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사례관리는 한국 사회복지 대학 교과과정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며 개별 클라이언트의 복합적인 욕구를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주요 실천 방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사례관리의 의미가 충분히 숙성되기 전부터 ‘제도적 수단’으로 급히 도입되었고, 이로 인한 혼선과 왜곡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10년, 공공 영역에 희망복지지원단이 출범하면서 사례관리는 공공복지의 중심 기제로 확장되었다.
당시 정부는 빈곤층과 위기가구를 신속히 지원하겠다는 명분 아래 사례관리를 광범위하게 적용했으나, 문제는 ‘실적’이 우선시되면서 사례관리의 범주가 지나치게 확대됐다는 점이다. 예컨대 난방비가 없는 가구에 일시적으로 난방비를 지원하는 것은 단순한 서비스 연계이자 긴급구호 성격의 조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단발성 서비스조차 사례관리 실적으로 분류되고 있다. 결국 위기·긴급 사례에 대한 신속한 지원과 장기적 사례관리를 구분하지 못한 채 모든 서비스를 사례관리라는 명목 아래 통합해버린 셈이다.
이 과정에서 민간과 공공의 사례관리 체감은 더욱 달라졌다.
민간은 비교적 당사자의 욕구와 참여 의지를 존중하며 사례관리를 진행하려 애쓰지만, 공공은 실적이라는 ‘보이지 않는 압박’ 속에서 형식적 사례관리로 흐르기 쉽다. ‘당사자 중심’이 아닌 ‘기관 중심’ 사례관리가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례관리의 핵심은 당사자의 자발성과 주도권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복지 서비스는 오랜 기간 ‘주는 대로 받는’ 시혜적 패러다임에 익숙해져 있다.
이 문화 속에서 사례관리 역시 당사자의 참여보다는 기관의 계획과 실적 논리에 휘둘리며 본래 취지를 잃어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사례관리는 당사자의 자기결정권과 주도적 참여가 전제될 때 비로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긴급지원과 사례관리를 명확히 구분하고, 복지 대상자가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표현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제도적·실천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사회복지 실천현장은 물론 정책 차원에서도 ‘당사자 주도성’을 사례관리의 중심 원칙으로 재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사례관리 계획 수립 시 당사자 참여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
계획 단계부터 당사자와의 협의·합의를 제도화하고, 당사자의 목표와 우선순위가
반영되었음을 문서로 명확히 남겨야 한다.
둘째,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복지사는 결정권자가 아닌 조력자로서
정보 제공과 선택지 안내에 집중하고, 결정권은 당사자에게 위임해야 한다.
셋째, 당사자의 자기옹호 능력을 키우기 위한 권리교육·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정례화해 스스로 욕구를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넷째, 민·관이 사례관리 기준과 지침을 통일하고, 공동교육·공동사례회의를 통해
인식 차이를 줄이며 긴급지원과 사례관리의 구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다섯째, 사례관리 종료 후 당사자가 과정 전반에 대해 평가·피드백할 수 있는
‘당사자 경험 평가제’를 도입해 기관의 실천과 성과평가에 직접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당사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례관리는 ‘진정한 복지 실천’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당사자의 참여와 주도성 강화는 사례관리의 본래 취지를 회복하고, 한국 사회복지 실천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핵심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