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제조업 위주의 성장, 소득 주도 성장, 혁신 성장
60년대부터 우리는 아주 간단한 공식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어 왔다. 낮은 임금의 고급 노동력 + 최신 기술 = 수출 주도 경제 발전. 지금 중국도 이 전략을 써서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고, 우리 이전에는 일본이 써서 크게 성공을 거둔 전략이었다.
성공 이후에도 이 전략을 고수해 온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의 기술 제조업 기업들에 주도권을 잃으면서 20여 년의 장기 침체가 왔다. 수출 시장에서의 소득은 줄어들었고 일본 내 뛰어난 인재들은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일본의 청년들에게는 상실의 시대가 왔다. 열심히 공부하고 성공을 하고 달려왔는데 성공이 허락되지 않는 시대. 그리고 인구가 줄어든 지금에 와서야 다시 일본의 경제가 활력을 띄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삼성이 소니를 이기는 것으로 경제적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일본이 20년에서 30년 정도의 전성기를 누렸던 반면 우리나라는 5년 정도의 전성기 이후 중국에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2020년쯤이면 우리나라 제조업은 패닉 그 자체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줄 수 있었던 대미지보다 훨씬 규모가 큰 대미지를 중국으로부터 입을 것이다.
제조업 위축으로 기업형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고 어쩔 수 없이 자영업은 늘어났다. 최저 임금이 낮고 임금 노동자가 여유 있는 삶을 살 가능성은 극히 낮기 때문에 무조건 “사장님”이 되어야 하는 것도 현실이고, 낮은 물가와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는 자본 때문에 자영업이 성공할 확률도 거의 없다. 대기업은 앞으로 위축될 것이 뻔한 상태에서 생명 연장을 위해서는 사내 유보금을 쌓아 놓을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는 “보수정권”의 기치 하에 대기업 위주, 개발 위주의 성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다시 모두가 열심히 일해서 모두가 더 잘 살게 되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실험을 해 보았다. 70년대, 80년대의 경제 성장을 직접 체험했고, 개인과 가족을 희생하면서 열심히 일한 대가가 얼마나 큰 경제적 부흥과 반만년 우리나라 역사에 처음으로 가난을 구제했는지를 경험한 지금의 노년 세대는 IMF 이후의 우리나라 경제가 잘못 가도 한참 잘못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내수 진작과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내세웠던 민주정권 10년은 IMF 이후에 오히려 침체를 가져온 것으로 보였다. 물론 우리나라의 고속 성장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우리나라는 IT 기반 경제로 이양해 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부동산이 가격이 안 오르고 고속 경제 성장이 없어진 우리나라의 균형 잡힌 조용한 경제는 진보와 보수 모두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진보는 경제 체제에 부동산 투기 등의 대박이 없어져 부유층이 되기 힘들어진 것에 분노했고 보수는 세금이 늘고 옛날보다 어려워지는 기업 이윤 극대화에 분노했다.
그래서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생각 하게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건설업과 대기업 위주의 경제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미 근본적인 수출과 개발의 동력을 상실한 우리 경제는 계속 거품만 쌓아 갔고 정부는 각종 눈속임으로 우리 경제는 아직 성장하고 있다고 변명을 하게 되었다.
10년간 우리 경제를 80년대 고속 성장으로 되돌리려고 했던 시도는 양극화와 헬조선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정부와 지도층을 향한 분노의 화살을 돌리기 위해서 언론과 국정원은 희생양을 만들었고, 을과 을 사이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일베로 시작된 여성과 약자와 북한을 타깃으로 분노를 표출하게 한 프레임워크는 대성공을 거두어 여성운동까지도 그 언어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그 한계에 다다른 현실에 대한 눈가림과 실패한 과거로의 회귀 시도는 대통령 탄핵과 함께 극적으로 중단되었다.
대기업은 구조적으로 스타트업/중소기업 위주의 경제보다 일자리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극대화된 효율과 독과점 구조 하에 있기 때문에 돈은 빨아들이지만 스타트업의 자유롭고 다양한 경쟁 속에서 나오는 혁신과 노동 시장의 다각화와 다변화를 꾀하기는 극히 어렵다. 특히 앞으로 제조업이 위축되는 상황 속에서 대기업이 고용을 이끌 수 있을 리는 없다.
대기업 위주의 수출 성장은 우리가 중국보다 더 큰 내수 시장과 더 저렴한 노동 시장을 갖지 않는 이상 우리 경제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될 수 없다. 기술로 승부하는 시대도 이제 끝났다. 가솔린 엔진의 극대화된 기술을 가지고 전 세계의 자동차 회사가 조금씩의 편안함과 편리함과 엔진의 힘의 차이로 경쟁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자동차 시장은 갑자기 나타난 테슬라가 판을 깰 수 있을 만큼 게임의 양상이 바뀌었다. 중국은 이미 전기차로 시작하였기 때문에 현대기아자동차와 경쟁 상대도 아니게 되었다. 소프트웨어는 거의 모든 기술이 오픈소스가 되어서 기술의 독점이 돈을 벌어다주던 시대는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은 빈부 격차를 줄여서 저소득층이 부유해지면 내수 경기가 살아나서 경제가 선순환이 된다는 이론이다. 이는 대기업보다는 서민과 중소기업이 돈을 갖는 구조이다. 지금까지의 경제체제가 집에서 가장 똑똑한 맡형에게 돈을 몰아줘서 형이 벌어오는 돈으로 온 가족이 먹고사는 구조였다면, 그래서 둘째 셋째는 형 눈치만 보고 살다가 명절마다 활극이 벌어지는 구조였다면, 소득주도 성장은 공정하게 분배해서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방향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가려면 물론 파이 자체가 커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미 파이가 커질 만큼 커졌고 맏형이 내는 성과보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혁신들이 더 중요해졌다. 물론 문제는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대기업이 자신의 공로도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며 돈을 안 내놓고 그 자금력을 이용하여 정부를 움직여 계속 그 체제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한 전략이다.
지금 소득 주도 성장이 각종 언론과 보수 정당에 비판을 호되게 받는 것도 결국 돈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소득 주도 성장은 지금까지 나름대로 힘들게 경제를 이끌어 온 대기업들에게는 아주 불리한 정책이다. 그동안은 탄핵 정국과 맞물려 이 정책에 반대를 하기가 힘들었지만 지금부터는 다시 정책의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다.
장하성 정책 실장이 말한 것처럼 그러면 다시 대기업 경제로 돌아가겠다는 말인가? 지금 돈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들은 당연히 그럴 것이고 그것이 그들에게 최선의 전략임을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의 경제를 견인해 온 대기업들과 그 경제 체제 하에서 온갖 희생을 해 온 현재의 보수 세대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우리나라를 구할 유일한 선택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10년의 실험에서 보았듯, 그리고 앞으로 중국이 제조업을 지배하는 시대를 보아도 다시 제조업 위주의 수출 경제로 돌아가는 것은 극히 위험한 발상이기도 하다.
혁신 성장은 실리콘밸리가 이끄는 미국식의 성장 방식이다. 미국식의 성장 방식은 한마디로 제조업 포기, 소프트웨어 올인이다. 물론 미국이 정책적인 결정을 내려서 제조업에 지원을 끊고 소프트웨어 진흥 정책을 쓴 것은 아니다. 극한의 시장 자유에 그냥 맡기다 보니 실리콘밸리라는 것이 생겼고 제조업은 망해버렸다. 망한 제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분노하며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연방 정부의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었다.
우리나라는 혁신 성장에 필요한 몇 가지가 없다.
첫째로 금융 생태계가 대기업에 유리하게 짜여 있어서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받고 실패를 계속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스타트업을 하면 신용불량자가 될 확률이 대박 나서 자산가가 될 확률보다 훨씬 크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엔젤 투자에 기반하기 때문에 투자금을 날려도 개인 파산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기업 인수 시에도 100% 주식을 사는 것이 아니라 51% 지배권을 사는 경우가 많아서 스타트업에 일찍 들어가서 주식을 보유한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거의 없다.
둘째, 다양성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문제를 우리나라의 방식으로 해결한다. 실리콘밸리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전 세계 사람들이 제각각 생각하는 문제를 공통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의 차이처럼 우리나라에 최적화되어 있던 아기자기하던 싸이월드는 페이스북보다 훨씬 먼저 소셜 네트워크 시장을 선점했지만 세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들어 간 페이스북을 이길 수가 없었다.
셋째, 정부의 계획 경제로 인해 경제 체제의 유연성이 없다. 서민 경제에 도움이 되고 상생하고 소득 주도 성장을 하려면 우버가 유리할까 택시가 유리할까? 다양한 이견의 여지가 있지만 해외 자본에 종속되고 지금까지 고생해서 택시 라이선스를 딴 택시기사들을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만들고 일반인들과 무한경쟁에 내모는 것보다는 택시가 오히려 더 서민 경제를 보호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우버가 택시를 궤멸시킬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을 위해 어떤 것이 도움이 될 것인가를 고민해서 만든 규제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스타트업 자본의 돈이 택시 카르텔의 자본을 통한 로비력을 압도한 결과이다. 직원의 복지로 유명한 실리콘밸리의 경제 체제는 복지 체제가 아니다. 가장 살벌한 자유주의 경제 체제이다. 연방 정부가 보장하는 출산, 육아 휴직은 0일이다. 회사가 망한다고 정부에서 세금을 지원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동차 산업처럼 산업 전체가 무너질 때에나 이루어지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이다.
결국, 대기업 위주의 금융과 경제시스템, 단일 민족국가로서의 다양성의 부재,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생겨난 정부 주도 계획 경제는 우리나라가 70, 80년대에 세계 경제의 강자 중에 하나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기제이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 혁신 경제를 막고 있는 한계가 되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한계들을 극복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미국의 견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20년의 장기 침체를 맞이했다. 일본이 지금 다시 페이스를 되찾은 것은 인구의 감소 때문에 줄어든 경제 규모와 인구의 생산력이 맞아 들어갔기 때문이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어서가 아니다.
중국도 2030년쯤에는 한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나라가 워낙 크니 그 안에서 다양성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단일 민족 국가는 아니니까. 정부의 독점적 지배력도 우리가 그랬듯 10년쯤 후에 가파른 경제 발전이 끝난 후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서서히 올라오면서 바뀌어 갈 것이다.
하나 빠진 선택지가 있다면 유럽식 수정 자본주의 체제일 것이다. 유럽식 수정 자본주의 체제는 35시간 근무제를 할 정도로 개인의 삶에 가치를 두며 소득 주도 성장을 발판으로 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향이다.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중요시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가 선택지로 삼기에는 우리의 인식체계와 가장 먼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돌아보면서 각 나라의 경제체제와 비교를 해 보면 몇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우선 대기업에게 다시 자본과 자원을 몰아주는 것은 앞으로 망할 것이 뻔히 보이는 산업에 재투자하는 것이고 지난 10년간 보수정권에서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 선택지이다. 대기업과 산업화 세력들은 돈을 독점하고 있는 나쁜 기득권이 아니다. 그들은 국가경제가 가장 어려울 때 이 나라를 헌신적으로 세운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방식이 중국의 도전으로 인해 더 이상 우리에게 경쟁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애석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당연히 그들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제조업과 수출에 나라의 미래를 거는 것은 너무 위험해 보인다.
기술 제조업은 우리가 계속, 최대한 경쟁력을 유지해야 할 우리의 강점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의 모든 역량이 되면 안 되는 시대가 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소득주도 성장은 수정 자본주의로 가든 혁신 성장으로 가든 선행되어야 하는 단계이다. 수정 자본주의든 혁신 성장이든 자본이 다양한 작은 기업들에 의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되면서 그 근간이 다져진다. 지금의 대기업이 자원을 독점하는 상태에서 자원이 확산되는 유일한 방법은 낙수효과였다. 그렇지만 낙수효과는 오히려 부의 독점을 낳는다는 것이 우리가 직접 체험한 실험의 결과이다.
결국 소득주도 성장은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이라기보다는 지금까지 대기업 위주의 정책이 한계에 다다라 지옥 같은 사회를 만들었고 그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장하성 정책실장의 말대로 "중소기업과 가계에 정당한 몫만큼 돌아가게 하는 성장”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지금까지 대기업에 몰아주었던 경제에 대한 “정상화"이지 국가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면 혁신 성장은 어떠한가? 우선 대기업에 몰아주었던 경제 구조가 소득 주도 성장으로 바뀌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유리한 경제체제로 변화할 것은 당연해 보이고, 대기업에서 자원이 풀리면 경제 구조도 훨씬 유연해질 것이다. 더 이상 대기업에서 잘리는 것이 인생에 끝이 아닌 세상이 올 것이다. 대기업이 아니어도 돈 벌 곳은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실리콘밸리 수준의 소프트웨어 강국이 될 수 있을까? 단일민족 국가인 우리나라는 다양성에 대한 거부감이 아직도 심각하다. 이는 일본도 극복하지 못하였다. 소프트웨어는 사용자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가는 제품이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자동차는 전 세계인이 기대하는 바도 비슷하고 세계인의 취향에 맞추기 쉽지만 소프트웨어는 전 세계인에게 통하는 언어와도 같다. 한국적인 앱은 미국인에게 어색하다. 중국적인 소프트웨어도 미국인에게 한국인에게 어색하다. 단순히 잘 만든 UX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은 세계인들과 함께 개발해야만 나온다.
해외 기업 인재들이 한국에 가면 한국 방식에 따라 한국 사람처럼 행동하고 한국적인 것을 배워서 나온다. 그들의 기술은 이용하지만 독창적 시각을 이용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하드웨어 제조업은 중국에 밀리고 소프트웨어는 우리나라 안에 갇혀있는 우리. 그리고 다양한 시각을 싫어하는 우리나라. 2020년, 중국이 하드웨어 기술로 한국을 압도할 때쯤 우리는 어디 방향을 보고 서 있을까?
글 유호현. 책 <실리콘밸리를 그리다>의 저자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