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cracy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Democracy는 정확히 해석하자면 민주정이 되어야 한다. Democracy는 정부 형태 중 하나일 뿐 이념을 뜻하는 '주의(-ism)'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즉 민주정의 핵심은 다수에 의한 지배이다.
다수의 동의하에 독재와 소수자에 대한 폭력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생각해 보면 민주주의는 반드시 자유로움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수에 의한 지배로 폭압적일 수도 있다.
이러한 성격을 내재하기에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는 양립 가능하면서, 파시즘과 같은 대중 독재체제도 함께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자유주의가 부재한 민주주의를 구분하기 위해서 비자유민주주의라 부르곤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 그 자체에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 내포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Revolution
'혁명(Revolution)'은 국가·사회·경제·조직 등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을 의미한다.
Revolution은 "지구 주위를 도는 (겉보기) 회전"을 의미하는 후기 라틴어 revolutionem(주격 revolutio)에서 유래되었다(탄창을 회전시켜 탄환을 발사시키는 리볼버 권총 역시 회전시킨다는 의미에서 파생되었다).
'회전'은 존재하는 대상체들이 축을 중심으로 돌고 도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기존의 것을 무너트리거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존재하던 대상들의 연결성을 내포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과 가치의 단절과 야만적 파괴는 혁명의 본질적 의미에서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다.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 (자유, 평등, 우애)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슬로건인 '자유, 평등, 우애'는 역설적이게도 공포 정치와 단두대의 상징인 로베스피에르의 작품이다.
대학 졸업 후 변호사가 된 그는 사형제 폐지, 법 앞에서의 평민과 귀족의 평등, 유죄를 선고받은 자에 대한 재산 몰수 폐지 및 서자들의 처우 개선 등의 개혁을 주장하면서 상퀼로트(Sans-culotte, 프랑스혁명 당시 프랑스 정국을 주도한 파리의 빈민 대중들을 지칭하는 용어)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급진파인 자코뱅파를 이끄는 지도자 중 한 명이 되었다.
1792년 8월 10일 봉기 이후 입헌군주제를 지향하던 입법의회가 붕괴되고 왕정 폐지와 공화정 수립을 주장하던 자코뱅파가 집권하는 국민공회 시대가 열리게 되자, 로베스피에르는 앙시앵 레짐(구 체제)의 모든 유산을 청산하려고 했다.
1793년부터 1년 동안 반혁명 분자, 반역자라 의심되어 체포된 사람들은 약 30만 명에 달했고, 그중 약 1만 7천 명은 사형을 당했다.
특히, 최소 30만 명 이상이 학살당한 반 혁명 지지의 방데 전쟁은 갓난아이와 임산부까지 무자비하게 학살하면서 근대적인 학살의 효시로 기록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공포 정치 시기 그가 정적들에게 했던 방식 그대로 돌려받으면서 최후를 맞이했다.
국민공회의 고발로 프랑스 헌병대에 체포된 그는 사실 관계 조사와 변론의 기회도 없이 만장일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혁명을 반대하던 반동 세력뿐 아니라 혁명 세력 중에서도 혁명성을 의심받던 사람들에게도 예외 없이 무자비한 숙청을 가한 단두대에서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처형당했다.
처형당할 당시 많은 사람들은 당대의 연설가가 죽기 전 남길 마지막 말을 기대했지만, 그의 최후에 남겨진 것은 처절한 비명뿐이었다.
헌병대에 체포당하는 과정에서 로베스피에르의 턱뼈가 권총탄에 날아갔고, 교도관들이 그의 턱뼈를 붕대로 대충 고정시켜 놓으면서 죽기 전에는 거칠게 떼어진 붕대로 그의 턱뼈가 덜렁거렸다고 한다.
그가 단 한마디의 유언도 남기지 못한 이유였다.
혁명론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혁명론>에서 혁명을 정치적 행위와 결부시켜서 이해했다.
그녀가 의미한 정치적인 행위의 본질은 '자유'였다.
'사회적'이거나 '경제적'인 문제는 혁명에서 본질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아렌트는 프랑스혁명의 실패는 정치적 자유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대에 대한 본질적 열망에 분배라고 하는 '사회적 문제'를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정치적 자유를 확립하기 위해 시작한 프랑스혁명이 다수의 빈곤층이 개입하고, 로베스피에르가 '빈곤'이라는 사회 문제를 혁명의 핵심 과업으로 삼게 되면서 실패의 길로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공복지와 경제적 평등을 우선시하면서 정치적 자유의 중요성이 희석되었고, 결국 혁명의 방향이 변질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시각이었다.
그러한 시각에서 그녀는 공산주의 혁명 역시 마르크스와 레닌이 자유의 공적 질서를 '프롤레타리아'라는 사회적 계급론으로 치환시켰기에 실패의 결과로 이르게 되었다고 했다.
자유
프랑스 인권선언에 나타난 '자유를 위한 평등(Equality for Freedom)'은 혁명이 언제나 자유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평등 역시 자유롭기 위해 추구하는 가치이지, 평등을 위해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평등은 공적 권리에 있어서 평등이다.
그리고 공적 권리란 사회적이거나, 경제적이 아니라 항상 정치적임을 의미한다.
미국의 독립전쟁을 통한 혁명기에서 미국인들은 분배의 정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영국의 명예혁명도 자유와 소유에 관한 것이었지 분배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은 파리꼬뮨으로 하여금 가격통제와 같은 것으로 배분의 정의를 추구하려 했고, 권력을 제도적으로 확립하기보다 폭력을 혁명의 도구로 삼았다.
그 결과는 고통이었다.
다시, 민주주의
독재와 권위주의, 그리고 전체주의는 하나의 질서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하나의 질서를 위해 하나의 목소리를 강요한다.
그러한 정치 체제에서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자유를 탄압하고자 하는 세력은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제도를 무너트리려고 하며, 비판의 목소리가 설 수 없도록 공론의 장을 오염시킨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의견이 절대적 선이라는 선동이 등장하며,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한다.
독재로 치닫는 권력자들은 누구보다 민주주의의 취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민중의 뜻을 따르는 민중파였으며,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독일의 히틀러 역시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민주적 형태의 선거를 통해,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권력자들이었다.
민주주의에서 제도적 장치를 강조하며, 현대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삼권분립을 가장 중요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거론하는 이유이다.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희생한 역사를 경험했듯, 우리도 유사했다.
4·19 혁명, 부마민주 항쟁, 5·18 민주화운동, 그리고 6월 항쟁 등 수많은 시민들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것은 결코 지금의 민주주의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가 희생하고 지켜내고자 한 것은 정치 체제 중 하나인 민주주의 그 이상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넘어 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허용하는 가치와 공적 권리에서의 평등이라고 하는 더욱 본질적인 가치이다.
민주주의에 관한 세계적인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민주적 과정은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국민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는 방법을 배울 가능성을 두고 벌이는 하나의 도박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민주적 시스템 그 자체가 항상 올바른 결론에 도달케 해 주지는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면서 민주주의를 통한 올바른 정치 발전은 더디고도 고된 인내의 과정을 거쳐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문득, 우리의 도박은 성공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