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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망이가 돌아왔다.

by 글쓰는 범고래

* 이 글은 2014년 6월 둥이들이 태어나고 쓴 일기를 다시 옮긴 것이다(참고로 똘똘이는 아들의 태명이고, 똘망이는 딸의 태명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둥이들과 퇴원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쌍둥이 카시트 장착도 연습해 보면서, 둥이들을 어떻게 운반(?)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퇴원날 새벽.


똘망이가 청색증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간호사가 전해주었고,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렸다.


피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괜찮을 거라고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니 CRP(감염수치)가 정상범위긴 하지만 약간의 수치가 있었다고 주치의가 전해주었다. 그러면서 다른 증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혹시나 모르니 추가적인 검사를 하자고 했다.


그렇게 똘망이의 퇴원은 허락되지 않았다.




똘똘이만 안고 병원을 나서는데, 그 순간부터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와이프는 벌써부터 눈물을 흘렸고,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도 미어지기 시작했다.


큰 이상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지만, 그 작은 아기를 홀로 병원에 두고 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똘망이를 위해서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아빠를 원망할 것 같았다.


똘망이의 콧대가 낮다며 똘망이를 놀린 스스로가 너무 미워졌다. 아빠의 애정이 듬뿍 담긴 놀림이었지만, 모든 것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면회 시간에 똘망이를 보러 가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아파왔다.


다른 아픈 아기들이 누워있는 병실에서 너무 평온하게 잠자고 있는 똘망이를 보니 목이 메어왔다. 주치의는 아무 이상 없을 거라고, 그저 완벽하게 하기 위해 추가적인 검사를 할 뿐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똘망이의 볼을 쓰다듬으면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눈물이 글썽여졌지만, 눈물을 흘리면 똘망이에게 그 감정이 전해질까 꾸욱 꾸욱 그 감정들을 누르고 또 누르면서 똘망이를 토닥토닥해주었다.




다음 날 똘망이에게 가서 노래를 불러주었다.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려 주니 신기하게도 눈을 찔끔거리며 웃어주었다.


내 목소리에 반응한 것인지, 그저 내 눈에 그렇게 보였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 이후 똘망이를 볼 때마다 같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렇게 산울림의 '꼬마야'는 똘망이의 노래가 되었고, 나는 똘망이와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똘망아, 아빠랑 빨리 퇴원하자. 나가면 엄마랑 오빠랑 다 같이 재미있게 놀자!'




검사 결과가 나올 동안 하루에 두 번씩 똘망이를 보러 가는 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검사결과가 아무렇지 않게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때서야 다른 아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작은 아기도 있구나'

'저 아기는 왜 수술을 했을까?'

'저 아기 부모는 왜 면회를 오지 않았을까?'


내 새끼 귀한 마음을 느껴보니 남의 아기라도 부디 건강하게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히 들었다.


'아기들아, 힘내! 꼭 건강하게 퇴원하렴.'




똘망이는 그렇게 건강하게, 아무 이상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원했다.


많이 먹고, 토실토실한 채로, 아빠와 약속한 것처럼 건강하게 병원을 나왔다. 3일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만큼 초조하고 마음이 아팠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또 생각하면 미안해지는 날들이었다. 부모가 된다는 건 어쩌면 아프고, 미안한 날들이 많아진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생각으로 문득 내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내 곁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는 똘망이를 보니 모든 것이 잊혔다.


그렇게, 똘망이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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