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넘어 사람으로
OpenAI가 무엇인가를 발표하고,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가 뭔가를 발표할 때마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사라져 간다.
AI를 이용해 논문을 쓰는 서비스를 만드는 팀은 AI가 외부 논문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환각 효과로 거짓말을 써내고, 긴 글을 쓰지 못하는 등의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런데 GPT-4-Turbo가 한 번에 그 모든 문제를 풀어버렸다. 플러그인이나 웹 서치로 최신 논문을 가져오고 8k에서 128k로 늘어난 입력 토큰 사이즈로 엄청 긴 글도 한 번에 써낸다.
AI를 이용해 로고를 만들고, 이미지를 생성해 주던 사이트도 한 번에 다 죽었다. ChatGPT가 Dalle3을 통해 Midjourney 수준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이미지도 ChatGPT 안에서 말만 하면 그냥 만들어준다.
또한 AI에게 캐릭터를 주어서 다양한 캐릭터로 이야기하게 하던 Character.ai도 GPTs로 한방에 보내버렸고, AI가 기억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인기를 끌었던 PineCone 등이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가 되었다.
2023년 나타났던 수많은 AI스타트업들이 올해가 가기 전에 대부분 사라지게 될 것 같다.
정말 많은 숫자의 소프트웨어 "기술" 스타트업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예견된 결과였다. 안드로이드와 애플 앱 스토어가 없던 시절에는 모바일 OS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나, 기존 피쳐폰에서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스타트업이 있었다. 그런데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수많은 스타트업, 당시의 "벤처 기업"이 사라졌다. 즉, 현재 기술과 다음 기술의 갭을 메우던 회사들이 차세대 기술이 나타나면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AI도 판이 바뀌는 과정이다. 핸드폰 OS를 만들겠다는 스타트업이 없어지는 것처럼 한때 각광받던 AI를 활용한 기술 스타트업은 이제 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존재하던 기술의 격차는 AI가 통째로 메워버렸다. 더이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이미지 만드는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고, 번역을 위해 번역 앱을 설치할 필요도 없다. 프로그래밍도 AI가 다 해버린다.
그러면 스타트업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사실 원래 스타트업들이 잘하던 거 하면 된다. 세상의 문제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동안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술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왔기 때문에 세상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과 프로덕트 빌딩이 제일 중요했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고 세상 사람들이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이제는 문제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만 잘 파악하면 AI를 통해 프로덕트를 빌드하고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남은 문제가 뭐가 있을까?
스타트업계는 오랜 시간 기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기술을 통해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1. 기술을 통해서 우리는 소통의 문제를 해결한 메타, 카카오톡
2. 지식을 찾는 문제를 해결한 네이버, 구글
3. 지식 전달의 문제를 해결한 유튜브
이러한 서비스들이 엄청나게 큰 사업체가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려왔다.
모두 기술 기업들의 이야기였지만 그들이 해결해 낸 문제는 사람들의 문제였다. 느리고 복잡한 소통 과정,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와서 읽어야 얻을 수 있었던 지식에 대한 낮은 접근성, 제한된 방송으로 인한 지식 전달의 다양성 결여 등 매우 사회적인 문제들이 기술을 통해 해결되어 왔다.
이제 기술이 너무 쉬워지고 있다. 아직은 조금 어렵지만 매년 AI의 발전으로 훨씬 더 쉬워질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AI 개인 비서를 갖게 될 것이고, 소통, 지식, 판단, 이동 등 모든 사람의 영역에 AI에 기반한 기술이 경쟁적으로 삶을 편하게 만들어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려면 사회학적 관찰과 인문학적 고찰을 치열하게 해 내야 한다. 사회학적으로 설문조사하고, 인문사회학적 이론의 틀 속에서 가설을 만들어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 문화가 문제라고 생각이 든다면 실제로 문제가 있는지 사람들에게 조사하고, 다른 기업들의 사례를 찾아내고, 기업 구조들을 사회학적으로 모델링한 후, 가설을 검증하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찾아내서 프로덕트로 만들어야 한다.
이전에는 이 과정에서 프로덕트를 만드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써 왔다. 그리고 앞부분의 인문 사회학적 문제 인식이 부족했던 스타트업은 정말 잘 만들었지만 누구도 원하지 않는 프로덕트를 내곤 했다. 그런데 앞으로 기술 적용과 프로덕트 개발이 엄청나게 쉬워지면서 인문학적 고찰과 사회학적 접근이 스타트업의 핵심 역량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런데 소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기반의 메신저를 만드는 것이 쉬울까, 아니면 기존 메신저 회사가 AI를 도입하는 것이 쉬울까? 자율 주행 택시를 만들기 위해 AI 스타트업을 새로 시작하는 것이 쉬울까 카카오 택시, 우버 등이 AI를 도입하는 것이 쉬울까?
이미 인류의 수많은 문제들은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찾아내어 온갖 실험을 통해 해결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어도비, MS, 구글, Sales Force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 AI로 날개를 달고 어나더 레벨로 날아올랐다. 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AI기반으로 풀려고 도전하는 회사들에게는 그 벽이 한층 더 높아져버렸다.
앞으로의 시대는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는 시대라기보다 기존의 수많은 회사들이 AI Transformation을 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를 찾아낼 수 있으면 새로운 스타트업으로 도전해 볼 수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질 것이다.
AI는 빅데이터와 비슷하다. 10년 전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빅데이터를 이야기했고 빅데이터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10년이 지난 지금 빅데이터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빅데이터는 정말 많은 회사들이 쓰고 있고, AI 탄생의 근간이 되었다. 다만 기반 기술이라 소비자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단어가 되었다. 빅데이터 회사가 아니라 빅데이터를 이용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회사들이 가득한 세상이 되었다.
앞으로 AI도 그냥 당연한 백엔드 기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여전히 어떤 앱을 쓰고 있을 것이고 그것이 백엔드에서 AI를 쓰든, 블록체인을 쓰든, 문제만 잘 해결해 준다면 굳이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AI회사가 아니라 AI를 통해 우리의 어떤 문제를 멋지게 해결해 주는 회사들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회사들은 기존 회사들이 AI Transformation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언젠가 인간이 스마트폰에서 벗어나게 되어 뇌와 직접 연결이 되고, 핸드폰 화면이 아닌 가상현실 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새로운 앱이 나타나기보다는 기존 앱이 AI를 통해 더 강해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스타트업의 종말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스타트업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셋 중에 하나일 것 같다.
1. 정말 새로운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는 회사가 된다.
2. 기업들의 AI Transformation을 돕는 회사가 된다.
3. 스마트폰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회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