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일요일 아침, 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게으름을 피우고 밤늦게 보러 갈까 하다가,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조조영화를 예매했다. 아직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의 시간이었는데도 극장엔 사람이 많았다. 이 이른 시간에 이 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나처럼 이 영화를 기다렸던 사람들일까 싶어 괜히 반가웠다.


기다리던 영화였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많이 나오고, 무엇보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조선시대 단종의 슬픈 삶을 다룬 영화,〈왕과 사는 남자〉. 왕이었지만 지켜주지 못한 자리,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 이미 역사로 알고 있는 이야기였고 어디까지 가게 될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보고 싶었다. 아는 이야기라도 다시 마주하고 싶은 감정이 있었으니까.


영화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화려하지도, 과장되지도 않았다. 실제로 그들의 삶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너무 아팠다. 눈물이 그냥 줄줄 흘렀다. 아마 집이었다면 엉엉 소리를 내며 울음을 토해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단종 나이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그래서였을까. 왕이기 이전에, 너무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그의 모습이 더 아리게 다가왔다. 이미 알고 있던 역사였고, 이미 알고 있던 슬픔이었는데 영화로 마주하니 더 아팠다. 단종의 비극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이 너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켜내지 못한 자리, 선택할 수 없었던 운명, 말하지 못한 마음. 역사는 멀리 있지만 그 감정은 지금의 우리와 아주 가깝게 닿아 있었다.


조조영화의 좋은 점은 울고 나와도 하루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감정을 다 써버리고 나서도 아직 시간이 있다는 안도감. 보통은 하루를 살다 지쳐서 밤이 되어서야 울게 되는데, 오늘은 슬픔을 먼저 꺼내놓았다. 이른 시간 극장에서 슬픔을 미리 다 써버리고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의 나는 아는 결말을 향해 가면서도 기꺼이 마음을 열었고, 그만큼 솔직하게 울었다. 피하려 하지도, 견디려 애쓰지도 않고 그저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며 나의 감정도 함께 흘려보냈다. 조조영화는 일상의 나에게 새로운 시간을 선물한다. 울고도 괜찮은 하루, 아파하고도 다시 걸어갈 수 있는 하루. 아는 슬픔을 다시 마주했기에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하루를.

20260209_001304.png 공식 홈페이지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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