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날씨 이야기
실리콘밸리에서 첫 연봉 협상을 할 때 리쿠르터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Sunshine Dollar”라는 말을 한다. 실리콘밸리에 오면 1년 내내 좋은 날씨에서 살 수 있으니 연봉 외 수입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 덕분에 이 지역에는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아름다운 도시들이 생기고, 스탠퍼드 대학과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자리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실리콘밸리의 날씨가 단순히 좋다고 할 수만은 없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산호세까지는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동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기후는 지역마다 상당히 다르다. 늘 15도 안팎으로 서늘한 샌프란시스코는 여름에는 미국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고, 겨울에는 따뜻한 곳이 된다. 거의 사계절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 그리고 남쪽의 산호세는 여름에 40도를 넘나들고 겨울은 10도 안팎으로 떨어지는 대륙성 고온 건조 기후를 보여준다.
1년 내내 따뜻한 기온, 적절한 습도, 맑은 하늘 등 완벽한 날씨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이지만, 여름의 기후는 조금 특별하다. 여름에 실리콘밸리에 오면 사계절을 하루에 경험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미세 기후(Micro Climate)인데, 바람이 세게 부는 골목에서 산책하다가 몇 골목 이동하면 갑자기 따뜻해지기도 하고, 차를 타고 조금만 이동하면 계절이 바뀌기도 한다.
위의 세 이미지는 2017년 8월 23일 오후 3시 반경, 날씨 앱에서 본 각 지역의 온도를 보기 위해 찍은 스크린샷이다. 극단적으로 많이 차이가 나지는 않는 날이었지만 그래도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에서 30분 정도 내려가면 나오는 산마테오, 그리고 산마테오에서 30분 정도 더 내려가는 산호세 지역의 온도차가 꽤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는 겨우 1시간 거리임에도 거의 섭씨 10도의 온도 차이를 보이고, 체감온도의 차이는 사실 더 크다. 정말 많이 차이나는 어느 여름날은 샌프란시스코가 섭씨 15도 정도 될 때 산호세가 35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안개와 찬 바람을 대비해 코트를 입고 있다가, 한 시간 정도 내려가면 더워서 에어컨을 켜야 하는 신기한 날씨를 가진 동네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곳에서 몇 년 동안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지도에 단순화시켜 날씨를 구분해 보았다.
회색으로 표시한 지역은 안개 지역이다. 금문교와 금문 공원을 포함한 샌프란시스코 서쪽과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SFSU가 있는 남서쪽 지역, 그 아래 댈리 시티 (Daly City), 퍼시피카 (Pacifica), 하프 문 베이(Half Moon Bay) 등 태평양에 가까운 도시들이 자리한 이 지역은 여름이면 짙은 안개로 뒤덮인다. 이 지역은 겨울을 제외한 거의 7개월 이상의 기간이 안개에 덮여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안개가 심할 때에는 안개등을 켜도 앞 차가 간신히 보일 정도이고, 태평양의 아름다운 풍광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안개가 덮일 경우 한여름에도 온도는 섭씨 5도에서 15도 안팎으로 떨어져 정말 춥다. 이 안개는 동쪽의 대륙과 서쪽 태평양의 온도 차이가 많이 날수록 생기므로, 대륙 쪽이 더울수록 더 짙은 안개가 생긴다. 안개 때문에 이 동네는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집값이 싸다. 1년에 ⅔ 정도는 맑은 하늘과 따뜻한 해를 보기 어렵게 때문이다.
파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샌프란시스코의 동쪽 지역이다. 이 지역은 늘 하늘이 맑고 선선하다. 여름에도 엄청나게 더운 날은 많지 않아서 대부분 집에 에어컨이 없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비싼 땅 값을 자랑하는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높은 빌딩들과 기업들이 밀집된 Financial District, AT&T 야구장이 있는 미션베이(Mission Bay)등이 위치한 곳이며, 여름에는 서쪽 하늘의 금문교와 어우러진 안개를 우아하게 감상할 수 있다. 안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추위와 싸우고 있지겠만, 낮게 낀 안개가 도시를 덮고 있는 것을 이 지역에서 보는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장관이다.
노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반도(Peninsular) 지역이라고 하는데 가장 살기 좋은 지역이고, 미국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동네이다. 페이스북, 구글, 스탠퍼드 대학 등이 위치해 있다.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산호세를 중심으로 한 South Bay지역이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큰 한인 타운이 Santa Clara에 위치하고 있으며 넷플릭스가 있는 Los Gatos, 애플의 Cupertino 등이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다소 대륙성 기후여서 여름에 섭씨 40도를 넘나들 정도로 덥지만 겨울엔 6도까지도 떨어지는 가장 추운 지역이다. 베이 지역 중 사계절이 가장 정확히 구분되는 지역이다.
어느 여름 아침, 안개의 남쪽 지역 San Bruno에서 출발하여 안갯속에 있는 댈리 시티 (Daly City)를 지나, 샌프란시스코 동쪽 지역으로 가면서 찍은 출근길 사진들. 30분 정도의 짧은 이동 시간 동안 기후가 완전히 바뀌었다.
The coldest winter I ever spent was a summer in San Francisco.
내가 보낸 가장 추운 겨울은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이었다.
톰 소여의 모험을 지은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한 말로 알려진 이 문장은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명언이다. 그런데 정작 마크 트웨인은 이 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는 1년 내내 섭씨 15도 전후의 기온으로 바람이 불면 춥고 해가 나면 따뜻한 날씨의 반복이다. 이 온도는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덥고 열이 없는 사람에게는 추운 온도이기 때문에, 위의 이미지와 같이 반팔 반바지와 두꺼운 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같이 다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샌프란시스코에 전 세계에서 온 많은 관광객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LA와 San Diego지역 같은 따뜻한 캘리포니아의 날씨를 상상하고 반팔, 반바지에 Flip-flop을 신고 온다. 수영복을 입고 가을 단풍 구경을 가는 것처럼, 여름 휴가 복장으로 온 관광객들에게 시원한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훨씬 더 춥게 느껴진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에는 관광지의 긴팔 후드티가 불티나게 팔린다. 기념으로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추워서 사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은 도시 샌프란시스코 내에서도 날씨는 천차만별이다. 지도에서 보이듯 서쪽은 짙은 안개 지역이어서 같은 샌프란시스코 내에 살더라도 동남쪽에 있는 사람들과 경험하는 날씨가 크게 차이 난다. 서쪽 안개지역에 위치한 대표적인 관광지가 금문교와 금문공원인데, 구글에서 금문교를 치면 안개에 덮인 금문교 사진이 많이 나온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사진 속의 안개와 금문교의 모습은 여름 내내 볼 수 있는데,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안개 위로 살짝 솟은 금문교의 꼭대기 부분을 보면 정말 인상적이지만 정작 안개 아래 들어가서 위를 올려다보면 바로 눈 앞에 있는 빨간 구조물 말고는 금문교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서쪽 끝에 있는 금문교에서 페리빌딩과 AT&T야구장이 있는 동쪽으로 이동하면 구름이 서서히 사라지고 맑은 하늘이 나타난다. 물론 기온은 여전히 15도 안팎으로 머물고 있지만 햇빛과 파란 하늘 덕분에 서쪽 지역보다 훨씬 따뜻하게 느껴진다.
South San Francisco부터 San Bruno까지는 안개가 종종 끼지만 그 남쪽의 Millbrae부터는 안개가 없어진다. 이 지역은 낮 최고 기온 기준 평균적으로 겨울에는 15도, 여름에는 25도 정도를 보이는 완벽한 기후를 갖고 있다. 비도 거의 안 와서 비가 오면 신기하고 반가울 정도이다.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다음과 같은 주요 도시들이 있다.
San Bruno: 공항과 유튜브(YouTube)가 있다. 이 곳은 안개가 멈추는 경계선 지역으로 안개가 많은 날에는 서쪽 하늘은 검고 동쪽 하늘은 맑다. 이곳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가까운 안개가 없는 지역이라 샌프란시스코 공항이 자리 잡았다.
Burlingame, San Mateo: 아름다운 다운타운을 가진 이 도시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1년 내내 온화하고 아름다운 날씨를 가진 도시들이다.
Atherton과 Menlo Park: 미국 전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지역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저택들이 산속과 언덕에 숨어있다. 멘로파크의 동쪽 베이 지역에는 페이스북이 위치하고 있다.
Palo Alto: 스탠퍼드가 위치한 실리콘밸리의 발원지이다. 이 곳 또한 1년 내내 따뜻하고 여름에도 폭염까지 오지는 않는 이상적인 날씨를 가진 곳이다.
Mountain View: 구글이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이다. 마운틴뷰의 남쪽에는 애플이 위치한 Cupertino시도 자리하고 있는데 Cupertino부터는 South Bay에 들어간다.
실리콘밸리로 이사 오기 전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할 일이 두 번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번 다 여름이어서 금문교를 보러 갔다가 짙은 안개에 머리와 옷이 다 젖어서 엄청 추웠던 기억이 나고 정작 금문교는 볼 수 없었다. 샌프란 서쪽의 금문공원도 안개에 싸여 어둑어둑해서 아름다운 공원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실망했었다.
샌프란시스코를 여름에 방문할 때는 재킷과 스카프를 챙기면 유용하다. 샌프란에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있는 소살리토나 나파밸리, 샌프란에서 남쪽으로 산마테오, 산호세나 동쪽의 East bay 지역으로 놀러 가면 여름옷차림으로 다니다가 샌프란에 들어올 때는 재킷과 스카프를 착용하면 된다. 겨울에 방문하게 되면 다른 지역보다 따뜻하고 화창해서 얇은 외투 하나 걸치고 돌아다니기 좋고, 여름과 가깝지 않은 봄과 가을에도 아름다운 날씨를 경험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안개가 가장 많이 끼는 계절은 여름이다. 3월이나 9월은 안개도 없고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겨울에도 여름과 온도 차이가 별로 없이 15도 안팎의 온도를 보여서 샌프란시스코에 놀러 올 때에는 여름보다는 9월부터 3월 사이에 놀러 오라고 권하고 싶다.
직장을 잡아 실리콘밸리로 12월 말 이사 오게 되었는데, 그때 봤던 집은 10층 건물에 태평양과 골프장이 보이는 아름다운 전망을 가진 집이었다. 2012년 당시 원베드룸 (거실과 방 하나, 부엌과 화장실 1개) 아파트 월세가 2400달러여서 이렇게 좋은 집이 어떻게 이렇게 쌀까 생각하며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스튜디오 월세가 이미 2000달러가 넘은 상태였다.) 당장 계약했다가 8개월 간 안갯속에 살고 1년 계약이 끝나자마자 이사를 나왔다. 한여름 7월에도 아침에 길에 주차했던 차를 움직이려면 앞유리에 언 얼음을 녹이느라 10분 넘게 예열을 해야 했고, 주차를 하고 나서 차 밖으로 나오면 사방이 안개라 바로 옆에 있는 차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앱에서 내가 주차한 곳이 어딘지 저장해 놓고 구글맵에 의지해 주변 건물을 찾은 적도 많았다. 10층짜리 건물임에도 길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1층의 반 정도밖에 보이지 않아 도저히 몇 층짜리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었다.
1년 내내 겨울 코트를 여미고 다니느라 산호세에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면 박스에 넣어둔 여름 옷을 꺼내 들고 들뜬 기분으로 휴가를 가는 것 같이 신이 나곤 했다. 안갯속에 살며 매 주말마다 ‘이 안개가 끝나는 지점이 어디인가'를 찾기 위해 항상 남쪽으로 달렸는데 보통 공항 근처에 있는 San Bruno와 Millbrae 지역에서 안개가 걷혔다. 아무리 안개가 심한 날도 산마테오 지역까지 내려가면 파란 하늘이 보였다.
1년의 경험 후 곰팡이와 안개가 가득했던 안개 지역을 피해 집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샌프란시스코로 출퇴근을 한다면 샌프란시스코 동쪽 반이 제일 좋다. 물론 살인적인 샌프란시스코의 집값을 감당할 수 있다면 말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벗어나 가장 가까운 Daly City는 엄청나게 안개가 많이 끼는 지역이지만 집 값은 저렴하다. 여유롭고 따뜻한 생활을 위해서는 밀브레에서 산마테오까지의 지역을 추천할만하다.
글: Erin. 오퍼레이션. 스타트업의 백오피스 업무 담당. 조직 문화, 컨설팅, Design Thinking, 그리고 워킹맘 관련 정보에 관심 많음
그림: Chili. 디자이너. 생각을 그림으로 요약하는데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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