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의 언어
‘이민아 변호사의 신앙 간증집’이란 문구만 있으면 사실 읽고 싶은 마음이 잘 안 든다. 그런데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딸...’이라는 문구가 첨가되면 양상은 달라진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인본주의의 핵심인 문학을 근간으로한 지적 작업에 매달려온 초대 문화부 장관이 이민아 변호사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읽을거리를 더해준다.
그리고 이민아 변호사로 인해 철옹성 같았던 아버지의 무신론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글을 쓰는 사람답게 이어령 전 장관은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의 심경을 책(지성에서 영성으로)을 통해 고백했다.
이민아 변호사는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로 인해 유소년 시절을 오로지 부모님 눈치만 보면서 살아 왔다. 그러한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일찍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가정을 꾸렸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도 보란 듯이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는 악착같이 살았다.
그러나 거듭된 시련을 겪게 된다. 먼저 결혼 생활이 파경을 맞는다. 1992년에는 갑상선암 판정이 떨어진다. 암은 이후 1996년과 1999년에 두 차례 재발되면서 신앙과 삶에 있어서 큰 시련을 맞게 된다. 게다가 둘째 아들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판정을 받는다. 시련이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효자였던 큰 아들, 유진이 원인 불명의 혼수상태에 빠지고는 19일 만에 세상을 뜬 것을 비롯하여 망막 손상이 심해져 실명 위기에 처하기까지 한다.
한 가지 시련만으로도 삶을 살아가기가 버거울 텐데, 그녀의 불행은 겹겹이 찾아왔다. 마치 욥의 고통처럼... 이쯤 되면 있던 신앙조차도 부인하며 하나님을 증오할만하다. 그러나 그녀는 몇 차례의 신앙적 고비가 있었지만, ‘네 은혜가 족하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힘든 상황을 이겨낸다.
그녀는 1992년에 정식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지는 못하였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신앙은 2002년 한 목사님의 설교 말씀으로 인해 뜨겁게 불타오른다. 그 이후 성경 공부, 제자교육, Q.T 등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갈망하였다. 또한 잘나가던 검사직을 내려놓고 2009년에는 목사 안수를 정식으로 받고 미국의 각 주와 호주, 푸에르토리코, 중국, 아프리카 케냐 등을 돌며 청소년 치유사역과 전도 활동에 헌신했다.
이 책은 그녀가 하나님을 영접한 이후 그녀에게 일어났던 여러 가지 시련과 시험,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게 한 하나님의 역사, 그녀가 체험한 영적 깨달음을 성경의 내용을 토대로 말하듯이 써 놓았다. 때론 읽다가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신앙적 깨달음도 있었다. 특히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맞춤식 사랑의 언어로 표현하신다는 내용은 참 신선했다.
저자는 2012년 3월 15일에 소천했다.
그러나 그녀가 보여준 사랑의 언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히 오늘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