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꼬 그래 쎄빠지게 해쌌노?

[도서] 힘빼기의 기술, 김하나

by 샘바리

저자의 조근조근 차분한 목소리를 들은 건 회사의 특강 시간이었다. 신입의 패기와 관리자의 만성피로의 중간 쯤에 위치한 5~6년차 직원 대상이었다.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 강연에서 카피라이터 김하나는 단연 돋보였다. 성우를 준비한 적이 있어서인지, 남들 앞에서 은근 자신감이 있다는 그녀는 '만다꼬'로 대표되는 충고 아닌 충고를 계속했다. 카피라이터답게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깊이 남기는 말들을 많이 했다. 공통된 주제는 너무 거창하고, 필사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무기력하게 포기하고 비관하고 모든 걸 내려놓으란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쉬어가도 괜찮다는 말이었다. 핵심가치를 세뇌시키고, 미래 비전을 위해 헌신하고 뼈를 깎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기존의 교육과는 완전히 결이 달라 어안이 벙벙했다.


만다꼬 그래 쎄빠지게 해쌌노?


게다가 조금 더 생각해보니 ‘내가 해봤다’는 건 결국 별로 소용없는 일이었다. 후배는 내가 아니며, 그 관계가 나의 경험과는 다르게 전개될지 누가 안단 말인가? 그래, 이게 바로 꼰대 짓이구나. 내 경험에 비추어 미리 다른 이의 경험을 재단하려는 마음. 후배는 앞으로 마음을 크게 다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또한 자기 선택이고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경험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운다. - '충고 하지 말라는 충고'


<힘빼기의 기술>은 표지가 8할은 했다고 본다. 모든 걸 담고 있다.


경상도 사투리로 뭐하러, 뭘 하려고에 해당하는 '만다꼬'에 엄청난 공감을 했다. 매번 죽을 힘을 다해 도전해야하고, "힘내! 할 수 있어!"가 제일 흔한 말인 요즘 오히려 가장 와닿는 말이었다. '쉬고 싶으면 쉬어도 된다, 그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으면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직장인들의 Q&A에도 조심스레 조언을 하면서도, 분명히 할 말은 했다. 대부분의 질문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웠으며, 걱정 투성이였지만 대답은 짧고 명쾌했다. 충고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충고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서도 그녀는 청중을 집중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더라. 만다꼬 정신으로 무장한 저자의 목소리는 참 역설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이었다. 직장 생활 5년차, 이런저런 퇴사 욕구가 극에 달하는 이들을 상대로 그녀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회사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퇴직도 하나의 탈출구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돈을 버는 법은 모르지만, 인생을 사는 법은 안다. 좋은 날도 지나가고, 나쁜 날도 지나간다. 하루는 지나가는 것이니, 좋게 보내는 게 낫지 않겠는가. -

‘해변의 삶’ 중


없던 여유도 생기는 풍경. (출처: Unsplash / Simon Migaj)


이직을 하고, 프리랜서로도 지내본 저자의 조언은 하나하나 와닿았다. 수영이나 테니스에서도 가장 힘든 게 바로 힘을 빼는 것이다. 물위에 뜨려고 정신을 집중하고 온힘을 다하면 오히려 서서히 가라앉는다. 환상적인 서비스 포인트를 위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강하게 휘두르면 오히려 공은 네트에 걸리고 만다. 초보자의 열정이 빚어낸 흔한 실수는 스포츠뿐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하나하나 뜯어고치려고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보다는 잠시 한 걸음 물러나 편한 마음으로 임한다면? 그럴때 오히려 더 괜찮은 성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무엇보다 내가 덜 힘들었다. 인상적인 강연 후 그녀의 에세이집을 찾아 읽어본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힘빼기의 기술>이지만, 어마어마한 비기나 기술이 담긴 비법서가 아니었다. '기술'에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힘 빼기'에 집중하면서 소소한 카피라이터의 일상을 훔쳐봤다.


그녀의 글은 말처럼 역시 담백하면서도 힘이 있었고, 소소한 힘빼기의 이야깃거리가 모여있었다. 1부는 저자가 여기저기 기고하고 틈틈이 끄적거린 일상 수필이었고, 2부는 남미 여행의 추억들이 담겨 있었다. 냥이 집사로서의 기록도 제법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개인적으로 일상, 특히 부모님과의 흐뭇한 추억이 많이 담긴 1부의 이야기들이 좋았다. 유연한 사고, 여유있는 마음가짐이 정말 큰 힘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특히 어린 딸을 키우던 엄마의 일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자라서 이 글을 보게 될 아이를 상상하며, 잊지 못한 소중한 하루를 기록하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가. 1등을 해야한다, 돈을 잘 벌어야한다 이런 뻔하고 부담스런 잔소리보다 묵묵히 아이를 응원하고 토닥여준 양육 방식이 지금의 '만다꼬'를 빚어낸 게 아닐까 싶다. 굳센 다짐과 긍정적 글귀로 가득한 일기장은 잠시 접어두고, 그냥 힘을 쭉 빼고 잠이나 자자.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그래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지금 엄마의 나이는 서른네 살이지만 하나가 이 노트를 받게될 때 엄마는 쉰 살쯤 되었겠지. 젊었을 시절의 엄마의 생각, 생활이 조금은 지각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낳아서 젖 물려 재우고, 따로 서고, 첫발을 내딛고, 기저귀를 떼고, 말을 한마디씩 배우고, 글자를 익히고, 순간순간이 엄마의 기쁨이었고, 고생이었고, 가슴 두근거림과 놀람 그리고 보람이었다.

다시 한 번 하나야, 잘 자라서 무언가를 이루고 깨닫고 그리고 스스로 만족하며 또한 만족함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아직 서른넷이던 엄마가 이제 서른여섯이 된 나를 이렇게 또 울린다.


내가 상상하는 가장 편안한 자세. 하지만 수영을 못하는 나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다. (출처 : Unsplash / Toa Hefti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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