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매일 회사에서 지속가능경영을 이야기하는데, 왜 내 삶은 지속가능하지가 않은 것 같지? "
환경, 기후변화, 녹색금융, 지속가능경영이 ESG경영으로 불리게 될 때까지 줄곧 나의 커리어는 "지속가능성"이 화두였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을 파고드는 의문이 생겨났다.
거의 매일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10~11시까지 일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가끔은 날을 지새우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삶이었다. 직장도 연봉도 남부럽지 않았던 그때. 나는 현타가 왔다. 개인사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야근을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체력이 돼버려 그저 업무 시간 안에 나름대로는 최선의 최선을 다했다. 주어진 업무 시간 안에는 체력이 소진될 때까지 집중했고 소기의 성과도 있다고 느꼈는데 주변 시선이 많이 버거웠다. 스스로 위축되고 눈치를 봤는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그저 버티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왜 그래야 할까. 지난한 흙수저였기에 계층의 사다리에 올라타는 유일한 길은 누가 봐도 좋은 회사에 다니면서 악착같이 재산을 증식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라캉은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다. 나의 일상이, 삶의 구조가, 몇 년간의 행보가 나의 욕망인지에 대해 생각하다 깊은 회의감에 휩싸였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어, 지금의 내 모습이 내가 바라는 삶이었을까.' 스스로를 행복하다 느끼지 못하게 만든 가치와 기준들이 사회로부터, 타인과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씩 구분이 되면서 속았다는 느낌보다는 시원하고 명쾌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살아야 해' 진짜 삶을 살고 싶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부와 명예의 척도로서 평가받고 판단받는 서욱이 아니라 어떤 존재로 어떻게 살지 스스로 정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재미있게 살고 싶어' 버티는 삶이 아니라 겉은 화려하지 않아도 신나는 삶, 스스로의 재미를 찾고 다양한 재미를 끈질기게 추구하는 삶.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걸어갈 이유를 찾는 게 진정한 자유라고 한다. 나는 자유와 재미를 줄타기하며 나를 소진시키지 않는 삶이야 말로 내 삶의 지속가능성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지속가능경영과 비즈니스를 통해 타인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가 내 삶으로 들어가게 만들어서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인식하게 하는 데 있다.
" 나는 매일 회사에서 여전히 지속가능경영을 이야기하며 함께 하는 이들의 삶도 지속가능해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