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코칭이 잘 안되는 이유

초감정

by 제비

감정코칭을 처음 배우면 이론으로는 알 것 같은데 실제 생활에서는 적용이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감정코칭이 잘 안되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엄마인 내가 나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는 경우 정말 감정코칭이 잘 안되는 것 같다. 내가 내 감정도 잘 모르면서 아이 감정을 파악하기란 사칙연산도 모르면서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경우처럼 막막한 일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감정을 다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모든 순간 수많은 감정이 지나가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정말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게다가 우리가 한 순간에 하나의 감정만 느끼는 것도 아니다. 서로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끼기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나서 그 감정에 대한 나의 경험과 판단 때문에 연쇄적으로 더 복잡한 감정들이 떠오르기도 하기 때문에 내가 내 감정을 잘 안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우는 아이를 보고 화가 나면 화를 내는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감이 들면서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자책과 함께 무력감과 우울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감정이 또 다른 감정을 불러오고 과거 기억과 복잡한 생각들을 불러오면서 모든 게 복잡해져 버린다.


‖경험과 교육을 통해 형성되는 초감정‖


이런 '감정에 대한 감정'이 '초감정'이라고 배웠다. 초감정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비교적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자리잡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나에게 어떤 초감정이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고 한다. 초감정에 의한 반응이나 행동도 대개 무의식적이라 본인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초감정은 살아오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감정적 경험이나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어릴 때 개한테 물린 경험이 있다면 개를 보고 반사적으로 공포를 느끼고 반대로 반려견을 키우며 개와 친숙했던 경험이 있다면 개를 보고 반가움을 느낄 것이다. 학교나 사회에서 여자는 이래야 한다, 학생은 이래야 한다, 사람은 이래야 한다고 교육받은 내용도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되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 원인이 된다. 이런 게 초감정이다.


초감정에 대해 알고 나서 나는 내 감정에 대해 많이 겸손해졌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누구나 다 똑같이 느끼는 보편 타당한 감정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울거나 떼를 쓰면 불안하고 초조해지면서 빨리 문제 해결을 해주고 싶은 감정에 휩싸이는데 누구나 나처럼 이만큼 불안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보다 훨씬 더 차분하게 편안하게 아이의 감정을 지켜봐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나도 연습하면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초감정에 대해 배우고 나서는 아이가 운다고 무조건 초조해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아, 나는 아이가 울 때 유난히 불안하고 조급해하는구나. 왜 그럴까?' 하면서 내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바라보고 내 감정에 대한 원인도 탐구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처음부터 바로 된 것은 아니었지만 자꾸 생각해보고 연습해보는 게 도움이 되었다. 좋은 엄마 되는 것도 연습하면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감정은 아이 탓이 아니라 내 탓‖


초감정은 나에게서 일어나는 감정이다. 나의 과거 경험이나 내가 받은 교육 때문에 일어나는 나의 감정이다. 전에는 나와 아이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모두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에게도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내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 마음이 차분해지니 아이 감정은 어떤지 살필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러면서 아이는 무엇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앞뒤 정황을 살필 수도 있게 되고 이런 상황이라면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는 공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는 그렇게 어렵던 공감이 조금씩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공감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따뜻하게 바라보면 아이도 신기하게 차분해지면서 상황이나 자기 감정을 잘 표현해준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안도감은 사람 마음을 정말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


아이가 감정적으로 동요할 때 엄마가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요즘 우리 집 작은 녀석은 공부가 어렵다면서 한번씩 눈물 바람이다. 3학년이 되서 사회나 과학, 도덕 같은 새로운 과목이 늘어난데다 언제까지 그냥 둘 수가 없어서 최근에 영어 공부도 시켰더니 자기 딴에는 엄청 부담이 되었나 보다. 우리 아이보다 훨씬 어려도 훨씬 더 많은 양의 공부를 아무렇지도 않게 잘 따라오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 정도 가지고 죽는다고 세상이 다 무너진 듯 징징대니 이걸 어째야 하나 한숨이 나온다. 내가 너무 오냐 오냐 키웠지 하는 후회도 되고 이만한 시련도 못 견뎌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나 걱정도 된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고마운 일이다. 자기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 때 얼마든지 엄마한테 하소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아이로 자랐다는 게 엄마로서 고맙다. 어떤 감정이든 느낄 수 있고 느껴도 된다는 걸 알고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아이는 자유롭다. 아직은 그 감정을 다 조절까지 하지는 못하지만 차차 배워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은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도 있고 하고 싶지만 하면 안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 그런데 그런 좋은 가치도 너무 강요하거나 집요하게 설득하려고 하면 아이 마음은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다.


아이 하소연은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되 서로 동의할 수 있는 만큼으로 공부 분량을 조율하면서 매일 아이와 밀당을 하고 있다. 좀 더 시키고 싶은 내 욕심을 내려놓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견주어 보는 내 마음도 접느라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래도 이런 과정을 통해 누구든 자기가 원하는대로 다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남이 원하는대로 다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배워 나가면 좋겠다. 그리고 엄마한테 자기가 원하는 바를 바람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주면 좋겠다. 지금보다 더 잘하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기보다 지금 이미 이만하면 충분히 잘하고 있는 아이라고 믿어주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니 에너지가 조금은 충전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