해서 바르게 눕는다. 정말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라디오나 팟캐스트를 틀어두고 10분 알람을 맞춰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알람을 무의식적으로 끄고 5분 후에 일어나서 비몽사몽 머리를 감고 대충 면도를 한다. 셔틀버스에 타자마자 눈을 감고 뜨면 회사다. 회사 1층 화장실 오른쪽 칸에 들어가 다시 알람을 맞추고 잠시 목을 대고 쪽잠을 잔다. 최근에는 점심시간에도 10분 정도는 엎드려서 눈을 붙인다. 확실히 건강하고 권장하는 수면 패턴은 아니다. 나는 분명히 잠을 더 자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글을 쓰는 시간도 벌써 12시가 넘었다. 자기 전에는 일찍 잠드는 게 아쉽고, 일어난 후에는 늦게 잠들었던 게 후회된다. 아이러니한 인생이여. 잠이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니 인생 역시 아이러니할 수밖에!


불면증이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불면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된다. 미국의 성인 5명 중 2명은 매일 밤 지속 수면 장애와 상관없는 문제로 잠이 잘 오지 않아 고통을 겪는다. 잠자리에 눕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불면증의 역설에 빠져든다. 즉, 잠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오히려 잠을 이루지 못한다. 불면증을 연구한 뉴욕 대학의 교수 에밀리 마틴은 "잠의 조건은 아주 모순적이다. 잠은 아주 좋은 것이지만...다른 좋은 것들하고는 아주 다르다. 그것을 얻으려면 그것을 가지겠다는 강박 관념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숙면의 비법은 단순히 마음이 스스로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 놀랍게도 5년 사이 나의 수면 패턴이 훨씬 나아졌다. 회사 화장실에서의 쪽잠은 독서 시간으로 바뀌었다. 점심시간 엎드려 자는 것 역시 양재천 산책으로 대체됐다. 제법 안정적인 숙면의 단계에 적응해, 훨씬 나아진 기분이다.


죄송합니다. 이젠 더이상 화장실에서 잠을 청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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