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very quiet moment”
벌써 작년이 되어버린 2020년 12월 16일에 혼자서 기차를 타고 리버풀 Walkers Art Gallery에서 열렸던 Linda McCartney - Retrospective 사진전을 보러 갔다. 리버풀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 프레스턴에서 기차로 50분 정도 걸리는 도시이다. 오랜만에 사진 전시를 보면서 내가 한참 사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과의 접점들을 느낄 수 있었고,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전시였다.
Linda McCarteny는 당대 인디 뮤지션들의 앨범 자켓 사진부터 비틀즈의 활동 사진들을 그만의 생생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기록을 하였다. 전시에는 폴 맥카트니와 함께 하며 찍은 가족사진들도 전시가 되어있었는데, 유명 아티스트가 아닌 가족사진 안에서의 그들의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리버풀이 비틀즈의 도시로 유명하기도 해서 더욱 뜻깊은, 특히 여행자이자 유학생인 나에게는 처음 간 도시인 리버풀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지는 전시였다.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전시에서 대중에게 발표되지 않은 사진들도 전시가 되었기에 사진 촬영이 전면 금지되었었다. 지금의 나에게 당시에 봤던 사진들은 오감에 충실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동안 추억과 기록으로서의 사진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가끔씩 생각을 해왔었기에 그동안 상상만 해보았던 사진 없는 기억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실험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짧게 결론을 내려보자면, 사진들로 가득한 기억보다 더 생생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확실히 내 몸과 머릿속에서 더 탄탄하고 생기 있게 돌아다닌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인데 이 사진전에 대한 기억은 감각에 충실하였기에 더 날것의 느낌이 든다. 나는 날것의 느낌을 참 좋아하기에 이 느낌이 마음에 든다.
전시회에 다녀온 이후에는 관람했던 사진들과 읽었던 사진 설명들, 그리고 맥카트니의 어록들을 천천히, 이따금씩 곱씹었다. 하이라이트 사진들에는 사운드 클라우드 오디오 안내가 제공되었다. 갤러리 홈페이지에 오디오 파일을 그대로 적어놓은 자료도 있어서 읽으면서 영어 표현들과 그때 들었던 내용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전시를 보고 돌아온 뒤 내가 느낀 것들을 바로 써낼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나에게 이렇게 깊게 다가오는 전시를 봐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이 전시에 대한 글을 쓰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전시를 보면서 린다 맥카트니가 어떻게 해서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떠한 자세로 사진들을 찍어왔는지에 더 집중을 했었다. 전시장의 내부를 훑듯이 본다면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가 담았던 비틀즈, 롤링 스톤즈 등 당대 최고의 유명 밴드들의 사진들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고 해석한 이 전시는 그뿐만 아니라, 그가 어떠한 마음의 변화를 겪으며 사진들을 찍고 또 당시 롤링 스톤즈 잡지의 커버를 찍은 첫 여성 사진작가로서의 삶은 어떠하였는지 등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서 볼 수 있는 전시였다.
전시장 첫 번째 관에서 읽었던 문구가 기억이 난다. 그의 아버지가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그에게 했던 말과 그의 생각이었는데 해석을 하면 이렇다.
“아버지는 나에게 사진을 찍으려면 충분히 배우고 난 뒤에 찍어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기엔 나에게 너무 많은 것들이 떠올랐고 난 그것들을 기다릴 수 없었다.”
이 문장이 전시 관람의 초반부터 나를 잡고서 다음, 그다음 사진들로 이끌었다.
전시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폴라로이드 사진들이었다. 맥카트니는 1972년에 Polaroid SX-70 camera 가 출시되면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개인적인 사진들에도, 작업했던 상업 사진들에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폴라로이드는 앤디 워홀이나 데이비드 호크니도 자주 사용한 카메라이다. 인상 깊었던 점은 맥카트니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제하고도 원래 작업을 할 때에 크롭을 절대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맥카트니의 이런 작업 방식이 폴라로이드의 특성과 인연처럼 맞물렸다는 점이 참 아름다웠다. 카메라가 기계이긴 하지만 작가가 본인의 철학과 운명처럼 맞닿는 카메라를 쓴다는 것이 아름답다.
폴라로이드는 특성 자체가 에디팅 자체가 불가능한 매체이다. 맥카트니는 크롭을 하지 않았고 본인이 '이 순간이다'라고 인식한, 순식간에 지나가는 순간들(fleeting moments)을 담은 사진에서 나오는 순수함과 진실함을(honesty) 믿었다.
맥카트니는 당시에 여러 유명 아티스트들의 앨범 자켓이나 기사 사진들 등을 찍었는데, 대부분의 사진작가들과는 다르게 스튜디오 밖에서, 그리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무드로 찍은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전시에 있었던 셀레브리티들의 사진들은 대부분 무대 뒤, 혹은 아주 일상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하품을 하거나 무대 뒤에서 긴장을 풀기 위해 술을 마시는 그런 모습들. 이러한 그만의 방식과 철학이 폴라로이드의 특성과 만났으니, 날것의 느낌이 나면서도 진실된 사진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폴라로이드 사진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특히 평소에 사진 작업을 할 때에 크롭을 자주 해왔던 나로서는 그동안의 내 방식을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였다.
사진 형식에서 벗어나 주제로 넘어가서 맥카트니가 찍은 가족사진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맥카트니는 폴라로이드로 집 안에서 가족들의 생활과 그 안에서의 재미있고 따뜻한 순간들을 자주 담았는데 이 가족사진들의 의미가 당시 사회적 맥락과 (contemporary context) 이어서 보았을 때에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고 곱씹게 되는 지점이다.
1970년대의 페미니즘은 가정 내부 환경을 domestic environments) 여성들이 받는 억압(female oppression)과 동일시하였는데, 여성이고 사진작가인 맥카트니가 가족과 가정에서 시간을 보내며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어쩌면 그에 대한 반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반증이 아니라, 가정 내의 주도권이 동등하게 여성에게도 주어진다면 가정이라는 개념과 그를 이루는 공간은 여성을 향한 억압을 나타내는 상징에서 언제든 벗어날 수 있다는 뜻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서 2019년 11월 런던 여행에서 관람한 사진전의 사진이 생각났다.
이 사진은 Sian Bonnell의 'House Beautiful'이라는 제목의 2005년도 작품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빨간색 커튼 그리고 예쁘게 잘 어울리는 욕실 타일이 인테리어에 집착하고 집에만 묶여있는 'the mythical obssesive housewife'를 풍자한 사진이다. 물론 그러한 housewives를 향한 풍자가 아니라, 그렇게 만든 사회를 향한 것이다. 이 내용이 작년 여름 계절학기에 들었던 리얼리즘 수업에서 배운 리얼리즘 여성 소설가들과 집 안에서의 시간 사이의 관계성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전시를 보며 가장 마음에 남았던 사진으로는 이 사진을 이야기하고 싶다. 맥카트니가 Francis Bacon이 남긴 스튜디오에서 찍은 자화상이다. 이 사진은 전시의 첫 번째 섹션에 있었다. 거울을 사용함으로써 구도와 심도에 complexity를 더하여 찍은 자화상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본인을 부각하지 않고, 심지어 이미 깨진 거울에 방 한 구석에 서있는 자신을 반사하여 방 안의 나머지 존재들과 자연스럽게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구도를 만들어냈다. 흑백사진에 자화상이라 하니 자연스럽게 비비안 마이어도 떠올랐다. 오디오 파일의 내용에서 폴 맥카트니가 당시의 상황을 묘사했는데, "A very quiet moment"라고 말했다고 한다. 크게 프린트된 사진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신기하게도 저 방 안에서 조용히 셔터를 누르는 그 분위기가 상상되었다.
전시의 전체적인 구조가 나에게 불러온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린다 맥카트니의 인생과 사진 인생 전반에 대한 섹션이 전시의 마지막이 아니라 제일 첫 번째 섹션에 있었다는 점이 나에겐 흥미롭고 신기하면서도 좋았다. 앞으로 관람객들이 볼 사진들이 그저 유명 아티스트들을 많이 찍었던 사진작가의 사진이 아니라, 린다 맥카트니라는 사람이 여러 여정을 거치며 독립적인 사진작가로서 남긴 결과물들이라는 것을 먼저 상기시키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 북부답게 비가 왔다가 그쳤다를 반복하며 축축했던 겨울날, 그리고 그날에 혼자 기차를 타고 가서 보았던 이 전시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