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와 민주주의:복지 발달할수록 민주주의 지수 높아

by 시골공무원

사회복지는 단순한 시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적 권리이며, 국민이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치적 약속이다. 그래서 복지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누릴 수 있는지를 잘 결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정착이 필수 조건이다.



87년 체제의 민주주의는 김대중 대통령 정권에서 완성



한국 현대사에서 복지와 민주주의의 상관성을 선명히 보여주는 시점은 김대중 정부였다. 1997년 외환위기로 국민의 삶이 무너지기 직전 김대중 정부는 긴축이 아니라 복지 확대를 통한 사회 안정을 선택했다. 1999년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빈곤을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으로 명확히 하면서, 복지를 ‘권리’로 정립했다. 이 제도 변화는 단순한 정책의 전환이 아니라, 시민이 복지의 주체로 등장한 정치적 전환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민주주의 없이 불가능했다. 김대중 정부는 군사독재를 끝내고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룬 정부였다. 그 기반에는 시민의 참정권 회복이 있었고, 이는 곧 복지를 요구하고 결정에 참여하는 시민의 자기 결정권으로 이어졌다. 바로 이 지점에서 투표도 복지의 연장선이 된다. 어떤 정치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복지 방향이 달라지고, 시민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 복지를 약속하는 정당을 선택하고, 공공성에 가치를 두는 정치인을 뽑을 때 복지는 더 많이 실현된다. 하지만 투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민의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 민주주의의 초석



그 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국민의 적극적인 복지 요구이다. 복지는 권리인 만큼, 국민이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복지가 시혜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정치인 또한 복지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복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오랫동안 ‘빨갱이’, ‘좌파’, ‘사회 불안 세력’이라는 색깔론에 희생됐다.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은 체제 전복을 꾀하는 것으로 오도되었고, 복지를 외치는 사람들은 종종 국가 질서를 해치는 존재로 낙인찍혔다. 이러한 낙인은 시민들이 스스로 권리를 말하는 데 주저하게 만들고, 사회복지를 요구하는 것이 마치 잘못된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처럼 왜곡되었다. 그러나 복지는 생존의 문제이고, 존엄의 문제이며,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사회적 권리다. 복지를 위한 사회운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정당한 행위다. 사회운동은 시민의 목소리를 모으고, 제도 바깥에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며, 정치를 움직이게 만든다.

앞으로는 복지를 위한 사회운동이 더 이상 왜곡된 시선에 갇혀선 안 된다. 특히 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자협의회 소위 전노협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이뤄낸 빛나는 노동 현장의 개선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러한 적극적인 활동으로 모두 더 나은 노동 시장에서 함께 누리고 있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민주노총의 노동쟁의 행위를 색깔론으로 본다. 노동쟁의나 경실련,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의 정책 감시와 제안은 모두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건강한 민주주의 실천이다.

이들은 국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제 역할을 다하길 바라는 시민적 요구를 표현하는 것이다. 복지는 시민의 요구가 있을 때 실현된다. 그리고 시민의 요구는 참정권의 행사, 즉 투표로 이어지고, 또 다른 방식으로는 사회운동과 집단적 목소리로 구현된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힘이고 그 배경은 사회복지



반대로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의 복지는 이러한 정치참여 없이 시혜로서 내려졌다. 이 시기에도 일부 복지 제도는 도입되었지만, 국민이 결정하거나 요구한 것이 아니라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이 도입되었지만, 참여는 없었고, 대상은 제한되었으며, 국민은 정책의 수혜자라기보다는 통제 대상에 가까웠다.


이와 달리 복지가 잘 작동하는 국가는 대부분 시민 참여가 활발한 민주국가들이다.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세금을 기반으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이를 부담으로 느끼기보다 사회적 연대와 공정성의 실현으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단지 제도가 잘 되어서가 아니라, 시민 스스로가 복지를 자기 삶의 권리로 인식하고, 정치에 참여하여 그 권리를 실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복지는 정치의 문제이고, 투표는 복지를 실현하는 도구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힘은 시민의 자각과 요구다. 복지를 요구하는 시민이 있어야, 복지를 설계하는 정치인이 존재할 수 있다. 복지는 민주주의의 꽃이고, 그 꽃은 시민의 손으로 심고 가꿔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투표해야 한다. 그리고 투표 이전에,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영국의 전 총리 토니 밴의 조언



은퇴한 영국의 총리 토니 밴은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는 세상에서 제일 혁명적인 것입니다. 주권이 있으면 공동체를 위해 쓸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이 선택이라는 개념은 늘 뭐든 하나 골라라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죠, 만약 누군가 빚에 허덕이면 그 사람은 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빚을 진 사람은 희망을 잃고 절망한 사람은 투표하지 않습니다.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서 자기의 입장을 대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면 민주 투쟁이 될 것이지만 그런 일이 없도록 국민이 절망하고 개탄하도록 만듭니다. 국민을 통제하는 길은 공포를 주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교육받고 건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국민은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배워도 안 되고 건강해도 안 되고 사기가 충천해도 안 된다. 인류의 상위 1%가 80%의 부를 차지하고 있어도 기가 막힐 노릇은 사람들이 그걸 참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어지럽고 겁을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최선이란 시키는 대로 일하며 소박한 꿈이나 꾸고 사는 것이라 믿고 살아갑니다.” 좋은 시민이 아니라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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