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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책담 Aug 21. 2023

거미줄

  며칠 전 오후 9시쯤 아들과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데 아들이 집 앞에 있는 가로등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가로등과 전깃줄을 기초로 삼아 커다란 거미줄을 있었다. 거미줄 바로 위가 가로등이 있어 불빛에 거미줄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게다가 높은 가로등 전등 근처에 있어 아주 긴 막대가 아니고선 제거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어서 거미가 마음 놓고 크게 거미줄을 완성시켰을 것이다.  



  처음에는 거미줄의 크기와 견고함에 신기함만 간직했는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로등의 밝은 불빛이 거미가 살아가기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거미가 낮에 열심히 거미줄 공사를 하였는데 밤이 되고 보니 바로 위에 밝은 빛이 켜져 낭패를 본 것일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헛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열심히 했지만 쓸데없는 일도 많고, 하면서도 이 일이 쓸데없다는 것을 알지만 해야 된다고 하기에 억지로 한 일도 많다. 물론 쓸데없는 줄 알고 했는데 돌이켜 보니 의미가 있는 일도 꽤 많았다. 나의 삶은 의미 있는 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내 삶은 보석으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쓸데없는 일과 의미 있는 일 그리고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들이 뒤섞이고 다시 덧붙여지면서 채워지고 있다. 헛발질한 나의 삶을 보며 저 거미도 그랬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 지난밤에 보았던 거미줄이 생각났다. 그 가로등을 올려다보니 밤에 보았을 때는 인식하지 못했던 거미의 존재가 선명하게 보였다. (밤에 찍은 사진 속에는 거미가 보였지만 그때는 거미줄만 기억에 남았었다.)  커다란 거미줄에 걸맞게 거미의 크기도 상당했다. 거미의 위치도 그때와 거의 변함이 없었다. 같은 위치에서 꿋꿋이 먹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미가 밤에 불빛이 있어 낭패를 본 것이 아니고 밤에 벌레들이 불빛에 모여드니 가로등 불빛을 이용한 것이었다. 거미로서는 최적의 장소를 택한 것이다. 먼저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장소에 터를 잡았고, 밤에는 빛으로 벌레가 유인되는 곳이니 먹이도 풍부할 터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거미를 하찮은 미물로 보고 잘못된 장소라고 비웃었다. 



  거미들도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한다. 하물며 사람들은 어떠할까. 그래서 모든 삶은 우습게 보일 수 없다. 오히려 너무나 영악하여 눈살 찌푸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의 삶을 나의 잣대로 재면서 평가하고 이야기한다. 이제까지 장사를 한 적도 없으면서 주택가 한 복판에 책방을 낸 것을 보고 많은 지인들이 우려를 했다.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아직도 큰 매출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좋은 생각일 것 같아 막상 해보니 쓸데없었던 일도 많았다. 독서모임을 만들었는데 회원이 모이지 않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적도 있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수를 늘리고 싶지만 모든 일이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하루를 마치고 돌아서며 이런 내 모습이 한심해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남들 보기엔 쓸데없을 수도 있고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오늘도 가로등 아래 거미처럼 나는 꿋꿋이 책방 문을 열고 어떻게 하면 여러분과 함께 책을 읽을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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