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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트니스 큐레이터 Jan 17. 2016

신영복 교수를 생각하며

그가 남긴 흔적

신영복 교수가 향년 75세로 별세하셨다.

피부암 진단을 받고 투병 하시다가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어 돌아가셨다.

신영복 교수는 20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셨다.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그가 남긴 흔적인 두 편의 책을 읽고 독후 노트를 남겼던 내용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통혁당 사건 즉 통일 혁명당의 주도 세력을 검거한 사건으로서 이때 신영복 선생이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받게 되었다. 22년의 감옥생활동안 옥바라지를 해온 계수씨와 형수님 그리고 부모님에게 편지 식으로 보낸 내용을 엮은 글로써 옥중서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글의 내용은 중국식 표기인 한자를 많이 인용하여 다소 어렵고 집중하기가 힘들지만 전공공부를 한다는 심정으로 정독하여 읽으면 그 안에 담겨진 사물에 대한 사색이 깊고 넓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고의 세월동안 신영복 선생은 많은 양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의 녹이 쌓일 정도로 다양한 사고의 길을 넓혔다. 특히 그곳에서 붓글씨를 배웠는데, 출소할 당시에는 그 솜씨가 가히 전문가 수준을 넘을 정도로 빼어났다.

신영복 선생의 옥중 편지로 수인(囚人)들의 실제 겪고 있는 생활상을 상세하기 알게 되었다. 그는 계수씨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내용을 적어 보냈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파낸 한 덩이 묵직한 체험을 함께 나누는 견실함을 신뢰하며, 우리 시대의 아픔을 일찍 깨닫게 해주는 지혜로운 곳에 사는 행복함을 감사하며, '세상의 슬픔에 자기의 슬픔 하나를 더 보태기'보다는 자기의 슬픔을 타인들의 수많은 비참함의 한 조각으로 생각하는 겸허함을 배우려 합니다.」


감옥이라는 곳에서 서로의 슬픔과 비참함을 나누며 자신의 아픔 또한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따뜻한 광경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또 다른 내용이 적혀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앞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옆에 있다는 존재 자체만으로 불편함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정말 참기 힘든 모독일 것이지만, 그래도  죄에 대한 형벌 중에서 가장 가혹하다 말할 수 있겠다.


감옥에서 쓰는 글의 소재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중요한건 신영복 선생의 시야에 들어온 사물들은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는 절대자의 창조물과 같이 돌과 나무조차도 살아 움직여 그들만의 생각과 자태를 뽐내는 듯 생생하게 그려진다. 바람, 봄, 햇볕, 머슴새, 꽃과 나비, 매미 등등이 신영복 선생이 쓴 책의 주인공들이다.


신영복 선생은 긴 징역살이를 마감하고 그동안 읽고 쓰며 생각했던 경험들을 토대로 현재는 후학들을 양성하느라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찌 보면 생의 어두운 면을 보냈지만 그는 그곳에서 자포자기 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을 발견했고, 또한 수인들에게 꿈을 나눠주는 삶을 통해 생각의 전환을 가져왔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은 뇌과학적으로 말하면 뇌의 시냅스를 증폭시키는 과정이다. 시냅스의 활성화로 인하여 우리는 이루고자하는 생각에 몰입을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절실함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대학을 가고자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모두 떨어지고 군대에 끌려가다시피 들어갔다. 하지만 군대 안에서 생각의 전환을 함으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게 되었다. 먼저 5년간 피어왔던 담배를 끊었고 70여권의 책을 읽었으며 무엇보다도 제대 후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군대와 감옥이라는 환경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 사회와 격리된 생활이라는 공통된 상황 속에서 나는 신영복 선생이 가졌던 희망에 대해서 만분의 일이나마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서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다양한 책이 출판되는 정보의 홍수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책또한 좋은 내용을 담은 양서도 있지만 자기자랑만 나열한 졸렬한 악서들도 상당히 많다. 책을 분별하여 읽는 것이 필요한 요즘 시대에, 신영복 선생의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은 스테디셀러로써 세월이 지나도 손이 닿는 곳에 두어 여러 번 읽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마치 자신의 생각인양 뽐내고 싶은 내용들이 담겨져 있어서 참 좋다.




나의 동양 고전 독법, 강의


 

다행이도 이 책은 전공자들을 위한 강의가 아니다. 또한 이 책의 저자 또한 비전공자다. 신영복 선생은 성공회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친다. 그런데 왜 동양 고전을 말하는 것일까? 서점에 가면 저자의 이름을 걸고 고전이라는 책들이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다. 그만큼 고전은 자기 생각을 써 놓은 것이기 보다는 해석을 풀이한 것에 가깝기 때문에 책으로 출간하는 것이 다른 장르에 비하여 쉬운 편이다. 하지만 「강의」라는 책은 마치 율곡 이이 선생이 집대성한 「성학집요 : 선조 임금의 국정 운영을 위해 성인들의 어록을 역은 책」와 같은 절심함이 느껴져서 다른 고전 풀이집 보다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신영복 선생이 말하는 고전은 관점이 중요하다고 한다. 즉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며 그래서 역사를 통해 현대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지론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책에 소개한 예시 문을 선정하였다. 한 예로 공자의 「화이부동, 和而不同」이라는 표현을 들 수가 있다. 군자의 화이부동을 현대사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이렇다.

「화의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면서 나아가 공존과 평화의 원리이고 그에 비하여 동의 논리는 지배, 흡수, 합병의 논리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책을 읽으면서 상 남자 스타일의 장자가 너무 인상 깊었다. 혈액형과 성격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까칠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B형 남자와 같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장자는 만인이 추앙하는 공자를 명예욕에 노예가 된 위선자라고 비할 할 정도로 자기 색깔이 강하며 또한 그 당시 제자백가들과 치열한 논쟁을 통하여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였는데 그 논리가 상대의 허점을 예리하게 찔러 사람들이 그와의 논쟁을 기피할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책에 대한 한계성과 이론에 대한 무용론을 주장한 내용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제나라 환공이 당상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목수 윤편이 당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망치와 끌을 놓고 당상을 쳐다보며 환공에게 물었다. " 감히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만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책은 무슨 말입니까? 환공이 대답하였다. " 성인의 말씀이다." " 그 성인이 지금 살아 계십니까?" "벌써 돌아가신 분이다." " 그렇다면 전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군요." 환공이 말했다. "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목수 따위가 감히 시비를 건단 말이냐. 합당한 설명을 한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윤편이 말했다. " 신은 신의 일(목수 일) 로 미루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축 즉 굴대가)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굴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깎음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뿐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중간에 정확한 치수가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만, 신이 제 자식이게 그것을 말로 깨우쳐줄 수가 없고 제 자식 역시 신으로부터 그것을 전수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흔 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수레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도 그와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전하지 못하고 (글로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위의 내용은 서강대 철학과 교수인 최진석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강연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최진석 교수는 이 예시를 통하여 이념에 빠지지 말고 사건과 감각에 중점을 두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일상은 사건이지 이상이 아니기 때문에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때 나는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읽음으로 표현의 동력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전에 탐독하고 있다. 특히 소위 말하는 천재나 위인들 그리고 성공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은 고전 애독자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고전에 그리도 목숨을 걸고 읽었는가? 그 이유를 「리딩으로 리드하라」의 저자 이지성 작가가 말한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 천재들의 두뇌에 접속하는 행위가 고전 읽기라고.... 그 말의 뜻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생각들을 고전의 위인들을 통해 깨닫고 우리도 또한 창조적 동력을 키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전히 고전은 탐독하기가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건 고전을 읽게 되면 생각의 중폭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스노우 볼링 현상 (snow balling effect) 처럼 생각의 지평이 확장되어 창조력과 주체력을 통하여 기준의 생산자, 기준의 창조자가 되어 세상의 오리진 으로 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중요한건 그 주인공이 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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