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게 제일 좋아

유년의 추억(사진은 중학교 시절)

1974년 한참 경제 발전을 위해서 새마을 운동이 활발하던 시절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태어난 시기가 하필 4월 1일 만우절이라니…. 그것도 빼도 박지도 못하는 양력 생일로.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만우절인 내 생일이 무척 싫었다. 왜냐하면, 남들과는 조금 격하게 생일 빵을 치렀기 때문이다. 처음엔 4월 1일이 내 생일이라고 하면 만우절인 거 다 안다고 하면서 맞고 뒤늦게 생일이라는 증거를 내밀면 생일 축하한다고 맞았다. 정작 생일 선물은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말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생일이 싫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만우절이 되면 모두가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일 홍보가 되어 참 좋다.


내가 태어난 시절엔 가난을 극복하고자 모든 아버지는 열심히 일했다. 물론 내 아버지 또한 고향인 마산을 등지고 혈혈단신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작지만 포근한 둥지를 만들어 안온한 가정을 꾸리며 경제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셨다.


‘공수래, 공수거’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요즘의 세상을 보면 공수래는 틀린 말인 것 같다. 왜냐하면, 빵빵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과 가진 건 불알 두 쪽 밖에 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과는 애초에 출발선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모두가 그저 입에 풀칠할 정도의 생활은 다 되어 보였다. 나 또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참지 못할 정도의 가난은 겪지 않았다. 단지 불편한 것은 있었다.


내 유년 시절과 아들이 겪고 있는 유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내가 살았던 유년 시절은 마냥 놀기에 바빴다. 그것은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의 밥벌이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방과 후 공부를 시킬 시간적 여유가 없으셨다. 그래서 나는 대충 숙제를 해 두고 밖에서 종이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그리고 다방구를 하면서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가끔 동네 형들이 야구를 할 때면 나는 대주자로 기용되곤 했다. 그 당시 나는 달리기를 아주 잘했다.

특히 구슬치기를 너무 잘해서 동네의 구슬들은 다 내 주머니로 들어왔다. 그렇게 모은 구슬은 어림잡아 오천 알 정도가 되었다. 오천 알을 가지고 장사를 했다. 구슬을 싸게 되팔았다. 가게에선 백 원에 삼십 알을 팔았는데 나는 육십 알에 팔았다.

그런데 내가 싸게 판다는 소문을 듣고 아이들은 아침 일찍 내 집에 찾아와 구슬을 팔라는 의미로 연신 ‘성운아’ ‘감자야’ 하고 내 이름과 별명을 번갈아 부르며 소리치곤 했다.

그렇게 구슬치기는 내 기억으로는 열두 살까지 계속되었던 것 같다. 그때 모았던 구슬은 박물관에 비치된 유물처럼 엄마의 손길에 힘입어 아름다운 ‘유리구슬 화분’으로 거듭나 지금도 거실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아들인 리성이 의 삶을 잠시 들여다보자.

아들은 지금 열세 살 초등학교 육 학년이다. 아들이 주로 가지고 노는 것은 닌텐도와 오버 위치 게임이다. 그리고 밖에선 축구와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처럼 온종일 놀 수 있는 처지는 못 된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그날 내준 숙제를 소화해 내느라 온종일 책과 씨름한다. 요즘은 밖에서 노는 아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앞에서 잠시 내 별명을 언급했다. 난 초등학교 때까지 별명이 감자였다. 동네 형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감자라고 부르게 된 유래는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다. 간사하게 웃는다고 간사라고 불렀다가 어느 날 감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리곤 세월이 지나 그 당시 함께 놀았던 형들은 나를 감자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감자라는 별명이 싫지만은 않다. 그런데 가끔 내 별명이 왜 감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좀 곤란하긴 하다.


나는 어렸을 적에 체구가 작고 외소 했다. 중학교 때까지 키가 130센티에 체중은 30킬로였다. 하지만 깡다구가 있어서 웬만한 힘센 또래 아이들에게 싸움으로 밀리진 않았다. 그리고 달리기도 제법 잘해서 동네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전체 3등으로 들어온 적이 있다. 이러한 경험은 나중에 대학교 다닐 때 4.19 단축 마라톤 대회에서도 이어진다. 물론 1등을 했다.

50대 지금의 나와 유년시절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