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집에서도 그래요...
어머니는 음식에 진심인 전라도 분이면서 위장이 약한 편이셨습니다. 그렇다 보니 '음식이 약이다'라는 생각으로 요리를 하십니다. 재료 손질 시에는 농약까지 철저히 씻어내시고, 되도록 손질이 덜된 싱싱한 식재료를 재래시장에서 구매하시고, 음식을 할 때 설탕 제로, 각종 조미료 제로를 지향하십니다. 이 맛에 길들여져서 인지 비싼 음식이 아니라 건강한 음식을 알아보는 미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단골집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어머니가 해 주신 음식 정도는 아니어도 건강하고 음식에 정성을 담는 음식점을 발견하게 되면 자주 갑니다.
저는 소식하는 편입니다. '소식가'라고 까지 말하긴 그렇지만 한꺼번에 많이 못 먹습니다. 어릴 적엔 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아담한 키가 그 때문이라고 하세요. :) 그땐 동물들이 생각나서 못 먹었습니다. 되려 의식 수준으로 보면 역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삼겹살과 통닭에 입문하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생선 킬러였어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무제한'이라는 단어가 붙은 음식점은 백발백중 저한테는 손해입니다. 일반 음식점에 가도 '지금은 다 못 먹는데 포장해 가면 안 되려나? 다 먹으면 너무 배 부르고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 남은 음식을 포장해 주시면 안 될까요? "
" 내놓았던 반찬을 다 버리긴 하는데 포장은 안됩니다. "
오늘도 저는 거절당했습니다. 제가 남긴 음식은 사료로 쓰일까요? 제가 포장해 가서 먹는 것보다 가축에게 가도록 양보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음식물 쓰레기로 온전히 처리될까요? 두고 온 반짝반짝한 샐러드와 각종 쌈채소들이 눈에 어른거립니다. 도대체 언제쯤 남은 음식을 포장해 가고 반찬이 한상 나오기 전에 먹고 싶은 것에 표시할 수 있을까요?
저는 공교롭게도 소식을 합니다. 저처럼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못 먹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제가 인정하는 친환경 생활자분은 그래서 소리 소문 없이 위생 봉투를 꺼내십니다. 많은 프로세스 비용을 줄이고 고매한 절약정신과 지구를 위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보게 됩니다. 먹고살만할 텐데 유난을 떤다고 하셔도 개의치 않겠습니다. 단골 집 중에서는 포장해 주시는 주인 분들도 계십니다. 되려 잔반을 포장하는 용기가 별도로 없어서 미안해하십니다. 이런 주인 분들 달라 보입니다. 오히려 음식에 진심이시니 더욱 귀하게 여기시는 게 아닐까요.
어머니는 음식을 버리는 일을 큰 죄라 여기십니다. 저는 이미 어머니께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바쁘다고 귀하게 손질하고 최대한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음식을 때를 놓쳐 못 먹는 일이 생겨서 버리게 되면 한동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언젠가부터 그래서 "조금씩만 싸주세요" 외치고 있습니다. 집밥이 얼마나 좋나요? 하지만 생활에 쫓겨 외부 음식점도 자주 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장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저는 죄짓는 일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습니다. 아마 음식을 포장해 가서 이슈가 생길 경우 그 책임을 음식점에 묻게 되는 경우가 생길까 봐 포장이 조심스러우신 것 같습니다. 포장한 음식에 대해서 어떤 이슈가 생기더라도 음식점을 탓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 지속가능성 PM을 하며 지역 내 음식점들의 친환경성을 고려하면서 먹고 싶은 반찬을 사전 조사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던 기억이 납니다. 종국엔 실현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한 상 차려졌을 때의 기쁨보다 남기지 않을 만큼 음식을 시키고 싹싹 비우는 기쁨에 대한 공감대가 커졌으면 합니다.
이제 더 이상 거절 당하기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