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 저녁

주부에게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는 '오늘은 무얼 해서 먹어야 할까?'일 것이다. 아침을 먹으며 저녁생각, 저녁을 먹으며 내일 아침엔 뭘 준비하나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냉장고를 보니 얼마 전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냉이와 달래가 보인다.

'빨리 저거 먹어야 하는데....'

볼 때마다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반찬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 혼자 먹자고 무엇인가 준비하는 것은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 먹지 않으면 버려져야 할지 모른다.

'그래, 오늘 저녁은 달래와 냉이로 하자'


어머니가 시골 밭에서 손수 캐서 깨끗하게 미리 다듬어주신 냉이와 달래다. 흙이 묻어 있던 자리까지 깨끗하게 손질된 것을 보니 그 시간을 들였을 어머니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유튜브로 달래간장 만드는 법을 찾아보고 따라 만들고 냉이로는 된장국을 끓였다. 끓는 냄비 위로 구스하고 은은한 향이 올라왔다. 낮에 운전을 하며 노란 개나리 산수유를 보고 기분이 좋았는데 봄이 이렇게도 식탁 위로 올라오는구나 싶었다.


된장국 한 숟갈을 떠먹는데 그 맛이 참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어릴 때는 이런 맛을 좋아하지 않았다. 시골뜨기 출신인 나는 봄만 되면 달래를 캐고, 고사리를 뜯고 냉이를 캤다. 밥상에 자주 오르던 이 반찬들이 싫었다. 나도 진미채나 햄 같은 것이 좋았다. 하지만 우리 집 밥상에 그런 반찬은 특별한 날에나 올라오는 반찬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반찬들이 너무 좋아지기 시작했다. 파스타나 빵 같은 것을 먹으면 밥과 찌개와 나물반찬이 여러 개 있는 그런 밥이 너무 좋아졌다. 그렇게 싫던 고사리의 맛을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어른 입맛이 된 것이 30대 중반이었던 거 같다.


내가 끊인 냉이 된장국 그 향이 좋았고, 그 담백함이 편안했다. 아, 그런데 씀바귀가 두어 개 들어갔나 보다. 끝맛이 쌉싸름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맛이 오히려 입맛을 돋우는 거 같아서 난 좋았다. 사실 이 이상 입맛이 더 좋아지면 곤란한데 어찌 이리 맨날 입맛이 좋은 걸까....?


나이가 들며 입맛도 변했고 마음도 변했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받아들이는 것들이 조금씩 많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릇에 담긴 국과 작은 종지에 담긴 달래 간장을 보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을 거쳐 온 시간이다.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들에 가서 나물을 캐고, 아무 말 없이 다듬어 보내셨을 테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걸 받아 저녁을 준비했다. 그래서인지 오늘 저녁은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반찬이 없어도 너무 맛있는 저녁.


운동을 하고 조금 늦게 온 아들에게는 고기를 구워서 같이 주었다. 달래를 안 먹을 줄 알았는데 고기와 함께 먹으니 달래 간장이 너무너무 맛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이런 맛은 좋아하지 않던 아이다. 피자나 치킨, 마라탕을 좋아하는 아이가 향긋한 봄나물의 맛을 알아주니 괜히 신나고 반갑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우리 아이들도 내가 해준 밥이 가장 맛있고 엄마반찬을 그리워하게 되는 날이 오겠지. 아, 그런데 난 우리 엄마나 어머니처럼 그렇게 정성을 들여 밥을 준비해 주는 엄마가 되지는 않을 거 같다. 귀찮으면 그냥 사 먹자고 하며 맛집을 찾아놓는 엄마가 될 듯한데.. 그래도 오늘만큼은 조금은 닮아 있었다. 조용히 가족들을 생각하며 밥을 준비하는 엄마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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