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화

한 달 프로젝트로 지인들과 셔플댄스를 배우기로 했다. 어지간한 몸치인 나는 엄청 쉬워 보이는 스텝도 몇십 번을 연습해야 그나마 비슷해진다. 매끄럽지 않은 동작을 하는 거울 속의 내 모습에 스스로 웃음이 나고, 다리는 아프고, 음악은 신나고 시끄럽다. 그 시끄러운 음악 소리 때문에 전화를 받지 못했다. 나중에야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가 두 통 와 있었다. 남편이었다.

'늦는다고 하더니 왜 전화를 했지?'


시계를 보니 10시 30분이었다. 별일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돌아온 건 짧은 설명이 아니라 대뜸 화였다.

“왜 전화를 안 받아?”

“내가 오늘 운동할 거라 했잖아?”

“운동하면 전화도 못 받아?”

“운동하는데 무슨 전화를 받아. 음악도 시끄럽고 멀리 두고 하는데. 왜, 무슨 일인데?”

“아들도 전화를 안 받고, 당신도 안 받고 왜들 그래?”

대뜸 쏟아지는 말들.


아침에 늦을 거라고 했는데도 아이도, 나도 연락이 되지 않으니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해와는 별개로 그 순간 내 감정은 조금 달랐다. 10시 30분이면 너무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아들은 체육관에서 친구와 운동하고, 가끔은 친구와 더 있다 오기도 하고 아파트 단지 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들어오기도 한다. 나는 그러려니 했다. 게다가 본인은 거의 매일 12시가 다 되어 들어오면서 왜 오늘따라 평소보다 일찍 와서 우리에게 화를 내는 걸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억울함과 서운함, 그리고 맞받아치고 싶은 마음이 같이 올라왔다. 말을 조금만 더 보태면 바로 커질 수 있는 감정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나도 같이 화를 냈을 것이다. 설명하려 했을 것이고, 억울함을 말했을 것이고, 당신은 뭐를 잘했느냐 과거일도 불러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은 감정이 부딪혔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말을 멈췄다. 이 말을 하면 어디까지 갈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그 감정에 그대로 올라타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걸 멈추는 일은 조금 다르다. 잠깐의 여유가 필요하고, 조금의 선택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의 화는 크게 번지지 못했다. 더 커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조용히 멈췄다.


통화가 끝난 뒤에도 마음이 완전히 편한 것은 아니었다. 운전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마음속에서는 계속 말이 오갔다.

'집에 가서 어떻게 할까. 나도 화를 낼까. 아니면 그냥 전화를 못 받아서 미안하다고 할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마음을 조금 바꿨다.

'그래, 화를 내면 뭐 하나. 그냥 이해하는 쪽으로 가자.'

그렇게 마음을 돌리고 나니 이상하게 조금 가벼워졌다. 내가 그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다는 것, 그게 기특하게 남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주 사소한 일로도 쉽게 화를 낸다. 정말 큰 일이어서라기보다 그 순간의 감정이 그대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거 아닌 일일수록 더 크게 번지기도 한다. 오늘의 일도 그랬다. 별거 아닌 일이었지만 그대로 두었으면 별일이 될 수도 있었던 순간이다. 그걸 그냥 지나가게 둔 하루.


그래서 오늘은 조금 어른스럽게, 다행히 평화롭게 지나간 날이었다. 완벽하게 잘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감정에 끌려가지는 않았다는 것. 그걸로 충분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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