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사람은 같은 경험을 하고도 성장하고,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멈출까.
나는 오랫동안 이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왔다. 사람들의 커리어를 지켜보면 같은 사건을 겪어도 삶의 방향은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어떤 이는 그것을 실패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전환점이라고 말한다. 사건은 같지만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 역시 계획된 커리어를 살아온 사람은 아니다.
지방 국립대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농업회사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약학대학원에 진학해 석사를 마치고 연구소에서 일했다. 결혼과 출산 이후 삶의 방향은 또 한 번 바뀌었다. 출산의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겪었고, 그 경험은 나를 심리학으로 이끌었다. 사람의 마음과 삶을 이해하고 싶어 뇌기반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상담과 강의를 시작했다.
몇 년 동안 논문을 쓰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그 길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때 나는 한동안 ‘포기’라는 단어를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 경험은 실패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나는 책을 좋아했다. 언젠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소설을 쓰는 상상력은 없었지만 삶을 이해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글에는 늘 끌렸다. 그 마음은 결국 나를 출판으로 이끌었고 작은 출판사를 만들고 진로와 커리어를 다루는 신문을 시작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 커리어는 한 방향으로 계획된 길이 아니었다. 여러 번의 전환과 우연, 그리고 그 경험을 다시 해석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진 길이었다.
나는 글쓰기 코칭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어떤 이는 자신이 글을 전혀 쓰지 못한다고 말했고, 어떤 이는 자신의 삶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조금씩 달라진다.
“글을 쓰며 제 자신을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생각보다 제 삶이 많았네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된다. 사람은 경험 자체 때문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언어로 정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뇌과학을 공부하며 나는 ‘가소성(plasticity)’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뇌는 고정된 기관이 아니라 경험과 학습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커리어도 뇌처럼 변화하는 구조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관점을 ‘커리어 가소성’이라는 말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커리어는 거창한 성공 전략으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다시 바라보고 그것을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세련된 문장이 아니어도 괜찮다. 멋진 책이 아니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시간이다. 글을 쓰는 동안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글을 쓰며 나 자신을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그 말이 참 좋다. 아마 그 순간이야말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하는 순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