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일상과 같은 날

생일이었다.

하지만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어릴 때는 생일이 참 특별했다. 누군가가 기억해 주고, 축하해 주고, 그 하루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되는 날 같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기대하게 되고, 괜히 더 들뜨게 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이 내 생일을 잊으면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에게는 특별한 날인데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은 것 같아서, 혼자 조용히 마음이 내려앉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일이라는 날이 예전만큼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게 되었고, 크게 서운해하지도 않게 되었다. 생일도, 새해도 결국은 어제에서 이어진 오늘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 것은 특별한 날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눈에 띄는 이벤트가 없어도 아무 일 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일, 익숙한 사람과 안부를 나누고 제시간에 밥을 먹고 무사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귀하고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올해 생일은 유난히 조용하지만, 또 그래서 더 편안했다.


친하고 편한 선생님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집과 조금 거리가 있는 시장 안의 백반집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그곳에 한번 가보았는데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한 번쯤 다시 가고 싶은 곳이었다. 음식은 정갈하고 맛있는데

거리가 있어 자주 가는 게 잘 되지 않아서 마음속으로만 종종 떠올리던 곳이었다. 마침 그 선생님과 약속을 잡으며 그 백반집이 생각났다.

“오징어찌개 되게 맛있는 백반집이 있는데 거기서 만날까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정해진 점심 약속이었다.


시장 안 식당은 조금 특별한 정겨움이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편안하고, 잘 차려진 말보다 따뜻한 밥 한 끼가 먼저 마음을 풀어주는 곳이다. 우리는 맛있게 점심을 먹으며, 이런 맛집을 함께 온 것을 기특해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아침에 미역국을 먹은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일부러 알리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대화 끝에 툭, 일상적인 이야기처럼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밥값을 내주셨시며 커피까지 산다고 나가자고 하신다. 내가 가자고 해서 온 곳이었고, 원래는 내가 사려고 했던 자리였는데 오히려 생일이라고 챙겨주시는 마음을 받게 되었다. 고맙기도 하고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내가 초대한 것 같은 마음이 있었는데 오히려 대접을 받은 것 같다. 하지만 그 미안함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나를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생일은 축하를 크게 받는 날이라기보다 사람의 마음을 다시 보게 되는 날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거창한 선물이나 요란한 이벤트보다 “오늘 생일이었구나” 하며 밥 한 끼를 건네는 다정함, 그런 소박한 마음이 더 깊게 남는다. 어쩌면 생일의 의미도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것인지 모른다. 어릴 때는 내가 중심이 되는 날이었다면, 지금의 생일은 내 곁의 사람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날이다.


오늘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였지만 괜히 더 고맙게 느껴졌다. 평범한 하루였고, 특별한 장면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좋은 사람과 마주 앉아 맛있는 밥을 먹고 따뜻한 마음을 받고 무사히 하루를 지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특별한 날이라서 소중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이미 소중하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며 차분히 느끼게 된다.


생일도 결국 수많은 하루 중의 하루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좋다. 일상과 다르지 않아서 편안하고, 평범해서 더 감사한 날.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 좋은 사람과 한 끼를 나눌 수 있는 하루, 괜히 더 따뜻하게 기억되는 하루. 올해의 생일은 그런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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