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트니스 큐레이터 Jul 14. 2016

영적 전쟁

지피지기 백전불태 (知彼知己 百戰不殆)


                                          

영적 전쟁은 단지 극소수의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특별한 은사나 소명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정할 때, 우리는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영적 전쟁은 이미 우리가 전쟁 한가운데 있음을 깨닫는 것으로 시작된다.
- 본문중에서... -

위의 말에 동의를 한다면 적을 알고 나의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그래야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일단 이 책은 영적 전쟁을 위한 손자병법과도 같은 병서이다. 그러하기에 전쟁을 치루기 위해선 모든 그리스도인이라면 필독을 해야 한다.
다소 원론적인 부분들이 다루어져서 웬만한 신앙인과 제자의 삶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면 튕겨나갈 문장들이 많이 있다. 나 또한 읽다가 튕겨져 나갔다. 그러나 미처 알지 못했던 내용들도 많았다. 가령 천사의 존재들이다. 우리는 늘 천사의 보호아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 가운데 있는 위대한 천사의 군대’라고 표현했는데 성경에서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은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 히브리서 1장 14절 -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천사가 찾아와 문을 열어 나오게 한 사건은 허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팩트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엘리사에 임한 불말과 불병거의 존재가 천사의 군대인 것이다. 이 장면은 꼭 반지의 제왕 마지막 편에 지원군으로 ‘유령부대’를 연상케 한다. 과히 대적할 수 없는 엄청난 수적 우위와 포스로 적들을 단숨에 쓸어버린다.

유령부대



천사의 종류도 다양하다. 전사 천사는 미가엘, 사자 천사는 가브리엘, 그리고 경배 천사까지... 더 놀라운 것은 루시퍼도 천사였다는 것이다. 영리한 천사였는데 교만으로 인해 천사들에게 쫓겨났다는 것도 새롭게 안 사실이다.
또 한 가지 리마커블 한 내용은 영적 전쟁의 핵심은 교만과 염려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낮춤으로써 교만을 다스리고, 염려를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불신과 두려움을 다스린다.’


교만을 대하는 원색적인 태도가 있다. “잘 되면 하나님 탓, 못되면 내 탓”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잘 되건 못 되건 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엔 기특하다고 여겨질 듯하다. 성경에도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일축했다.
염려하는 마음은 두려움과 불신을 더욱 깊게 만든다. 그래서 모든 생각이 부정적으로 변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케 한다. 또한 염려는 생각이 많아지게 된다. 경우의 수를 다 따지게 된다. 그러다보면 하나님의 존재는 이미 내 안에 없게 돼버린다.
고로 교만과 염려는 반드시 영적 전쟁에 있어서 넘어야 할 도전과도 같다.


예수님 십자가의 승리로 인해 판세는 역전이 되었다. 사탄도 우리를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선포하고 대적하는 기도는 사탄이 가장 무서워하는 주문(주기도문)과도 같은 것이다. 자신의 상태를 잘 파악하여 이것은 악마의 계교라 생각될 때는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대적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악마를 대하는 신앙인의 자세인 것이다.
누구나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닌다. 겁도 없이 예수님께도 나타나 맞장을 떴지만 3 대 0으로 완패를 당하고 떠나버린 적도 있다. 그러나 우린 늘 이길 수 없다. 그렇다고 늘 지지도 않는다.
다양한 루트로 사탄은 자신의 I.Q 3000의 실력을 뽐내며 우리를 획책하려 할 것이다. 신실했던 목사도 한 번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뜨려 버렸다. 하물며 평신도인 우리는 오직 하겠는가. 아참! 신앙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사탄은 관대하다는 말은 들었다.
신앙을 갖고자 막 쪄낸 찐빵처럼 뜨끈뜨끈한 이들이 일순위에 든다.

사탄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에서 멀리 떨어진 삶을 살게 만들고자 한다. 신앙을 흔들기 위해서 소망, 사랑 따위는 기꺼이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늬만 신앙인인 모습이 그들의 목표이다.

사탄은 도처에 있다.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정치에도, 문화에도, 경제에도, 유명 인사들에게도, 사탄의 하수인들을 심어 놨다. 감언이설로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대중의 인기를 받은 후 그들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이러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사탄과 맞설 정예부대가 너무도 부족한 요즘이다. 말 그대로 중과부적(衆寡不敵)이다. 그 옛날 신앙의 부흥을 일으켰던 영국의 한 교회는 신도가 없어서 교회를 팔아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십자가만 떼고 이슬람 사원이 들어섰고, 또한 락카페로 쓰이고 있는 현실이다. 거룩함이 소멸돼 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영적전쟁인 것이다. 그런데 신자들은 알면서도 수수방관하거나 모른 척 한다. 마치 선거에 관심 없는 대다수의 국민들처럼 말이다. 영적인 것을 말할 땐 무언가 사이비 같고 난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 전쟁에 대한 준비는 간단명료하다. 그것은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다.
에베소서 6장 10절, 11절은 말한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전신 갑주를 입으면 겜셋(game set)이다. 아이언맨 보다 더 강한 갑주가 성령의 갑주인 것이다. 그 제원을 한 번 살펴보겠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과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그리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돌이킬 수 없는 영적 전쟁에 한 가운데에 선 그리스도인으로서 지피지기 백전불태의 정신으로 승리의 전리품을 취할 수 있도록 주님의 강한 용사가 되어야겠다.




          우리에겐 파라클레토스의 영이
                          함께 하지 않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책 리뷰 : 땅끝의 아이들(이민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