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대한 또 다른 시각
소설가 김훈의 글은 독특하다.
지은 사람을 보지 않고 글만 읽어도 단박에 그가 쓴 글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그는 사물을 들여다보는데 뛰어난 촉수를 지녔다. 책의 소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밥, 돈, 몸, 길, 글.
한 여름철 즐겨 먹는 수박은 그저 순간의 더위를 해갈시키는 수분과 당분이 적절히 조합된 착한 과일로만 알고 있다. 그런데 김훈 작가의 촉수에 들어온 수박은 새롭게 태어난다.
책에서 묘사한 수박의 숨은 세계를 들여다보자.
수박을 먹는 기쁨은 우선 식칼을 들고 이 검푸른 구형의 과일을 두 쪽으로 가르는 데 있다. 잘 익은 수박은 터질 듯이 팽팽해서, 식칼이 반쯤만 밀어 넣어도 나머지는 저절로 열린다. 수박은 천지개벽하듯이 갈라진다. 수박이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 한 번의 칼질로 이처럼 선명하게도 세계를 전환시키는 사물은 이 세상에 오직 수박뿐이다. 초록의 껍질 속에서, 새카만 씨앗들이 별처럼 박힌 선홍색의 바다가 펼쳐지고, 이 세상에 처음 퍼져나가는 비린 향기가 마루에 가득 찬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한바탕의 완연한 아름다움의 세계가 칼 지나간 자리에서 홀연 나타나고, 나타나서 먹히기를 기다리고 있다. 돈과 밥이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것은 필시 흥부의 박이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 바로 이것이다.
사물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그리고 이 구절을 읽지 않았다면 수박에 대한 기가 막힌 묘사를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명명백백’해진다.
그것은 생각의 기초 체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