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공장 속 부속품인 우리

[도서] 메이드 인 공장, 김중혁

by 샘바리
고속버스는 최대한 빨리 목적지로 데려다 주지만, 많은 정류장을 생략할 수밖에 없다. 생전 이름도 처음 듣는(이거 봐, 벌써 정류장 이름 잊어버렸다) 작은 정류장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웃고 떠들며 버스에 오르는 장면을 절대 볼 수 없으며, 작은 동네의 세탁소 앞에서 고풍스러운 양복을 찾아들고 환하게 웃던 아저씨의 표정 같은 것도 놓칠 수밖에 없다. 빠른 건 빠른 대로 중요하고, 느릿느릿 돌아가는 건 또 그것대로 필요하다. 어떤 게 더 낫다는 주장이 아니라 둘 다 필요하고, 둘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악기 공장 산책기


00455624501_20130103.jpg <메이드 인 공장>, 김중혁


제지 공장, 콘돔 공장, 브래지어 공장, 간장 공장, 가방 공장, 김중혁 글 공장, 지구본 공장, 초콜릿 공장, 도자기 공장, 엘피 공장, 악기 공장, 대장간, 화장품 공장, 맥주 공장, 라면 공장. 식품부터 공산품, 심지어 글까지. 다양한 공장이 등장한다. <메이드 인 공장>은 김중혁 글 공장에서 만든 수필집이다. 궁금증이 많고 엉뚱한 김중혁 작가가 1년간 연재한 글을 모은 결과물이다. 곳곳에 삽화와 짤막하지만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구도 공장과 공장 사이에 섞여 있다. 책장, 만년필, 온도계, 깔때기 등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사물을 관찰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 탁월한 작가다. 무겁지 않아서 좋은 책이다. 실제 책의 무게도 물론이거니와, 심오한 철학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다.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좋고, 오래 곱씹을 수 있어 좋다.


단순한 딱딱한 공장 소개가 아니라 자신의 체험과 미처 몰랐던 사실을 절묘하게 섞은 재밌는 글이다. 예를 들면 너구리 라면의 다시마는 수작업의 결과물이라든, 초콜릿에 하얗게 피는 건 곰팡이가 아니라 초콜릿과 기름이 분리되는 블룸(Bloom) 현상이라든가. 국산 맥주가 맥아 함량이 턱없이 낮다거나 홉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건 오해란 것처럼 잘못 알고 있던 상식을 바로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그런 정보 전달 역할은 7대 3 비율의 3 정도 될까? 나머지는 평소대로 유쾌하고 재치 넘치는 발상으로 이어진다. '간장 공장 공장장'에게 간장 공장 공장장 유머를 조심스레 날리고, 브래지어 공장에서 어린 시절 '브라자'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다. 재치가 넘치고 유쾌한 잡담이 이어지다 보면 어느샌가 공장의 역사와 고충, 과거와 미래까지 함께 전해 듣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소설처럼 유쾌하고 입체적인 수필도 나름 매력적이다.


외할머니가 사준 초콜릿 역시 관리 소홀로 인한 블룸 현상이 발생한 제품이었을 것이다. 지금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먹다 버린 초콜릿이 아깝기도 하고, 하얀색 반점을 더럽다고 생각한 게 부끄럽기도 하다. 초콜릿을 버리게 된 데에는 외갓집의 모든 것이 촌스럽고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한 나의 마음도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시골길을 걷던 어린 시절의 내 앞에 초콜릿 전문가가 나타나서는 "완제품 상태에서의 유통기간은 1년입니다. 보관 온도만 잘 지키면 갓 만든 초콜릿과 비교해도 풍미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드셔도 됩니다."라고 말해봤자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성인이 되었을 때 외할머니를 좋아하면서도 송구스러웠던 것은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초콜릿 공장 산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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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은 '성인이 되었을 때 외할머니를 좋아하면서도 송구스러웠던 마음'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어느덧 철없는 성인이 된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도 어린 시절엔 마산 촌구석 진전면 외할머니댁이 마냥 싫었다. 시골은 하나부터 열까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사촌 형 어깨너머로 구경할 수 있는 486 PC도 없었고, 화장실도 생소한 푸세식이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큰 맘먹고 외삼촌이 산 486 PC는 오래 쓰지 못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쥐였다. 열기가 나오는 CPU 주변에 집을 짓고 쥐새끼를 낳아서 컴퓨터가 먹통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징그럽네.) 치토스를 사 먹고 따조를 모으는 게 중요했던 어린 시절엔 잔뜩 쌓여있는 양갱과 유과가 무척 싫었다. (물론 유과는 아직도 별로 안 좋아한다. 분명 단맛인데 희한하다.) 어김없이 나오는 TV 속 설날 천하장사 씨름 대회도 지루했다. (그러면서도 재밌게 봤다. 이태현, 박광덕, 김영현, 최홍만. 와 기억나는 게 신기하다!) 철없던 시절 지루한 티를 팍팍 내던 꼬맹이를 달래려고 외할머니는 부단히도 애쓰셨다. 왜 나는 더 살갑게 굴지 못했을까? 이제는 그리운 추억이 된 그 시간이 빨리 흐르길 바랐을까?


이젠 얼른 시골에 가고 싶다. 많은 게 달라졌다. 혀를 날름거리는 황소도, 마당을 뛰어노는 커다란 수탉도 없다. (여전히 닭 모가지를 비트는 장면은 충격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삼계탕도 못 먹은 건 아니었지만.) 무려(!) 스카이라이프를 설치했기에 옛날처럼 화장식 옥상에 올라가 안테나를 이리저리 조심스럽게 돌릴 필요도 없다. 안마 의자가 안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 많은 게 사라졌지만 외할머니는 그대로 계신다. 모든 게 달라졌지만, 시골에 가고 싶은 '모든 이유'는 그대로다. 얼른 가서 푸근한 인상의 외할머니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물에 밥을 비벼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싶다. 살이 찌든, 빠지든 언제나 나를 보면 '와 이리 얘빘노?" ('왜 이리 말랐느냐?'의 경상도 사투리)라 하시며 머슴밥을 주신다. 배가 불러도 그런 외할머니 앞에선 배가 고픈 것이다. 내 사소한 행동이 그들에겐 행복이고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공장과 비교되는 시골이 생각났다.


다시마 기계화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외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너구리 라면을 자주 먹는 사람은 봉지를 열었을 때 두 개의 다시마가 짝 달라붙어 있는 '로또'를 경험한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는 한 번 경험했다.) 대단한 행운은 아니지만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다. 이게 다 수작업 때문에 생기는 즐거움이다. 공장 입장에서는 작은 손실이 어마어마한 손실로 이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식의 소소한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실수가 누군가의 기쁨으로 이어지는 일은 많지 않다.

- 라면 공장 산책기


photo-1513828646384-e4d8ec30d2bb.jpg 공장 하면 떠오르는 차가운 이미지 (출처 : UNSPLASH / Crystal Kwok)


'공장'에 대한 오해도 <메이드 인 공장>을 보며 많이 풀렸다. 공장은 항상 '생산성', '효율성' 두 마리 토끼만을 쫓으며 시끄럽게 달리는 줄로만 알았다. 뚝딱을 넘어 쿵쾅거리는 공장의 소음을 들으면 왠지 (제대로 본 적도 없지만) <모던 타임스>의 메시지 '기계 시대의 인간소외'가 떠올랐다. '기계적이다'란 표현은 인간적이지 못하다, 즉 정이 없고 딱딱하다는 방식을 연상했다. 하지만 직접 공장을 가보고, <메이드 인 공장>을 읽어 보니 그건 오해란 걸 깨달았다. 현대제철 당진 공장, 기아자동차 화성 공장, 동희오토 서산공장. 유독 올해 공장에 갈 일이 많았는데 어마어마한 규모에 일단 압도되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는 기계들의 분주함에 놀랐다. 서로서로 돕고 있었고, 혼자가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사람이 있었다. 공장 벽면을 메운 시와 명화 그림에 놀랐다. 그건 단순히 한 대를 더 빠르고,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즐겁게 '노동'할 수 있도록 선택한 배려였다. 규칙적인 일과를 좋아하는 나에겐 '공장'이 새로운 쉼터로 다가왔다.


책 속에 공장들은 제법 실용적이지 않은 면이 있었다. 요즘 세대는 직접 본 적도 없는 LP라든지, 장인의 숨결이 아직 살아 숨 쉬는 악기 등이 인상적인 소재였다. (어린 시절 금성 전축에 LP 턴테이블이 있었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라서 마냥 한번 손으로 휙 돌려보고 말았던 기계였다.) MP3로 공유되는 음원 파일을 손쉽게 휴대폰으로 들을 수 있는 21세기에 무겁고 보관도 어려운 LP가 웬 말이랴? 심지어 피아노 연주도 휴대폰 버튼으로 뚝딱뚝딱 가능한 시대다. 효율성, 생산성만 생각한다면 애초에 사라졌을 공간들이다. 대량생산, 대량 판매가 목표가 아니라 신념이 담긴 제품을 하나라도 '제대로' 만드는 게 그들의 목표다. 때론 느리게 걷는 게 빠르게 걷는 것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는 말에 공감했다. (물론 그렇다고 '빠르다'란 개념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중요한 법이다. 우리 인생이 그러하듯이. 삶이란 공장을 돌아가게 하는 부속품 중 하나인 나도, 내 몫을 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 또 다른 기쁨과 추억으로 남겠지. 마치 내 기억 속 외할머니처럼.


엘피가 갑자기 많이 팔려서 시디나 음원 판매를 앞지르는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엘피의 먼지를 닦으며 음악을 듣는 일도 없을 것이다.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옳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엘피가 끝까지 살아남아서 계속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가 뭐 잊고 있는 건 없는지, 너무 많은 걸 줄이고 압축하는 바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까지 줄인 것은 아닌지, 우리가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던 음악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질문을 던지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끝내 엘피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엘피 공장 산책기

photo-1513295202663-54cd69dd2b43.jpg 지금도 어디선가 공장은 돌아가고 있다. (출처 : UNSPLASH / Chris Liver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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