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네 기분이 어때?‖
감정코칭의 1단계는 아이의 감정을 포착하는 것이다. 감정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표정과 몸짓을 잘 살펴봐야 했다. 그리고 내가 짐작되는 아이의 감정을 추측해서 '속상하구나.' 라던지 '화가 났구나.'라면서 나름대로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는 말을 많이 했다. 이렇게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면 아이는 격한 감정이 가라앉아서 대화를 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고 했다.
속상하구나
화가 났구나
그런데 내가 아무리 '화가 났구나.'라고 말해도 아이의 감정이 잘 가라앉는 것 같지 않았다. 다시 더 공부해 보니 아이의 감정을 이렇게 단정적으로 넘겨 짚기보다는 열린 질문으로 물어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열린 질문이란 what, when, how 등 의문사를 넣어서 하는 질문이다. 단, why로 시작하는 질문은 취조하는 느낌이 드니까 안 되고 나머지 의문사를 넣어서 부드럽게 질문하는 것이 좋다고 배웠다. 감정을 물어보는 열린 질문 중 가장 대표적인 말이 바로 '지금 기분이 어때?' 이거다.
지금 기분이 어때?
그래서 정말 이 질문을 많이 했던 거 같다. '지금 기분이 어때?' 그런데 그럴 때 대답은 대부분 “몰라!”였다. 그나마 대답이나 해주면 고맙다. 아무 말도 없이 도망가거나 귀찮아하거나 심지어는 짜증을 내기도 한다. 감정코칭의 현실버전이다. 아이에게 감정을 물어보는 것은 아이에 대한 존중이고 최고의 배려라고 배웠는데 현실에서 아이 반응은 배운 내용과 너무나 다르다. 감정코칭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깊어갔다. '이렇게 하는 게 정말 아이와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방법 맞아?' 하면서 말이다.
‖자기 감정을 모르는 아이, 그리고 나‖
시간이 더 지나고 더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와 깨달음 끝에 난 아이가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알게 되었다. 우선 아이가 감정에 대해 물어봤을 때 “몰라”라고 대답했던 건 정말 몰라서다. 생각해 보면 엄마인 나도 내 감정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아왔다.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도 몰랐다. 은연중에 감정보다는 이성적인 판단과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믿어왔던 것 같다. 엄마인 나도 내 감정을 모르며 살아왔는데 어린아이가 자기 감정에 대해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게 무리였다.
몰라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건데 나는 그때 “네 마음인데 왜 네가 몰라. 어떻게 몰라.” 이러면서 답답해했다. 아마 당시에 나는 내가 내 감정을 다 알고 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기 감정을 잘 모른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내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잘 모른다. 아이가 감정에 대한 질문에 대해 “몰라”라고 대답한다면 “모르겠구나. 맞아. 내가 어떤 기분인지 모를 수도 있지. 엄마도 엄마가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다 싶은 때가 참 많아.”라고 대답해 보자.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엄마를 볼 것이다. '엄마가 진짜 내 마음을 아네...'라는 눈빛으로. 만약 아이의 그런 눈빛을 보고 그 순간 깊은 연결감을 느끼게 된다면 바로 그때가 감정코칭을 성공하는 순간이다. 그 느낌을 기억하고 기념할 필요가 있다.
모르겠구나.
맞아. 그럴 수 있지.
엄마도 엄마가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다 싶은 때가 참 많아.
‖감정을 꾸짖지 않기‖
아이에게 감정을 물어봤을 때 아무 말도 없이 도망가거나 귀찮아한다면, 심지어 화를 낸다면 혹시 내가 이전에 아이에게 아이의 감정을 가지고 야단쳐본 적은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가 솔직한 자기 심정을 말했는데 핀잔을 들었거나 훈계만 잔뜩 들었다면 아이는 다시는 자기 감정에 대해 엄마한테 말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어차피 엄마가 정답을 다 가지고 있는데 내가 내 감정을 솔직히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불신이다. 나도 그런 적이 많았다. "어떻게 동생을 미워할 수 있니?" 하면서 감정을 꾸짖었던 적도 있고 "너는 형이 저렇게 화를 내는데 재밌어? 웃음이 나와?" 하면서 야단을 친 적도 있다. 감정을 꾸짖지 말라는 말이 들을 때는 쉬운 말인 것 같았는데 막상 현실에서 딱 부딪히면 정말 행동은 그렇다 치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문제로 여겨지는 때도 많다.
어떻게 동생을 미워할 수 있니?
형이 화를 내는데 너는 어떻게 그게 재밌어?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렇다. 동생을 미워하는 건 썩 좋은 일은 아니지만 미운 감정이 올라오는 건 아이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사실 형제, 자매 심지어 부모도 미울 때는 밉다. 미운 감정을 딱 보고 그렇구나 하면서 인정을 해야 그 감정이 해소가 되고 그다음에 더 좋은 감정으로 이동도 할 수가 있다. 미운 감정은 그대로 있는데 그 감정에 대해 엄마한테 야단만 맞는다면 자꾸만 미운 감정이 드는 '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스스로 자존감이 떨어질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엄마가 시켜서 억지로 동생과 화해를 한다 해도 그 화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게 억지로 하는 사과와 용서는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로부터 배운 용서와 기다림‖
내가 '아, 그렇구나. 내가 예전에 아이의 감정을 꾸짖은 적이 많았네. 아이 입장에서는 나한테 감정을 말한다는 게 그저 잔소리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다. 이제부터는 아이의 감정을 정말 있는 그대로 수용을 해줘야겠구나.'라고 마음을 먹은 다음부터는 신기하게도 아이가 자기 감정을 나름대로 잘 표현해 주기 시작했다. 놀라운 변화다. 아이들은 엄마의 속마음을 정말 귀신같이 아는 것 같다. 내가 아이한테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그동안 네 감정 다 몰라줬던 거 같아.'라고 말로 표현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이는 말하지 않아도 엄마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다.
엄마는 아이를 키우며 참 많은 시행착오를 하게 된다. 특히 첫아이의 경우는 더 그렇다. 기대와 욕심은 큰데 처음이라 미숙하다 보니 아이에게 미안한 순간들이 자꾸 생긴다. 정말 고마운 것은 아이들은 엄마의 실수를 금방 잘 잊어버려준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과거도 많이 쌓여있고 미래도 많이 걸리는지라 진짜 중요한 현재를 놓치는 적이 많다. 아이들은 나이가 어릴수록 옛날 일은 잘 잊고 미래는 살아본 적도 없고 늘 지금 이 순간만을 가지고 판단해 준다. 마치 오늘이 처음인 것처럼 엄마에게 연습할 기회를 새로 제공해 주는 것이다. 엄마가 몇 번이고 실수해도 잘 잊어 주는 아이들에 비해 나는 아이들의 실수를 한 두 번도 참아주지 못하고 금방 화내고 답답해하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아이는 피어나는 존재‖
아이들은 기다려주면 다 자기 속도대로 자라기 마련이다. 감정코칭을 배울 때 아이를 '피어나는 존재'라고 들었는데 키워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조급한 엄마가 문제일 뿐 아이들은 시간을 허락하기만 하면 누구나 자기가 가진 모습 그대로 꽃을 피운다. 꽃봉오리일 때 내가 억지로 꽃잎을 벌린다고 빨리 피는 것도 아니고 간절하게 기도한다고 빨리 피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결국은 자기 때가 되어야 꽃이 핀다. 그런데 그 때가 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르지도 않는 관심을 준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감정코칭을 배우기 전에는 아이들을 보면 엄청 불안하고 조급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명의 근원적인 에너지를 믿는다.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결국은 자기 모습대로 잘 자랄 것이다. 감정코칭을 막 배웠을 때는 아이가 교과서에 나온대로 반응하지 않으면 답답해 했다. 이제는 감정이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크게 당황하지 않는 여유가 많이 생겼다. 오늘은 우리 아이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은 내 아이만의 내면의 이야기를 기대할 뿐이다. 모든 엄마들이 내 아이의 고유한 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아이도 행복해지고 엄마도 행복해질 것이다. 오늘 아이에게 한 번 물어보자. 그래서 지금 네 마음이 어떠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