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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꽃psy Jul 26. 2024

가깝고도 알 수 없는 부부의 세계

엄마가 편찮으시다. 그리 오랜 시간 고생해 온 몸인데 아프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할지 모른다. 무릎 수술 후에도 차도가 없어 앉고 일어서는 일상이 불편해지셨다.


엄마가 아픈 이후, 엄마와 아빠는 오히려 사이가 좋아졌다. 이십 대 초반에 결혼을 하셨으니 벌써 50년 이상을 함께 해 온 부부이다. 어릴 적 내 기억을 들추어 보면 일 년에 서너 번 부부싸움이 있었고 겁이 많은 나는 엄마, 아빠가 행여 이혼이라도 할까 봐 늘 두려웠다.


그리고 내가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한 이후에도 엄마는 이혼을 하네 안 하네, 변호사를 알아본 적도 있었다. 어릴 적에는 엄마아빠가 이혼을 할까 봐 두려웠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이혼을 하지 않는 엄마가 이상했다.  


아빠가 폭언을 하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다. 아빠는 오히려 동네에서 사람 좋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듣는 사람이었다. 나에게도 아빠는 혼내지도 않는 자상하고 좋은 아빠였다. 그러나 술을 자주 마시고 엄마만 아는  여러 크고 작은 사고로 엄마 속을 지글지글 썩여 온 사람이다. 예를 들면, 음주운전이나 엄마와 상의 없이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등의 이상한 습성도 있었다.


그런 여러 번의 이혼위기에도 두 분은 50여 년을 잘 살아오셨다. 그리고 최근에는 누가 보면 엄청나게 금슬 좋은 부부처럼 어디에든 함께 다니시곤 한다. 엄마도 아빠도 예전에 비해 서로 더 배려하는 모습이 보이곤 하여 우리 자매들은  기분 좋게 아빠를 놀리곤 했다.

"오!! 아빠. 많이 달라지셨네!!"

"뭐가 달라져. 똑같지."

라고 말씀하시지만 아빠가 엄마를 챙기는 모습이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


60여 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부부. 그 부부의 큰딸은 환갑이 다 되어간다.

어릴 적 엄마아빠가 큰소리로 부부싸움을 하고, 사네 못 사네 이야기를 하면 난 누구를 따라가야 하나 혼자 울며 고민과 걱정을 했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이 이혼은 쉽지 않았고, 4남매나 되는 자식이 아마 이혼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어릴 때는 억척스럽고 부지런한 엄마가 불쌍하고 무서웠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싸우고 살 거면 차라리 이혼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가 스무 살이 넘어도 엄마 아빠는 이혼을 하지 않았다. 내가 이십 대 후반 엄마아빠는 또 무슨 이유인지 또 이혼 얘기가 나왔고. 엄마는 우리 사 남매에게 구구절절 이혼에 대한 당위성과 지지를 호소하는 편지를 썼다.


어릴 때는 엄마아빠의 이혼이 너무 많이 두려웠지만, 이제 나도 성인이고 엄마아빠가 이혼을 해도 수용할 수 있었다. 누구 편이 아닌 그저 두 분 각자의 삶을 살아도 난 두 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두 분은 이혼하지 않았다. 두 분의 이혼 위기 덕분에 마음이 힘든 상황에 내 옆에 있었던 오랜 선배와 난 연애를 시작했고,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나도 부부가 되니 별거 아닌 일로 싸운다. 지금 난 우리 엄마아빠만큼 많이 싸우는 부부는 아니다. 잘 지내다가 갑자기 별거 아닌 일로도 목소리가 커지고 싸우기도 하여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고 아이들을 걱정시키기도 했다.


어느 날 밤 중1 아들이 물었다.

"엄마, 아빠랑 이혼할 거야?"

너무 당황스러웠다. 한 번도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이혼?

"갑자기 무슨 이혼? 엄마아빠가 이혼한다 한적 있니? 왜 물어"

"아니, 엄마아빠가 싸우니까. 그럼 이혼하는 거 아니야?"


갑자기 궁금해졌다. 만약 우리가 헤어진다면 애들은 누굴 따라갈까?

"만약에 엄마아빠가 헤어지면 넌 누구 따라갈래?"

"난 아빠. 아빠가 더 돈을 잘 벌잖아. 그래야 엄마가 좀 더 편하지."

난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

"오! 현명한 선택이네. 아빠 따라가고 엄마 자주 만나자.ㅎㅎㅎ"

아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그렇게 좀 싸운다고 이혼하지 않아. 걱정하지 마. 엄마아빠 이혼하지 않아. 근데 앞으로도 안 싸운다는 보장은 없어. 아마 계속 투닥투닥 싸울 거 같아. 그래도 그냥 그러려니 해 줘. 두 사람이 아예 안 싸우고 친한 부부가 되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엄마가 살아보니..."


아들은 이혼하지 않는다는 말에 안심을 한 거 같다.

"엄마, 그래도 엄마가 좀 더 참아. 난 그러면 좋겠어. 엄마아빠 싸우면 신경 쓰이고 시끄러워."

아들의 솔직한 말에 난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그렇지 시끄럽지 ㅎㅎㅎ. 어릴 적 나도 무섭고 불안하고 시끄러웠으니까.


부부란 참 가깝고도 어려운 관계다.

누구보다 가깝고 나의 일부지만 헤어지면 남이 되는 관계. 60년 가까이 지지고 볶고 싸우고 서로를 가장 힘들게 한 사람들이 이제 인생의 말년에 서로를 가장 의지하고 있는 우리 엄마아빠.

인생의 끝에 와서 서로를 더 배려하고 '사랑'인지 '정'인지  애틋한 감정으로 소중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나도 남편과 이십 년 전 연애할 때처럼 맨날 좋지 않다. 그리고 우리 엄마아빠처럼 때로는 별일도 아닌 일로 유치하게 시작한 싸움이 감정이 상하여 몇 날 며칠 말을 안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일상은 이어지고 가족으로 서로 의지하고 함께 한다.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에 어쩌면 더 예의를 지키고, 배려가 필요하며, 아주 적당한 몇 센티의 거리가 필요한 관계가 부부라는 생각이 든다. 가깝고도 어렵고, 알 수 없는 부부의 세계에 들어선 지 18년 차. 우리 엄마아빠처럼 60년이 이어질지 더 이어질지, 아니면 더 짧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의 부부의 세계가 평화롭도록 내가 더 노력해야겠다. 아들의 말을 명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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