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코칭이 막힐 때

마음으로 하는 진짜 감정코칭

by 제비

‖공감해 준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해줄까?‖


감정코칭에서 아이에게 공감하는 대화법을 배웠다. 그래서 아이에게 배운 대로 공감하는 대화를 열심히 해줬다. 그런데 공감은 문제해결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는 여전히 속상하고 나는 난감하다. 예를 들어, 아이가 친구가 자기랑 안 놀아준다고 속상해할 때 '그랬구나. 친구가 너하고 안 놀아 주는구나. 정말 속상하겠다.'까지는 했는데 그다음이 막막하다. 이제는 무슨 말을 해주나?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라고 물었더니 '몰라. 모르니까 엄마한테 왔지.' 그런다. 또는 '엄마가 저 친구를 나하고 놀고 싶게 만들어 줘'라고 한다. '엄마한테 다른 사람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지금 네 마음부터 밝게 바꾸겠다'라는 생각만 든다.


아이가 불편한 감정을 보일 때 배운 대로 대화법을 다 흉내 내보고 매뉴얼대로 5단계에 맞게 단계별로 감정코칭을 열심히 해봤는데도 여전히 나는 답답하고 아이 기분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배우기 전보다 더 괴로울 때가 있다. 아무리 감정에는 옳고 그른 게 없다고, 부정적인 감정도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실제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을 보이면서 짜증을 내면 나는 빨리 아이 기분을 긍정적으로 만들어서 나도 편해지고 싶다. 감정코칭을 안 배웠다면 아이한테 화라도 실컷 내고 야단을 쳐서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끌고 오면 될 것 같은데 이건 공감도 아니고 훈육도 아니고 애매해진다. 마치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속에서 막연히 걷고 있는 것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감정코칭은 말이나 행동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감정코칭은 말이나 행동이 아닌 ‘감정’으로 하는 거였다. 책이나 강의를 통해 감정과 감정이 만나는 느낌을 가르쳐주기 어렵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올바른 대화양식을 가르쳐주고 '감정코칭 5단계'처럼 행동순서를 말로 풀어서 연습을 시켜 주셨던 거다. 실제 감정코칭은 아이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나누고 아이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만나는 느낌 그 자체이다. 그것은 체험을 통해 몸으로 느끼는 것이지 말이나 글로 설명해주기는 어려운 영역이다.


‖감정코칭은 '감정'으로 하는 것‖


어느 날 축구를 마치고 온 아이가 샤워하는 걸 도와주고 있었다. 비누거품을 내고 물을 뿌려주고 있는데 아이가 불쑥 말했다.


"OO는 달리기를 참 잘해. 진짜 빨라. 여기 있다가 갑자기 저기에 있다. 대단하지?"

"그렇구나 그 친구는 달리기를 잘하는구나."

"또, OO는 슈팅을 잘해. 오늘도 그 친구 때문에 우리 이겼어. 공이 완전 쎄. 아무도 못 막아."

"그렇구나. 그 친구는 슈팅을 잘하는구나."


몇 번 비슷한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아이의 감정이 느껴졌다. '이 녀석, 친구들마다 잘하는 게 있는데 자기는 썩 잘하는 게 없는 거 같아서 속상한가 보네. 오늘 축구가 잘 안 풀린 걸까?' 나는 안타까웠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다. 그래서 조급해졌다. 아이가 이대로 자신감이 무너질까 봐 걱정이 됐다. ‘너도 너 나름대로 잘하는 게 있을 거야. 너는 뭘 잘하니? 잘 생각해 봐.’ 하면서 채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성급하게 아이를 부정적인 감정에서 건져주고 싶은 것은 엄마의 욕심일 뿐이라고 배웠다. 나는 나의 조급함과 안타까움은 가라앉히고 대신 아이의 속상함과 낙담이 되는 마음에 함께 머물러 있어 주었다. 그러면서 진심으로 따뜻한 응원과 사랑의 마음을 보내 주었다. 욕실에서 뭉게뭉게 김이 올라오는 가운데 아이는 무언가 골똘히 느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는 지금 인생이라는 항해 중에 열등감이라는 풍랑을 만났다. 아이는 자신이 없는 가운데 용기를 내어 신중하게 노를 젓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노를 빼앗아 내가 대신 저어 재빨리 건너편 육지에 데려다주고 싶은 조급함을 느꼈다. 아이가 헤매고 있는 순간을 함께 견뎌 준다는 건 엄마에게 참 어려운 일이다. 엄마는 아이가 밝고 맑고 기쁘기만 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어둡고 무겁고 낙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어 주는 게 힘들다. '너도 잘하는 거 많잖아. 그림도 잘 그리고, 이렇게 귀엽고...' 하면서 위로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다시 불쑥 말한다.


"엄마, 나는 보통이어서 다행이야. 수학도 너무 잘하면 수업시간에 재미가 없고 너무 못하면 내가 바보 같아서 싫을 텐데 보통이어서 다행이야. 국어도 그렇고."


갑자기 웬 수학이람. 운동 말고 공부에서도 별로 자신이 없는가 보구나. 아이가 나름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기는 한데 내가 생각했던 장소는 아니었다. 난 ‘엄마, 나는 이런 걸 잘해.’라는 장소를 기대했는데..


‖스스로 찾은 목적지‖


그런데 여기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보통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만약 비교를 통해 내가 누구보다 낫다는 우월감에서 비롯된 자신감이라면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우월감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맨 꼭대기의 소수와 맨 밑바닥의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중간이고 보통이다. 보통인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할 수 있다면 그게 오히려 언제나 씩씩할 수 있는 진짜 자존감이 아닐까? 가끔은, 아니 사실 번번이 아이가 찾아낸 장소가 내가 생각했던 장소보다 더 근사한 곳일 때가 많다. 그럴 때 아이한테 많이 고맙고 한 수 배운다.


"맞아. 보통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뭐든지 너무 잘하면 시시해서 재미없고 너무 못하면 속상하지. 엄마 생각에도 보통이 제일 좋은 거 같아"


아이가 밝게 웃는다. 엄마가 자기가 어렵게 생각해 낸 문제해결책을 지지해주니까 안도하고 기분이 좋아진 눈치다. 샤워가 끝났다. 물기를 닦아주고 머리를 말려주었다. 아이는 아까 불편했던 감정은 다 잊고 또 다른 화제와 다른 장난에 몰두한다. 난 머리를 말려주다가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그런데 아들, 축구를 할 때 공격하는 친구 있고 수비하는 친구 있으면 나머지는 다 뭐 해? 나머지 친구들도 무언가는 하잖아?"

"나머지는 패스해. 코치님이 나보고 패스 잘한댔어."

"그래. 패스도 정말 중요한 거야. 공이 연결이 돼야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하지."

"맞아."

"함께 하는 경기에서 역할을 안 하는 사람은 없어. 모든 선수들이 다 중요해. 패스해 주는 사람도 꼭 필요해."


마침 손흥민 선수의 어시스트가 화제가 된 직후였다. 아이와 어시스트와 패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했다.


이제 머리도 다 말리고 옷을 갈아입은 아이가 말쑥하다. 항해를 마치고 배에서 내린 아이가 아까보다 조금 더 어른스러워 보인다. 아이가 대견하고 사랑스러워서 마음이 찡했다. 아이와 깊이 마음을 나눴던 이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감정코칭은 말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엄마한테 자신이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은 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있는 아이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긍정성을 배운다. 그런 아이는 뭘 특별히 잘하지 않아도 그 모습 그대로 참 사랑스럽다. 감정코칭을 배우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