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몰두하는 아이와 소통하기

핸드폰과의 전쟁

by 제비

이제 5학년, 3학년이 되는 평범한 남자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우리 집에서는 늘 항상 핸드폰 사용 문제로 아이들과 갈등이다. 요즘 핸드폰들은 얼마나 재주가 좋은지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영상도 볼 수 있고, 게임도 종류별로 할 수 있으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아이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주고 싶지만 아이들을 사이에 두고 핸드폰과 하는 엄마의 대결은 번번이 엄마의 패배로 끝이 난다. 핸드폰보다 더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일관성과 융통성 사이‖


감정코칭은 오로지 아이들 마음만 읽어주고 오냐오냐 해주는 양육법이 아니다. 감정코칭의 목표는 아이들을 바람직한 행동으로 선도하는 데 있다. 감정코칭에서 말하는 바람직한 행동에는 2가지 원칙이 있다. ‘남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와 ‘나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가 그것이다. ‘남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엄하게 규제해야 한다. 무관용 원칙이다. 감정코칭이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는 양육법으로 이해하고 있는 부모들 중에는 엄한 것도 감정코칭이라고 하면 당황해하기도 한다. 여기서 엄하다는 말은 억압적인 것과는 다르다. 일관성을 유지하라는 뜻이다. ‘화가 나는 마음’은 이해해 주되 ‘화를 내는 행동’은 일관성 있게 규제해 주는 것이 감정코칭이다.


‘나에게 해가 되는 행동’에는 조율이 필요하다. 아이는 아직 핸드폰 보는 게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것에 동의를 못한다. 핸드폰 게임은 재미가 있는데 왜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건지 이해를 못 한다. 오히려 아이에게는 억지로 공부하는 게 자신에게 해롭다. 재미도 없는 공부를 억지로 하면 몸이 배배 꼬이고 하품이 나오는데 왜 이건 억지로 해야 하고 핸드폰은 하면 안 된다는 건지 답답할 따름이다. 올바른 생활 습관에 대한 설교는 그냥 지겹고 미래의 네가 후회하게 될 거라는 설교는 알아듣기 어려운 외국어다. 미래를 예측하고 판단하는 엄마와 감정에 충실한 아이의 대화는 서로 엇갈리기만 한다. 아이와 여러 번 대화를 해 봤는데 아이의 주장은 이랬다. '엄마, 공부는 어렵고 힘들어. 나한테 해가 되는 거 같아. 핸드폰 게임하면 즐겁고 행복해. 핸드폰은 안 하는 게 나한테 해로워.'


남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엄하게 규제를
나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따뜻하게 조율을

한참 듣다 보면 애 말에도 일리가 있다. 요즘 애들한테 요구하는 공부량은 좀 많은 게 분명하다. 영어, 수학, 국어에 우리는 해외에 살기 때문에 현지어도 배워야 한다. 피아노나 축구도 아이가 정말 좋아서 한다기보다 엄마 판단으로 악기도 하나쯤 가르치고 싶고 남자아이니까 운동도 하나쯤 시켜야 될 것 같아서 내가 배워보라고 시켜주는 거지 아이가 먼저 하겠다고 한 게 아니다. 모처럼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하는 건 못하게 하고 아이가 어렵다고 하는 건 내내 하라고 설득해야 하니 뭐가 도대체 감정코칭인지 헷갈린다. 감정코칭은 아이의 감정을 수용해 주는 거다. 하지만 바람직한 행동도 가르쳐줘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쯤 되면 감정코칭을 포기하고 싶어 진다.


‖나의 마음 살펴보기‖


아침에 눈뜨자마자 핸드폰을 찾고 드디어 어떤 게임에서 1등을 했다며 개운해하는 아이를 보며 함께 기뻐해주기란 쉽지 않았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보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 번은 정말 일주일간 아이의 핸드폰을 압수한 적이 있었다. 그 유명한 ‘폰압’이 우리 집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그 일주일이 나에게도 길었다. 내가 따뜻하지만 일관성 있게 엄한 감정코칭을 하는 중인지 엄마의 규칙과 규율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중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도 많이 물어보는 시간이었다.


스스로에게 묻은 질문의 답은 언제나 내 감정 안에서 찾아야 한다. 내가 아이에게 어떤 규제를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고 담담한 데다 자신 있게 시행을 하고 있다면 감정코칭을 잘하고 있는 것이다. 화가 나서 벌컥 즉흥적으로 규제를 하고 처벌의 기간이나 정도도 엄마가 일방적으로 정했으면 시행하는 동안에 내 마음이 그리 편치 않을 것이다. 그러면 감정코칭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건 감정코칭이 아니야’였다.


‖성공사례 살펴보기‖


같이 공부하는 동료 선생님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얼마 전에 성공적으로 핸드폰에 몰두하는 아이와의 소통에 성공한 적이 있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식당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머리를 모으고 핸드폰만 들여다보면서 어른들 하는 말에 대꾸도 안 하는 바람에 어른들이 모두 화가 났었다고 한다.


무작정 아이들한테 화를 내고 버르장머리와 식당 예절에 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으며 핸드폰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사이에 머리를 넣으며 ‘너네 뭐가 그렇게 재미가 있니?’라고 물었다고 한다. 힐끗 경계하며 관심도 안 주던 아이들 중에 한 명이 ‘이거 어떤 게임이에요’ 하면서 알려주더란다. ‘아, 그래?’하면서 잠깐 지켜봤더니 정말 스릴만점에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이기는 순간 함께 환호하며 ‘그 게임 정말 재미있구나’하고 공감해 주니 아이들이 앞다투어 이 게임의 훌륭함과 게임 방법에 대해 알려주기 시작했다. ‘이모가 보니까 정말 재미있는 게임 맞는 거 같아. 그런데 우리 이제 식사가 다 끝났고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거든. 시간을 얼마나 더 주면 지금 하는 게임이 끝날 것 같아?’ 아이들이 5분이라고 얘기하고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아이들도 자기들이 먼저 얘기한 시간이나 규칙은 생각보다 순순히 따르는 것을 나도 많이 경험했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진심’이다. 잠깐이라도 정말로 아이들과 한 마음으로 그 게임에 쏙 빠져서 즐거움을 느껴야만 이런 전략이 통한다. 남이 성공했다고 해서 내가 기계적으로 ‘정말 재미있어 보이네. 그런데 이제 시간이 다 되었어. 5분 후에 정리하고 일어나자.’라고 해봐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 짧더라도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그런 순간이 감정코칭의 성공이다. 매번 성공을 기대할 수는 없다. 농구 골대에 농구공이 들어가기를 바라면서 공을 던져보는 거다. 공이 튕겨 나오더라도 던져 봤다는 게 반은 성공이다.


‖'지지'없는 '지도'는 '지시'다‖


억지로는 안 되는 법이다. 한 번은 아이들이 나한테 ‘닌텐도’를 가르쳐주려고 애를 쓴 적이 있었다. 나는 썩 배우기가 싫었다. 그래도 아이들하고 같이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잠시 배워 보았다. 어려워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처음에는 배우기 힘들지만 열심히 연습해서 잘하게 되면 정말 재미있을 거라며 어른스럽게 격려해 줬다. 몇 번 해봐도 솜씨가 늘지 않아서 내려놓으니 좀 더 노력해 보지 그러냐며 자꾸만 더 권했다. 내가 배워야 할 가치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일을 반복해서 연습해야 하는 일은 참 고역이었다. 내가 수학을 가르쳐줄 때 이 녀석들 심정도 그랬을 거라고 돌이켜보니 웃음이 났다. 가끔은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또 정말 더 하고 싶지만 멈춰야 할 때도 있다. 살면서 배워야 하는 작은 가치들을 가르쳐주고 배우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 안에서 서로 관계가 틀어진다면 그건 정말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조벽 교수님께서 해 주셨던 말을 떠올린다. ‘지지 없는 지도는 지시다.’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지시’가 아니라 진심으로 ‘지지’를 해주며 ‘지도’까지 해주는 따뜻한 엄마가 되고 싶다. 어려운 길이지만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한테 닌텐도를 배우며 앞으로 아이들한테 너무 한글 맞춤법과 수학 연산문제를 너무 내 식대로 강요하지 말기로 다짐해 본다. 아이들이 진짜 좋아하는 더 재미있는 영역과 공부 방법과 그 때가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