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사내 소통
위계 조직은 모두 비슷한 스킬을 가지고 비슷한 일을 하면서 경쟁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정보력"이다. 위계 조직에서는 의도적으로 정보를 제한한다. 사장/회장님이 제일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상무, 부장, 과장으로 내려가면서 알고 있는 정보의 양이 줄어든다. 그러므로 말단에서 실무를 보는 직원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위계 조직에서는 정보의 양이 제한되기 때문에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네가 뭘 안다고 결정을 해?”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라고 했어?”라는 말을 할 수 있다. 좀 매너 있는 윗사람은 “당신이 이 위치에 올라와 보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라고 할 것이다.
그러한 위계 조직에는 많은 사람들이 병목(Bottleneck)이 된다. 다시 말해 “내가 없으면 우리 팀은 안 돌아가"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 정보를 독점하고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실제로 그 “윗사람”이 없으면 팀은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끝나면 윗사람이 다음 일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갈 수 없다.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는 사람들이 휴가를 가 버리면 회사에 큰 타격이 될 수도 있다.
역할 조직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결정권자이다. 아무리 말단 사원이라도 그들이 내린 결정은 최종적이며 그들이 책임진다. 전문가들이 회사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려면 가능한 최대한의 정보를 그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와 독점 계약을 맺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엔지니어들은 어떠한 언어를 쓰는 것이 좋은지, 디자이너들은 어떠한 디자인 스타일을 유지해야 하는지 표준화해서 소통해야 한다. 그래서 각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등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얼마나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역할 조직에서는 업무에 필요하고 의사 결정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모든 직원이 알고 있기 때문에 누가 없어져도 누구든 대체할 수 있다. 또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문서화가 기본이다. 사내 위키 문서들을 통해서 내가 하는 일은 문서화를 잘 해 놓으면 누구든 내 일을 대체할 수 있다. 그래서 역할 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이 언제든 휴가를 갈 수 있고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높은 효율로 최소화하며 자기 스케줄에 맞추어 일을 할 수 있다.
위계 조직에서는 내가 없으면 안 돌아가는, 정보를 독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곧 권력이 된다. 역할 조직에서는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고 내가 있으면 더 잘 돌아가게 하는 사람을 필요로한다. 즉 팀원이 5명일 때 한 명이 빠지면 4/5의 속도로 내가 좀 슈퍼 엔지니어면 3/5의 속도로 팀은 계속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명이 빠졌을 때 속도가 0이나 1/2이 되면, 빠진 그 사람에게는 Bottleneck이라는 별명이 붙고 팀의 암적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역설적이게도 소통이 가장 필요한 역할 조직에서는 미팅의 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일을 서로 독립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혼자 일할 시간을 최대로 확보하는 것이 가장 회사에 크게 기여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1주일에 미팅은 스프린트 계획 미팅 1시간, 1주일에 한번 스탠드업 30분, 결정이나 정보가 필요할 때 그때그때 잡는 30분에서 1시간 미팅들 정도이다. 한 달에 한 번쯤은 전체 회사가 모이는 All-hands(전체회의)나 우리 팀 All-hands를 하기도 한다.
사내에 위키피디아와 같은 사이트를 만들어 내가 한 결정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한다. 내가 당장 내일 사고를 당해서 회사에 못 나오더라도 팀원들이 내 위키 페이지만 읽으면 내 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메일은 가장 주된 소통 수단이다. 중요한 의사 결정이나 업무 진행은 이메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슬랙(Slack), 힙챗(Hipchat) 등의 메신저를 통해서는 팀, 프로젝트, 또는 개인 간에 실시간 소통을 한다. 특히 사고 대응 등에 중요하게 활용된다.
전 직원이 모이는 All-hands에서는 주로 CEO가 나와서 회사에서의 중요한 결정 등을 알려주고 Q&A 시간을 갖는다. Q&A에서는 거의 금기가 없다. CEO에게 “우리는 몇 번의 대량 해고(Layoff)를 겪었는데, 너는 왜 책임 안 지고, 안 잘리고 계속 있냐?”라고 묻기도 한다. 물론 직원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은 전혀 없다.
팀 회의는 “관리”가 아닌 “진행"에 중점을 둔다. 누가 얼마만큼 일을 했는지, 누가 얼마만큼 일을 할지를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일을 할지, 그리고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Blocker, 즉 막히는 일은 없는지를 체크한다. 애자일 스프린트 계획 미팅, 일간 스탠드업 미팅 등이 있다.
매니저와는 매주 또는 2주에 한 번씩 1:1 회의를 한다. 1:1 회의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동료의 업무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든다든지, 아내와 어젯밤에 싸워서 너무 졸리다던지, 집에서 기르는 개가 아파서 일에 집중을 할 수 없다던지 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다 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까지 들으며 매니저에게는 내 퍼포먼스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될지 생각한다. 또 1:1 회의에서 중요한 것이 커리어 계획이다. 매니저는 내가 어떻게 하면 내가 이루고 싶은 커리어 골을 이룰 수 있는지 끊임없이 조언해준다.
그 외에 아무 때나 동료들과 상의할 일이 있으면 사내 캘린더를 통해 회의실을 예약해서 회의를 한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자유롭게 집에서 일하는 것이 허용되므로 Google Hangouts, Cisco WebEx, Blue Jeans 같은 서비스를 통해 화상회의를 하기도 한다.
역할 조직에서는 매니저가 “네가 뭘 안다고 결정을 해?”라는 말을 절대로 할 수 없다. 실무자가 결정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를 받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매니저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자 임무이다. 만약 충분한 정보가 없어서 매니저가 보기에 잘못된 결정을 했다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는 매니저는 자신의 역할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인 “정보 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과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전문가이자 결정권자인 상황에서 그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전문가들을 활용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방법이다.
인형의 눈을 붙이는 공장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단순 노무자들을 뽑고 반복적으로 인형 눈을 붙이라고 명령하는 위계 조직에서 노무자들은 인형 눈을 붙이는 것만 알면 된다. 심지어 인형의 완제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총생산량이 몇 개나 될 지도 알 필요가 없다. 그러나 공장이 혁신을 위해서 기계공학 전문가를 불러와서 인형 눈을 기하급수적으로 많이 붙이는 기계를 부탁하고 싶다면 전문가에게 인형의 완제품이 어떻게 될 것인지, 인형의 현재 총생산량은 몇이나 되는지, 원하는 생산량은 어떤지, 앞으로 어떤 인형을 새로 디자인할 예정인지 모든 정보를 다 전달해 주어야 한다.
직원들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많은 소통은 필요 없다. 그렇지만 직원들이 자신의 재능을 회사에 활용하여 혁신을 만들어내는 전문가들이라면 소통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글: Will.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기업 문화와 조직에 관심이 많음.
그림: Chili. 디자이너. 생각을 그림으로 요약하는데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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