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나를 받아들이는 일

머리만 대면 금세 잠들던 시절이 있었다. 조금만 먹어도 금방 배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누군가의 시선이 부끄러워 괜히 어깨를 움츠리던 때도 있었다. 가벼운 야한 농담에도 얼굴이 붉어지던, 몸보다 마음이 더 예민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 모든 시절이 이제는 조금씩 멀어졌다. 요즘의 나는, 그때의 나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매일을 살아간다.

낮에 피곤해 한숨이 새어 나오고, 밤이면 잠이 쉽게 들지 않아 스스로를 달래며 눕는 날이 많다. 먹는 양은 늘었고, 체중은 말없이 올라갔다. 부끄러움의 문턱은 낮아지고, 대신 쉽게 화가 나고 쉽게 지치는 나를 발견한다. 갱년기라는 이름을 가진 호르몬이 드디어 내게도 와버린 듯하다.


예전의 나는 ‘절대 나는 저렇게 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그 아줌마들 틈에 어느새 나도 조용히 앉아 있다. 그러나 막상 그 자리에 앉아보니, 생각보다 나쁘지도, 창피하지도 않다.


저녁을 하고 있었다. 배가 꾸륵꾸륵했고 가스가 가득한 느낌이다. 그냥 살짝 방귀를 뀌어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참았나 보다. '살짝'이 아닌 소리가 너무 커서 나도 놀랬다. 거실서 티브이를 보던 남편이 놀라

"뭐여? 당신이 낸 소리야?"

방에 있던 아이가 나와

"뭐야? 누구야? 이렇게 큰 소리? 아빠겠지? 설마 엄마?"

"엄마 아니거든. 무슨 소리야. 이것저것 닦다가 소리가 난거지."

그 순간 웃기기도 하고 민망하기 했다.


예전의 나라면 얼굴부터 화끈거렸을 텐데, 지금의 나는 부정부터 하고 있었다. 부끄러움이 사라진 자리에

능청과 생존이 들어앉아 있었다. 아, 내가 정말 많이 변했구나 싶었다. 살아오며 쌓인 시간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고 있었다. 조금 느려지고, 조금 더 솔직해지고, 그런데 조금은 더 단단해진 나를 마주하는 중이다.


벌써 나도 50이 다 되었다. 간혹 숫자에 놀라기도 한다. 지금의 나를 어색해하고 놀라고 불편해하는 건, 나이가 아니라 아직 ‘변한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머릿속엔 빼빼 마른 44 사이즈 옷을 입고, 별거 아닌 일에도 까르르까르르 웃고, 부끄러워하는 내가 있다. 하지 현실의 나는 항아리 같은 몸에 먹을 것을 입에 넣으며 다이어트를 할 거라는 어불성설을 달고 있다. 편한 옷을 찾으며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나도 나다. 조금 많이 달라졌을 뿐,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나다. 과거의 민감함도, 지금의 둔감함도,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도 모두 나를 이루는 층들이다. 변화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 살아간다는 증거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변화의 한가운데를 조용히 걸어가고 있다.

20260213_012410.png 이미지=canva


매거진의 이전글조조영화를 보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