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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Feb 23. 2019

'최선'보다 '최고'인 세상에서 살아남은 비결

수원삼성블루윙즈, NO.29 곽희주

민망하게도 솔직히 몰랐다. 2003년 입단한 무명 수비수가 수원의 전설로 성장할지.

부끄럽게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대표팀 경험도 없는 선수가 20주년 레전드에 선정될지.


13년 동안 국내에선 오직 수원 블루윙즈에서만 뛴 '전설이 될 그 이름' 곽희주의 이야기다. 작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수원이 집중력 문제로 허탈하게 골을 먹을 때면, 쎄오타임이라는 조롱을 들으며 종료 직전 역전을 당할 때면 수비진에 리더가 없는 게 참 아쉬웠다.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고, 점점 축구는 발전해나간다. 그래도 곽희주의 캐릭터는 대체 불가능하고, 여전히 팀이 위기에 빠지면 그리워지곤 하더라. 누군가에겐 비신사적이고 들이박기만 하는 '악당'이지만, 누군가에겐 항상 고맙고 잊을 수 없는 '영웅'이 있다. 왼쪽 팔목에 블루윙즈 엠블럼을 새길 정도로 팀을 사랑하는 레전드가 있다는 건 큰 복이다.


처음 그를 접한 건 2003년 팬북 뒤편이었다. 앞쪽에는 월드컵에서 엄청난 성과를 낸 국가대표 서정원, 이운재 등 스타플레이어의 한해 각오와 화려한 경력이 담겨있었다. 어린 시절 애국가 후렴구는 94년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서정원이 골을 터뜨리고 환호하는 모습이었다. 2002년 4강 신화의 주역인 이운재가 스페인전 호아킨의 슛을 막고 씩 웃어 보이는 건 TV를 틀면 나오던 때다. 가장 화려하고, 팀에 주축으로 인정받는 이들에게 할애된 분량은 역시 많았다. 이어서 김호의 아이들이라 불리던 이종민, 신영록, 고창현 등 유망주의 장점이 소개되었다. 스타군단 수원의 미래로 불리며, 조금씩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해 보였다. 하지만, 투박해 보이는 수비수 곽희주의 자리엔 ‘가장 기뻤을 때, 좌우명’처럼 뻔한 일문일답이 전부였다. 게다가 수원 블루윙즈 선수라면 흔하디 흔한 대표팀 경력은커녕 ‘2002년 올림픽 상비군’이 주요 경력의 끝이었다.

비인기 번호 29번은 수원에 의미 있는 숫자로 남았다. (출처 : 수원 블루윙즈 홈페이지)


포지션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그는 분명 화려하고 특별한 선수가 아니었다. 당연히 신인 시절 곽희주는 주목받지 못한 후보였다. 이미 노련한 경기 경험을 바탕으로 수비수 변신에 성공한 박건하, 투쟁심 넘치는 플레이로 라인을 이끌던 김영선은 물론 유망주도 많았다. 조병국, 조성환, 손승준 등 올림픽 대표로 뛰는 3인방까지 있으니 전체적으로 수비진도 탄탄한 편이었다. 극심한 경쟁 속에서도 곽희주는 11경기나 출전하며 데뷔 시즌은 치렀지만, 많은 팬들은 의아했다. 거친 몸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위험한 잔실수가 잦았고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평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도 사실 열심히 뛰는 게 전부인 선수를 왜 그리 감독이 좋아하는지 몰랐다. 빌드업으로 깔끔하게 상대 압박을 벗겨내고, 멋지게 롱패스를 찔러주는 센터백이 최고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중요한 건 곽희주가 지닌 실력 이상의 '무언가'였다.


곽희주가 제일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제일 '열심히' 뛰는 선수였다. 상대 에이스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악착같은 대인방어는 그의 특기였다. 특히 데얀, 이동국 등 최고의 스트라이커만 만나면 오히려 더 불타오르는 게 장점이었다. 골문 앞에서 위기가 닥치면 누구보다 먼저 공을 향해 제일 먼저 몸을 던지는 사람은 곽희주였다. 구르고 넘어지고, 부딪히고 다시 또 일어나고. 데얀의 표현대로 '마치 인생의 마지막 경기를 뛰는 것처럼' 절실한 플레이가 그가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왼쪽 눈이 안 보이는 어마어마한 핸디캡을 극복하고, 매 경기 헌신하는 자세는 동료에게도 큰 귀감이 되었을 것이다. 프로 데뷔 12년이 흐른 지금 감독은 물론 팬들도 더욱 잘 알고 있다. 수원 블루윙즈에 곽희주는 없어서는 안 되는 상징이자 단순한 주장 그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20주년을 맞이해 베스트 11에 수비수 최다 득표로 곽희주가 선정된 것은 그를 향한 전적인 신뢰를 엿볼 수 있다.


기술이나 피지컬보다 중요한 건 상대를 막으려는 의지. ( 출처 : OSEN)


수원에서 뛴 369경기 중 그가 허투루 뛴 경기는 단언컨대 단 1분 1초도 없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2004년, 2008년 우승 당시에도 그는 묵묵히 제 몫을 해줬다. 부디 잊고 싶은 2005년, 2009년 부진 속에서도 그는 책임감을 느끼며 더 간절하게 수원을 위해 달렸다. 수원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돌이켜보면 언제나 곽희주는 그 자리에 있었다. 까까머리 신인이 어느덧 노련함이 넘치는 최고참이 되었고, 은퇴를 했지만 항상 변함없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뛰었다. 테크닉이 뛰어나거나, 압도적인 높이나 스피드가 돋보이진 않았지만 온몸을 던져가며 상대를 괴롭히는 건 감동적인 수준이었다. 심지어 돌파에 성공한 상대 공격수의 발목을 넘어지면서라도 잡을 정도로. (2016년 슈퍼매치에서 일대일 찬스를 맞이한 아드리아노에게 범한 반칙은 경고로 끝났지만 결국 사후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경기는 1대 1 무승부로 끝났으니 팀에겐 보탬이 되었다.) 전반에만 2명이 퇴장 당하고도 지친 몸을 이끌고 승부차기 승리를 이끌어낸 2016년 FA컵 성남전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명장면이다.


국가대표로 엄청난 명예를 얻거나, 부자 클럽에서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진 못했지만, 적어도 그는 수원 팬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다. '최선'보다 '최고'란 덕목이 중요한 냉정한 프로 세계에서,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된 곽희주는 분명 의미하는 바가 크다. 단순히 축구란 공놀이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아도 말이다. 모두에게 비난받고 조롱을 받더라도, 묵묵히 자신이 가진 강점을 끝까지 선보인다면 어느새 든든한 내 편이 곁에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으며 멋진 일만 쫓아다닐 필요는 없다. 객관적으로 자신이 가진 걸 분석하고, 적어도 내 편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나저나 무의미한 공방전이 오가고, 시시하게 변질되어버린 '슈퍼매치'를 보다 보면, 곽희주가 뛰던 경기들이 그리워진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면 악수를 하더라도 90분 내내 거칠게 부딪히고, 으르렁거리는 투쟁심을 보는 맛은 쏠쏠했는데. 2019년 시즌에는 부디 그런 흥미진진한 경기가 많아지길.


적어도 수원 팬들에겐 악당이 아닌 영웅으로 기억된다. (출처 : 수원 블루윙즈 홈페이지)


# 2008년 이후 리그 우승이 없으니, 자꾸 행복했던 추억만 곱씹게 되는 것 같다. 과연 언제쯤이면 '눈 내리던 그 날'을 그만 우려먹을 수 있을까? 이대로 가다간 먼 훗날 손자한테 우승 이야기해줄 때도 '옛날 옛적으로' 시작할 듯.


# 월드클래스도 실수는 한다. 그 정도 레벨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실수를 했다면 적어도 허탈하게 바라만 보지 말고,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악착같이 뛰었으면 좋겠다. 개인도 그렇고, 팀 전체도 그렇고.


전설이 될 그 이름, 전설이 된 그 이름. (출처 : 수원블루윙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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