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 관계 이해하기
주식판에 오래 있다 보니, 종종 목표 수익률이 얼마인지 질문을 받곤 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라고 했던가. 주식 투자 초년병 시절에는, '연평균 100%입니다'라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잃지 않고 두 자리대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직접 몸소 체험하고 난 이후부터는 '10% + α' 수준으로 소박하게(?) 변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창 투자에 피치를 올릴 무렵, 08년 금융위기를 만났다.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대폭락장의 한가운데에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과연 목표 수익률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떤 해는 증시가 활황이라서, 딱히 잘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수익률이 100% 가까이 났고, 또 08년 같은 해는 아무리 용을 써도 마이너스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즉, 목표 수익률은 나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달성할 수 없는 요소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목표 수익률 따위는 없습니다.'라고..
투자 수익을 함수로 표현하자면 아마 대략 다음과 같은 형태가 될 것이다.
R = f(자산가치, 수익가치, 금리, 유동성, 심리, 주가 모멘텀.......)
여기에서 R은 투자수익이고, f는 함수며, 자산가치, 수익가치 등은 투자수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다. 과학 실험에서 자산가치, 수익가치, 금리 등 원인에 해당하는 요인들을 독립변수라고 부르고, 투자 수익처럼 결과에 해당하는 요인들을 종속변수라고 부른다. 위 투자 수익 관련 함수를 누군가가 알아낸다면 주식의 신(神)이 되겠지만, 사실상 불가능의 영역이다. 심지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독립변수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다만 정확한 함수는 모를지라도, 특정 변수가 투자수익과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정도는 통계 분석 혹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장기적으로 EPS가 증가하면 주가 역시 상승함을 우리는 안다. 단지 상승의 크기를 모를 뿐이다.
투자 얘기를 하는데, 굳이 함수를 들먹이는 이유는 다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투자 수익률을 통제할 수 없다. 투자 수익률은 독립변수(원인)가 아니고, 종속변수(결과)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없는 요소를 목표로 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를 넘어, 투자 자체를 망칠 수 있다.
올해 목표 수익률을 20%로 잡았다고 치자. 코로나 여파로 3월 같이 폭락장을 만나고, 포트폴리오가 반토막이 났다면? 수익 20%는 고사하고, 본전만 해도 감지덕지일 것이다. 그런데 분위기는 급변해서 이제는 언택트 위주로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성장주가 듬뿍 담긴 포트폴리오라면 이미 손실을 다 회복하고, 수익이 상당히 발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포트폴리오에 가치주만 잔뜩 있다면? 아마도 손실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갈아엎을 것인가? 그리고 그게 과연 장기적인 투자 성과를 위해 바람직한 것인가?
사람마다 제각각 투자 전략을 가지고 있다. 투자전략이란 주가를 상승시키는 요인 (즉, 위 함수 식에서의 독립 변수)들을 활용하여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EPS 증가가 주가 상승을 견인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EPS가 증가할 기업을 찾는 것이다. 자산가치가 주가를 견인한다고 믿는다면 현금이라 유형자산을 많이 보유한 저 PBR 기업을 찾을 것이다. 그 어떤 전략이라고 해도 우리가 포커스를 맞춰야 할 것은 (EPS나 자산가치 등의) 독립변수를 최대한 정밀하게 분석, 통제하는 일이다. 우리의 분석이 치밀하면 할수록 투자 수익을 발생시킬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투자 수익의 크기는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투자 전략마다 투자 지평이 다르다는 점이다. 즉 투자 성과가 발현되는 기간이 투자 전략마다 다르다. 통상 저 PBR 베이스의 자산주는 투자 지평이 길어야 한다. 몇 년 동안 주가가 꿈쩍하지 않다가 한순간에 특정 촉매를 계기로 시세를 분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연간 단위로 수익률 성과를 시장 수익률과 비교하다 보면 멘털이 붕괴되기 십상이다. 시장 수익률 혹은 본인이 설정한 목표 수익률을 맞추려고 투자 전략을 바꾼다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정리하자면 투자 수익률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장 수익률, 타인의 수익률, 본인 스스로가 정한 투자 수익률 등 그 어떤 수익률이라도 마찬가지다. 투자 전략마다 성과가 나오는 시점이 다른데 특정 시점을 끊어서 수익률을 비교하면서, 자만심을 갖거나, 열등감을 가지는 등 감정 소모를 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성과가 안 나온다고 투자 전략마저 손바닥 뒤집듯이 바꾼다면 최악이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하고 난 뒤,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본인에게 맞는 투자전략을 세우고 뚝심있게 밀고 나가다보면 장기적으로 시장 수익률을 초과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기에, 지금 이순간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과연 본인의 투자 전략은 무엇인가?' 만약에 여기에 대답할 수 없다면,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이 생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