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있었던 일은 세 번 있어서는 안 된다.

by 글쓰는 범고래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지진은 충격이었다. 규모 9.0 지진이 발생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쓰나미는 공포였다. 이로 인해 2만 명에 육박하는 사망자와 약 47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그리고 동일본 지진으로 일본 본토는 2.6m가 동쪽으로 이동했으며 지구의 자전축은 16.5cm 이동하여 자전주기가 1.8 마이크로 초(100만 분의 1.8초) 빨라졌다.


스크린샷 2025-03-11 오후 1.51.09.png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지진은 1995년 6천여 명이 희생된 한신 대지진의 180배 위력이었다고 한다.




일본 이와테현 북동부에는 인구 3천 명이 채 되지 않는 후다이무라 촌(村)이 있다.

스크린샷 2025-03-11 오후 2.00.56.png ※ 후다이무라는 일본에서 북위 40°선이 지나는 지자체 중 가장 동쪽에 있다.

이 지역(산리쿠 지방)은 주변 다른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지진에 의한 쓰나미로 많은 인명피해가 빈번한 곳이었다. 1896년 메이지 산리쿠 지진과 1933년 쇼와 산리쿠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쓰나미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후다이무라에는 1947년부터 1987년까지 40년간 촌장으로 재임한 와무라 고토쿠 촌장이 있었다. 작은 촌이라고 하더라도 무려 40년을 재임하면서 10선의 촌장이었던 그는 재임 막바지에 주변인들에게 많은 비난과 욕을 얻는 일을 진행하였다.




와무라 촌장은 앞서 언급한 1933년의 산리쿠 지진 당시 극적으로 살아난 생존자였다.


그리고 그는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1896년에 일어난 메이지 산리쿠 지진 당시 15미터의 쓰나미가 몰려왔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재임 막바지, 두 번의 쓰나미로 큰 희생을 경험한 마을에서는 혹시 모를 쓰나미에 대비하기 위한 수문(水門)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논의되던 수문은 10m였지만, 와무라 촌장은 14m의 쓰나미가 있었기에 15.5m의 수문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와무라 촌장은 그의 재임 기간이었던 1967년에 이미 15미터 높이의 오타나베 방조제를 건설했었다.


그렇기에 똑같은 높이의 폭 두 배 짜리 수문 건설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예산 낭비로 비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옆 마을이었던 미야코 시에 건설된 10m 방조제도 '만리장성'이라고 악평받고 있었기에 그에 대한 비난은 더욱 거셀 수밖에 없었다.

스크린샷 2025-03-11 오후 2.23.17.png ※높이 15.5m의 방조제 모습.

그럼에도 와무라 촌장은 "두 번 있었던 일인데 세 번째가 있어서는 안 된다"라며 공사를 강행했다.


수문 완공에 들인 돈은 35억 6천만 엔(약 158억 원)이었다.

스크린샷 2025-03-11 오후 2.28.25.png ※후다이무라에 완공된 수문의 모습.




와무라 촌장은 1987년 4월 30일 퇴임했다. 그는 퇴임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村民のためと確信をもって始めた仕事は反対があっても説得をしてやり遂げてください。最後には理解してもらえる。 これが私の置き土産です。

촌민들을 위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반대가 있어도 설득해서 이뤄주십시오. 마지막에는 이해해 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남기고 가는 선물입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비난은 1997년 그가 88세로 별세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가 죽은 14년 뒤, 2011년 3월 11일.

모두가 알고 있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고, 쓰나미가 몰려왔다.

쓰나미 경보가 발령되자마자 후다이 수문은 원격 조정으로 수문이 닫혔고, 도중에 정전으로 인해 마을 소방대원들이 직접 수동으로 수문을 닫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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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색은 메이지 산리쿠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피해 영역. 위쪽 붉은 선으로 표시된 것이 후다이 수문, 아래쪽 붉은 선은 방조제. 아래쪽 방조제 쪽은 항구라서 방파제가 겹겹이 설치되어 있었기에 쓰나미 높이가 낮아지면서 방조제에 도달했을 때는 높이가 11.8m였다고 한다. 하지만 위쪽 수문 쪽은 쓰나미 높이가 23.6m에 달했지만 수문을 넘어온 물의 양이 많지 않아 끝내 마을까지는 닿지 않았다고 한다.


2만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동일본 지진에서 후다이 지역의 인명피해는 단 1명이었고, 그 역시 어선을 보러 갔다가 실종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옥 피해는 전무했다.

후세 사람들은 '후다이의 기적'으로 불렀다.


스크린샷 2025-03-11 오후 2.24.06.png ※동일본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당시 피해 모습(출처: 스브스뉴스)




꼬리 위험이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인 확률은 정규 분포를 따르지만 평균에서 멀어지는 특이 값을 가질수록 빈도 수가 감소한다. 즉, 꼬리가 얇게 되는 것이다.

꼬리 부분의 사건들은 발생 확률이 매우 낮지만 한 번 발생하면 큰 충격을 야기한다. 인생에서 꼬리 위험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지만, 꼬리 위험을 겪는다고 모두가 같은 수준의 피해를 받는 건 아니다.




삶의 지혜라는 건 경험에서 나오지만 반복되는 실수를 통해서도 달라지지 않는 건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결국 경험이 지혜가 되기 위해서는 그 경험을 자신의 신념과 의지로 승화시키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얻어 가는 것이 쉬웠던 인생은 잃어버리는 것도 쉬운 법이다.




스크린샷 2025-03-11 오후 3.01.20.png ※기적을 경험한 마을 사람들이 와무라 촌장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와무라 촌장을 기리기 위한 비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두 번 있었던 일은 세 번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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