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가 가져온 주식 시장과 자본주의의 진화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여유롭게 일하면서도 밤낮없이 일한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지만 생산성은 엄청나게 높고 주말에도, 밤에도 일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것은 회사에 충성심이 가득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 회사의 일부를 주식을 통해 내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의 성공이 나의 성공으로 직접적으로 금전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뛰어난 인재를 모으기 위해 회사 일부의 소유권을 제공하는 주식 보상 제도는 실리콘밸리 인재 순환의 원동력이다. 구글의 직원들은 구글의 주식이 계속 올라가면서 주식으로 받은 자산의 가치가 매년 20% 정도 상승하는 효과를 누려왔다. 아마존, 페이스북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야후, 트위터 같이 주식이 떨어지는 회사의 경우 인재들이 대량으로 빠져나와 더 좋은 회사로 가게 된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에서는 인재들이 주식이 오르는 곳으로, 또는 앞으로 주식 상장을 할만한 스타트업으로 자연스럽게 순환하게 된다. 주식의 가격은 회사의 미래 가치에 따라 정해지기에, 최고의 인재들은 미래가 밝은 기업으로 모여들고 미래가 없는 회사에서는 빨리 떠나게 된다.
또한 주식 상장은 실리콘밸리에 많은 스타트업이 생겨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엑싯(Exit) 중 가장 화려하고 이상적이고 대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주식 상장이다. 주식 공개 상장은 뉴욕 증권 거래소 (New York Stock Exchange)나 나스닥 (NASDAQ)과 같은 증권 거래소에 회사의 주식을 등록하여 다수의 개별 투자자들이 회사의 주식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창업자들은 수조 원에 달하는 돈을 한 번에 움켜쥘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대박을 노리며 스타트업에 뛰어드는 많은 창업자들이 끊임없이 실리콘밸리에 들어온다.
증권 거래소(Stock Exchange)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역사보다 길다. 19세기 후반 공산주의의 반대 개념으로 소위 소수의 자본가가 모든 생산 수단을 독점한다는 자본주의의 탄생은 사실 증권 거래소의 탄생보다 몇백 년이나 뒤의 일이다. 오히려 증권 거래소의 탄생이 훗날 자본주의 탄생에 견인차가 되었다.
주식 거래소에 주식을 상장(IPO)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본가들의 위험 분산 방식이다. 하나의 기업이나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본을 다수의 다른 자본가들과 함께 투자하여 위험과 수익을 공유할 경우, 각 자본가들은 자신의 한정된 자본을 다양한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다. 그 중 한 두 개가 실패하더라도 다른 성공한 프로젝트에서 오는 수익이 이를 만회할 수 있다. 이에 더해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에 자본을 회수하고 싶을 경우, 주식 거래소를 통해 다른 자본가에게 프로젝트의 지분을 손쉽게 팔 수도 있도록 했다.
이러한 자본의 위험 분산과 유동화라는 개념은 13세기 베네치아의 은행이 자신들의 채권(Debt securities)을 귀족이나 은행 같은 다른 투자자들과 거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거래는 17세기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다양한 해외 식민지 개척 관련 프로젝트를 거래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단순히 빌려준 돈을 되돌려 받는 채권이 아니라 발생한 수익을 투자 지분만큼 가져가는 주식 (Equity securities)의 거래가 런던 증권거래소 (London Stock Exchange) 등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참고: 주식시장의 역사]
자본가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고수익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주식 상장 등으로 위험을 관리하면서 엄청난 자본을 축적하였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이들 자본가들의 생산성이 농토를 기반으로 한 전통 귀족들의 생산성을 넘어서고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 형태를 탄생시켰다.
성공할 경우 수백 배에 달하는 높은 수익을 안겨주는 비상장 스타트업 주식 투자는 상당한 금액을 투자할 수 있는 자본가들만이 할 수 있다. 지금도 일정 이상의 자본을 축적하지 못한 일반인은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비상장 스타트업 주식이 아닌 이미 상장된 회사의 주식에만 접근이 가능하다. 그런데 2000년 이후 실리콘밸리에서는 돈이 아닌 능력으로 비상장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실리콘밸리는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시기를 거치면서 자본이 아닌 개인의 능력을 투자하는 경우에도 스타트업의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즉 스타트업 성장에 필요한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연봉 이외에도 스톡옵션 형태의 주식을 부여하였다. 이를 통해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절약하고 인재들에게는 주인 의식과 동기를 부여할 수 있었다. 자본이 부족한 스타트업에게 금전이 아닌 주식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한다는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스타트업에 들어오는 개인의 경우에도 연봉을 통한 현금 보상과 잠재적 수익이 높은 주식을 동시에 받음으로써 리스크 분산과 높은 수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능력과 주식을 교환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금전이 아닌 경우 양쪽 모두 자신들이 얼마를 주고받는 거래를 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기업의 경우, 자신의 자본 증가를 금전이 아닌 개인의 능력으로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의 경우도 자신이 받은 주식의 가치를 알지 못하면 기존에 받고 있던 보상과의 차이를 측정하기 곤란하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기업의 회계 처리와 세금 문제 때문에, 아직까지 주식 보상 제도는 실리콘밸리 밖으로 퍼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참여한 수많은 주식 상장 프로젝트에서 주식 보상제도와 관련된 회계처리는 가장 어려운 업무 중 하나였다. 이 회계처리는 유가증권 상장 신고서 (Form S-1)를 리뷰하는 증권거래위원회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에서 가장 면밀하게 검토하는 중요 토픽들 중 하나였고, 이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없으면 성공적인 주식 상장 전략을 짜기 어렵다.
이제 주식 보상 제도를 통해 우수한 인재들을 흡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상장한 기업들(Facebook, LinkedIn, Splunk, Yelp 등)의 임직원들이 받은 천문학적인 보상을 통해 이러한 주식 보상 제도가 실제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성공할 경우 높은 수익을 약속하는 스타트업의 주식 보상제도는 정해진 현금 보상만을 제공하는 전통 대기업들에 비해 우수 인재들이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러브콜에 쉽게 응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엔지니어링 백그라운드의 인재들 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컨설팅과 파이낸스 분야를 선호하던 Top school MBA 출신들도 Amazon, Google, Apple 등 테크 회사들에 입사하는 비율이 20% 를 넘어설 정도이다 (원문). 실리콘밸리에 들어오는 많은 인재들은 임원급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식의 주식 보상을 받고 있으며, 실제 회사를 이직하거나 입사하는데 중요한 의사 결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는 2010년 이후에 주식 보상제도에 관한 회계 처리나 운영 인프라 등 기술적인 문제들을 거의 모두 해결하고 임직원과 컨설턴트들에 대한 주식 보상제도를 기업 운영의 중요한 전략으로 정착시켰다. [3. CEO는 Rank가 아닌 Role이다]에서 다룬 바와 같이 전문 경영인인 CEO 또한 주식을 통해 회사의 발전이 자신의 보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도록 만든다. 결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자본을 제공하는 투자자뿐 아니라 능력을 제공하는 인재들에게도 기업 상장의 높은 수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주식 상장 과정을 민주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가 인재의 블랙홀로 성장하게 된 원동력이 된 주식 보상 제도가 처음부터 쉽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주식 보상제도가 인재 유치의 성공적인 수단이 되려면 현금 보상 대신 지급되는 스타트업의 주식이 IPO나 M&A를 통해 높은 수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전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대로 주식 공개 상장에 대한 엄격한 관련 법과 규정이 존재하고 있으며, 많은 비상장 회사들에게 이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2000년대 초반 실리콘밸리의 닷컴 버블 붕괴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정비되지 않은 주식 보상제도를 초기 투자자와 창업자들에게 유리하도록 남용하여, 주식 시장에 공개 상장한 많은 닷컴 회사들이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 일도 있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시장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자신들이 발명한 주식 보상제도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투명하게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재무회계기준위원회(FASB)는 많은 제도적 정비와 회계처리 기준을 마련하여 시장의 혼란을 방지하고 투명한 운영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주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유가증권 상장 신고서에 대해 주식 보상제도 관련 회계처리를 철저히 검토하고, 상장 이후에는 거래 내역을 실시간으로 감시하여 내부자 정보 거래가 원천적으로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내가 직접 겪었던 사례로 한 고객 회사가 중요한 계약 체결 발표 후 주가가 500% 정도 상승한 적이 있다. 주식 시장 감시 기구인 FINRA (Financial Industry Regulatory Authority)에서 고객사에 계약 체결과 관련해 내부 정보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의 명단을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나도 계약의 회계처리 문제로 내부 정보를 알고 있었던 터라 명단에 함께 제출되었다. 물론 이 정보를 이용한 내부 정보 거래를 시도하지 않았지만 얼마 후, FINRA에서 계약 체결 발표 직전에 주식을 구매하여 큰 수익을 얻은 사람들의 명단을 보내고 그 중 아는 사람이 있는지 보고하도록 요청했다. 내부 정보를 취득한 당사자뿐 아니라 그 정보를 다른 이들과 함께 이용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
재무회계기준위원회는 다양한 형태의 주식 보상제도에 대해 매우 세부적인 회계처리 기준과 예시를 마련하여 이를 활용하는 회사들이 발표하는 재무제표 및 투자정보에 혼란을 제거하고 신뢰성을 확보하도록 해주었다.
물론 위의 두 기관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실제로 주식 보상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많은 재원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다. 또한 관련된 회계, 법률, 주식 운영 등 연관 서비스 기업들의 안정적인 서포트도 필수적이다. 실리콘밸리를 이외의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 이 주식 보상제도를 같은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연관 서비스 기업들의 생태계가 잘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왜 한국에는 실리콘밸리가 생기지 않는가”라고 물어본다면, 주식 보상제도를 도입할 이런 제도와 운영 인프라가 부족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많은 지식인들이 21세기 자본주의의 종말을 외치는 시점에서 실리콘밸리는 아직까지 자본주의의 장점을 향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자본주의는 금전 자본주의라기보다는 지식 자본주의에 가깝다. 실리콘밸리의 주식 보상제도는 오직 자본에 의한 자본 증식이 아닌 개인의 지식이나 창의성 같은 능력을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자본으로 전환할 수 있는 한 가지 예시를 보여주었다. 실리콘밸리가 보여준 성공 사례에서 개인의 지식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생산성은 금전 자본의 생산성을 훌쩍 뛰어넘는다. 오히려 과거 농토를 기반으로 한 귀족들의 생산성이 자본가들의 생산성에 역전당했던 것처럼, 4차 산업 혁명의 문턱에 선 오늘날에는 단순한 금전 자본보다 지식 자본이 점점 더 우위에 서게 되는 전환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리콘밸리의 자본주의는 주식 보상을 통해 직원들에게 동기부여와 함께 기업의 부가 직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재분배되도록 하였다. 또한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안정적인 직장에서 나와 주식 보상을 많이 해주는 스타트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계기가 되어 스타트업에도 뛰어난 인재가 넘쳐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스타트업의 경우 뛰어난 인재의 부족과 100배 이상의 수익이 남는 성공이 어려운 경제 구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제조업 대기업 위주의 금융 인프라를 바꾸지 않으면 창업에 뛰어들라는 구호는 현실성 없는 외침으로 끝날 수도 있다.
글: Sarah. IPO 재무회계 컨설턴트. 실리콘밸리식 스타트업 자본 구조와 주식 보상 제도 관심이 많음.
그림: Chili. 디자이너. 생각을 그림으로 요약하는데 관심이 많음.
Project Group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