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결혼하고 싶어!
중1아들이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한다
얼마 전, 아들이 뜬금없이 말한다.
"엄마, 난 결혼을 일찍 하고 싶어. 몇 살이 되면 결혼을 할 수 있는 거야?"
난 갑작스러운 아들의 질문에 당황했다.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 여자친구도 없는 녀석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싶었다.
"결혼이 왜 하고 싶은데?"
"결혼하면 재미있을 거 같아. 난 결혼하면 아이는 셋을 낳을 거야. 딸 둘, 아들 하나."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이 대화를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엄마도 잘 모르는데, 아마 법적으로는 열여덟 살 정도는 되어야 결혼 가능할 걸??"
"아, 그럼 고등학생이네. 그럼 스무 살은 넘어서해야겠다."
"너 스무 살이면 군대 가야 하는데?"
"군대 가기 전에 결혼을 할까? 다녀와서 할까?"
참 나, 점입가경이다. 아니 어디서 무엇을 보았길래 결혼을 빨리 하고 싶은 거지?
"진짜 엄마가 어이가 없다.ㅎㅎ 너 혹시 여자친구 생겼니?"
아들은 얼마 전 만나지도 않던 여자친구와 드디어 헤어졌다. 헤어지고 싶지만 헤어지지 못한 채 1년을 보냈다. 5학년 첫 고백으로 사귄 첫 여자 친구였지만, 허울만 있을 뿐 만나지도 연락도 자주 하지 않던 사이가 불편했나 보다. 드디어 헤어지고 온 날, 아이는 마음이 가벼워 보였었다.
"아니, 여자친구 당연히 없지. 그런데 나중에 사귀면 바로 결혼할 거야."
"네가 결혼하자고 하면 그 여자애가 바로 결혼 한대? 너 웃긴다. 결혼할 돈은 있고?"
"내가 결혼하기 전에 알바도 하고, 돈도 모을 거야. 그리고 엄마가 내 통장 갖고 있잖아."
아들의 이 현실성 없는 상상이 너무 웃기고도 계속 궁금했다. 도대체 왜.... 결혼이 하고 싶은 걸까?
"통장에 돈 많이 없어. 오해하면 안 돼!! 근데 결혼이 재미있어 보여? 엄마아빠가 맨날 행복하고 재미있어 보였어?"
"아니, 그건 아닌데, 난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 거 같아."
"왜 아기는 셋이나 낳고 싶어? 딸이 둘이나 있으면 좋겠어? 누나를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어?"
요즘 아들은 두 살 차이 누나의 사춘기 호르몬에 의한 스트레스와 히스테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터였다. 시답지 않은 일로 인한 짜증, 심부름을 받아내며 요즘 누나가 밉다고도 했다.
"누나를 보면 딸은 열두 살까지는 이쁠 거 같아. 그 이후는 모르겠지만..."
아들은 결혼에 대한 생각을 나름 구체적으로 한 모양이었다. 절대 엄마아빠랑은 같이 살지는 않을 것이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힘들면 엄마가 도와줘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돈이 없으니 옥탑방 같은 작은 집에서 시작해서 둘이 돈을 모아 큰 집으로 이사를 갈 것이라 했다. 애기가 셋이기 때문에 방은 4개가 있어야 한다고...
"아이를 네가 낳는 것도 아닌데 왜 네가 셋이나 낳겠다고 해?"
"우리 와이프랑 상의해서 낳을 거야."
"그니까. 왜 셋이야?"
"사회 시간에 배웠는데. 엄마, 우리나라 지금 출산율이 얼마인 줄 알아?"
"아마도.... 1이 안되지?"
"우리나라가 최저래. 0.7. 너무 심각한 거 아니야? 그래서 내가 좀 많이 낳아야 할 거 같아."
수업시간에 우리나라 인구에 대하여 배우며 심각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다고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셋이나 낳을 생각을 했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왜 결혼을 빨리 하고 싶으냐 하면, 외할머니가 나 결혼하는 거 보고 싶다고 했어. 외할머니가 엄청 오래 살진 못할 거잖아."
친정엄마는 우리 아들을 보면 '승*이 결혼하는 거 보고 죽어야지' 하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아들은 외할머니의 그 말도 그냥 흘려듣지 않았나 보다. 외할머니가 요즘 아팠고, 그게 또 신경이 쓰였나 보다.
"엄마가 보기에 외할머니 20년은 더 사실 거 같으니까 서른 살 이후에 결혼해도 돼."
이 순진한 녀석이 결혼에 대한 부담을 가질까 봐, 그리고 진짜 20대에 결혼을 할까 봐 서른 살 이후로 이야기를 해 두었다.
며칠이 지났다. 아들은 중학교에 와서도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이제 공부에 부담을 주기로 했다. 그동안 두 아이에게 공부에 너무 느슨하게 생각했고, 그 결과 성적은 매우 처참했다. 그래서 둘째는 조금 더 공부에 신경을 쓰고 아이이게 부담을 주고 싶었다. 잠들기 전 아이에게
"우리 2학기를 어떻게 보내고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를 좀 해 보자."
"엄마 미안, 나 지금 그런 공부 얘기 재미없어. 나 결혼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어."
"니 결혼 빨리 하고 싶은 거 알았고, 아이는 셋 낳을 거고, 엄마랑 같이 안 살 거고. 알겠어. 근데 아무것도 없는 남자랑 스무 살에 어떤 정신 나간 여자가 결혼을 하겠니? "
"너 일찍 결혼하고 싶으면 능력 있는 남자가 되어야 해. 여자들은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노래를 잘하거나, 잘 생기거나 이런 남자 좋아해. 너 어디 해당해?"
난 아들에게 팩트를 날렸다.
"왜 친절하고 착한 남자는 없어? 엄마 너무 외모능력 지상주의야. 난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어서 애기들하고도 잘 놀아줄 거야."
TV도 잘 안 보고, 연예인도 모르는 아이가 인스타에서 보았다며 '츄' 같은 여자랑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한다. 너무너무 예쁘고 귀엽고 착할 것 같다며 자신의 이상형은 '츄'라고 했다.
난 아들에게 팩트로 답해주었다.
"이상형은 현실엔 없어. 근데 네가 예쁘고 좋은 사람이랑 결혼하려면 네가 멋지고 좋은 사람이어야 해. 너 '끼리끼리'라는 말 알지? 비슷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끼리 만나는 거야. 지금부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 우유도 많이 먹고, 책도 많이 읽고 준비를 해야 츄같은 여자 만날 수 있을 걸?"
난 내가 가장 하고 싶던 말들로 마무리에 강한 힘을 주었다.
사회 시간에 배운 노령화 대한민국에 대한 걱정, 외할머니의 유언 같은 말들, 예쁜 부인 그리고 귀여운 아기들과 노는 것에 대한 환상으로 행복한 결혼을 꿈꾸는 현실감 제로의 아들의 꿈에 그저 피식 웃음이 난다. 하지만 그 마음을 긍정적으로 보고 존중해주고 싶다. 요즘세상 결혼도, 출산도 필수가 아닌 시대, 아들의 그 꿈이 현실이 되어주면 더 좋겠다. 그래도 스무 살 결혼은 말고 서른 살 결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