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둔한 아이였다.
코로나 시기, 줌 수업이 이어지고 있을 때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색종이 수업을 할 때면 낑낑대며 열심히 노력했지만 남들에 비해 아들의 속도는 느렸다.
줌 수업의 한계로 인해 선생님조차 모든 아이들의 속도를 맞추지 못했다. 결국 따라가던 순서를 놓치기 일쑤였고, 아들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없었다. 아들의 그림은 한결같았다.
졸라맨.
손재주가 없으니 그릴 수 있는 건 졸라맨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신기한 건 스케치북 가득 졸라맨을 그린다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화이트보드를 아들과 딸에게 각각 사줬었다. 그림을 못 그리는 아들도 매일같이 보드에 그림을 그렸다.
한결같은 졸라맨을.
딸의 보드에 그려진 그림과 아들의 보드에 그려진 그림은 같은 나이라는 것이 믿기 힘들 만큼 큰 차이가 났다. 그럼에도 아들의 졸라맨 그림은 계속되었다.
어느 날, 아들은 큰 스케치북 가득 그려진 졸라맨을 보여주었다. 매일같이 보던 그림이었기에 무어라 반응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아들의 표정은 신나 보였다. 그리고 그 수많은 졸라맨 하나하나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처음 알았다.
그 많은 졸라맨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동작을 하고 있었음을. 각기 다른 무기를 들고, 각기 다른 자세로, 무리를 상대하는 졸라맨도 있었고, 무리와 무리가 싸우는 졸라맨들도 담겨있었다.
스쳐 지나갔던 졸라맨들에게는 각각의 캐릭터가 부여되어 있었고, 4개의 부족이 연합하여 싸우는 서사가 있었다.
그 그림은 아들의 전쟁 세계관이 총집합된 것이다.
책을 읽을 때 아들은 항상 중얼거리며 읽었다. 혼자 놀 때도 아들은 항상 중얼거리며 놀았다. 심지어 길을 걸을 때도 아들은 가끔씩 중얼거렸다.
그제야 알았다.
아들의 중얼거림은 혼자만의 세계였다. 집중을 할 때도, 상상을 할 때도, 중얼거림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놀고 있다는 아들의 신호였다.
그날, 나는 아들이 그린 졸라맨의 전쟁 서사를 한참 동안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학교에서 그린 아들의 그림을 처음으로 냉장고에 붙였다. 아들이 그린 손에는 아들의 세상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