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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달래 Jun 06. 2020

내 눈물은 해소의 눈물이라 기록했다.

2020. 6. 4. 9주차


 그러니까 그건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었다. 내면의 밑바닥은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스스로는 파악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고 나는 나의 깊이를 과소평가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깊은 척했지만 실상은 얕디 얕은 시냇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평화롭게 반짝이며 흘러가는 것 같던 나의 내면은 사실 폭풍과 비바람에 매일 같이 난파를 걱정해하는 깊고 어두운 밤바다였다. 과거의 나는 그걸 받아들이는 게 무척이나 힘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부정하기로 했었나 보다. 회피는 오래된 버릇이고 든든한 친구였으니까. 10년이 넘게 이어진 회피는 어느새 사실이라는 가면을 썼고 나는 거기에 기꺼이 속아 넘어가 기로 했다. 그래야 사는 게 좀 덜 아프니까, 좀 덜 울 수 있으니까.


 내가 쓴 과거의 글을 보며 스스로 가면을 벗겨냈다. 그 과정은 나에게 너무 잔인했으며 버티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었다. 버틴다는 게, 버티는 게... 사실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그래 정말 문득 들었다.


 자기 연민을 혐오했다. 남들과 비교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 내 고통을 과장하는 건 몹쓸 짓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 고통을 무시했다. 남들과 비교하며 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천지에 널렸으니 난 우울할, 슬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난, 내가... 나에게 그리 가혹한 일을, 그토록이나 오랜 시간 저질러왔다는 걸 믿을 수 없었고 그래서 의사 앞에서 어린아이 마냥 목 놓아 꺽꺽 울었다. 그리고 말했다. 내 고통을 드러내 보일 수 없을 정도로 언니는 더 많은 걸 포기해야 했다고. 그래서 나는 내 고통을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고. 그 말을 입 밖으로, 공기 중으로 꺼내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의사는 말했다. 운이 없었다고.


 나는 평생을 내가 운이 참 좋은 사람이라 되뇌며 살아왔다. 그건 마법의 주문이었다. 그 주문 덕분에 버텼다. 아니, 버텨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사는 내가 운이 없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를 알았다. 의사는 아마 고통을 마음껏 나눌 수 없었던 상황과 처지, 주변의 사람들, 그저 모든 것에 운이 없었노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건 내 생의 큰 버팀목 하나를 강하게 내려치는 망치와 같았고 내 버팀목은, 정말이지 너무나 부실해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그게 서러워 엉엉, 꺽꺽 울었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목놓아 운 적이 있나 싶을 만큼. 엉엉, 꺽꺽.


 그 날, 내 눈물은 해소의 눈물이라 기록했다. 그런데 내 안의 문제는 오래되었고 또 높게 쌓여있어 완전한 해소에는 시간이 꽤 많이 걸릴 듯하다.



 가까스로 막고 있던 댐이 무너진 것 같다. 이번 주 진료 이후 자꾸만 눈물이 난다.


 의사에게 소리치듯, 울컥 밀려 올라오는 눈물에 몇 번이고 멈추며 말해야 했던 '언니는 더 많은 걸 포기해야 했으니까요.' 라거나 '저는 제가 바뀔 것 같지 않아요.', '제 우울을 말할 수 없어요.' 같은 말들이, 그 장면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이렇게 끊임없이 눈물을 내보내다 보면 정말 언젠가 나는 해소될 수 있을까.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래도 역시... 결말은 해피엔딩이었으면 한다. 원래 주인공들은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려도 결국 결말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거니까. 나도 결국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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