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마라톤 중..
아이의 까르륵거리는 웃음소리, 천진난만한 해맑은 얼굴을 보면 세상의 모든 사랑이 아이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요즘 같은 저출산시대에서 아이의 존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운으로 보일 때가 있는데 아이를 보며 많은 이들이 귀여워하며 말한다.
"아이가 너무 이뻐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아이를 키우며 녹아버린 에너지가 다시 채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아이 낳기를 잘했다.'싶어 진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양육자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아이에게 쏟아내는지 알고 있는가.
실제 아이를 직접 육아하는 양육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이? 예쁘죠. 그런데 예쁨 ×1000으로 힘들어요"
아이는 분명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하지만 아이는 자라면서 양육자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 새로운 관심사와 자신의 취향, 생각등으로 바뀌게 되고 자연스럽게 양육자와 부딪히게 된다.
아이는 자신이 궁금해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하고, 양육자는 아이를 바르게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그 노력이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자신이 옳고 맞음을 강요하며 양육자를 이기려 한다.
사람들은 아이가 어릴수록 아이의 강요는 더 고집스러워지고 아이를 이해시키기가 어렵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이미 성인이 된 자녀를 양육한 양육자들의 경험담을 들으면 아이는 자랄수록 더 이해시키기가 어렵고 아이 역시 양육자를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아이들을 어긋나지 않게 이해시키기 위해 양육자들은 온 힘을 다 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화를 참고 감정을 억누른다.
아이가 자라고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양육자들의 인내심 역시 한 뼘씩 자라는 것은 아닐까.
아이의 성장에 맞게 양육자의 인내심도 자라고 있다.
육아는 아주 긴 마라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