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필기구로 온갖 식과 도형과 지도로 가득 찬 고등학교 정리 노트, 선생님께 드리려고 종이로 만든 장미꽃 한 다발, 골판지에 도면을 그려서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으로 도배하여 만든 2단 필통, 가정 시간 한 땀 한 땀 바느질해서 만든 옷, 직장 상사의 빨간펜을 수없이 거쳐 완성한 전문가 이슈 페이퍼, 좋아하는 시인의 시와는 비교도 안되게 어설프지만 지어본 시. 놀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문을 잠가가며 완성한 석사 논문, 기획과 디자인 작업까지 참여하고 목차를 기획해서 만든 현대자동차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컨설턴트로서 만든 수많은 보고서들, 24시간 오픈하는 카페에서 새벽마다 써 내려간 원고 300매, 보고 또 보고 고치고 또 고쳐서 만든 개인 홈페이지.
창작물 앞에서는 숙연해진다. 비교도 자랑도 끼어들 틈이 없다. 몰입과 인고의 시간들이 건너온 과정의 숨결이 뚜렷하다. 토할 것 같은 긴 터널을 건너 결국 마무리하고야 마는 어떤 마음, 혼자만 아는 떨림과 인내를 넘고 또 넘는다. 만드는 한 만들려 애쓰는 한, 나는 살아 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을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