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ora Imparo, 일상의 모든 틈새에서 배움을 발굴하는 법
배우자 출산휴가라는 생의 커다란 매듭을 짓고 복귀한 사무실. 그 사이에 회사에는 새로운 주임님들이 왔습니다.
낯선 주임님들의 인사가 반가우면서도 제 마음은 파티션 안쪽으로 자꾸만 움츠러들었습니다. 밀린 업무를 쳐내고, 집에서 기다릴 아이에게 1분이라도 빨리 달려가는 것.
제게 허락된 경험의 반경은 오직 ‘나의 일’과 ‘나의 가족’이라는 좁은 울타리뿐이었습니다. 주위 동료들을 살필 여유조차 없이, 그저 눈앞의 파도를 넘기기에 급급한 하루하루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퇴근길,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신입 주임님이 건넨 뜻밖의 한마디가 제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세차게 두드렸습니다.
“대리님, 꼭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헤맬 때마다
파티션 너머로 대리님을 보고 따라 했거든요. 그랬더니 일이 정말 잘 풀리더라고요!”
순간 벙벙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배려해 무언가를 가르쳐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내게 주어진 몫을 해내려 분투했을 뿐인데, 누군가는 그 뒷모습에서 길을 찾았다는 사실이 묘한 민망함과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동안 배움을 ‘선생님이 제자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수직적인 과정’으로만 한정 지어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임님은 제가 의도하지 않은 영역에서 스스로 배움을 캐냈습니다. 이것은 경험의 어원인 'Experientia'의 본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주임님은 자신의 모르는 영역(내부)에서 벗어나(ex-), 선배의 뒷모습이라는 외부 세계를 관찰하고 직접 시도(periri)함으로써 자신만의 근육을 만든 것입니다.
동양적 관점에서 봤을 때도 주임님은 경험(經驗)의 ‘험(驗)’을 스스로 실천한 셈입니다.
단순히 상황을 겪는(經) 것을 넘어, 타인의 태도를 자신의 업무에 적용해 보고 그 효능을 확인하는 ‘증명’의 단계를 거쳤으니까요.
저는 주임님께 업무 매뉴얼을 설명하지 않았지만, 주임님은 제 뒷모습에서 풍기는 몰입의 농도, 전화를 받는 호흡,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진정성을 흡수했습니다.
AI가 모든 정보를 요약해 주고 로직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시대라지만, 누군가의 삶이 뿜어내는 체온만큼은 결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의 뒷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문장을 세상에 던지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87세의 나이에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Ancora Imparo)"
거장에게 배움은 특정 교실이나 책 속에 박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길가에 굴러다니는 대리석의 결에서, 제자들의 서툰 손놀림에서, 매일같이 마주하는 빛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련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갱신했습니다.
그래서 반성하게 됩니다.
매일 성장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정작 배움의 장소를 ‘책상 앞’으로만 한정 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주임님의 시선이 제 뒷모습에서 배움을 발견했듯, 저 또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읽고 있는 뉴스 한 줄에서, 그리고 아이의 맑은 눈망울 속에서 배움의 단서들을 포착해야 합니다.
지능이 외주화 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모든 일상을 영원한 학교로 삼는 능동적인 탐구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당신은 누구의 뒷모습에서 배움을 발견했나요? 혹은 누군가에게 당신의 뒷모습은 어떤 길잡이가 되고 있나요?
경험이란 내가 직접 위험을 무릅쓰고 건너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앞서 건너간 이의 젖은 발자국을 보며 나만의 보폭을 찾아가는 연대이기도 합니다.
미켈란젤로의 다짐처럼 저 역시 다시 펜을 듭니다.
읽고, 듣고, 쓰는 모든 순간이 낯선 세계를 건너는 여행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Ancora Imparo.
오늘도 저는 세상이라는 길 위에서 기쁘게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