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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우 Jul 23. 2020

다시 시작되는 길

비 오는 아침, 구본형 선생님을 추억하며

비 오는 아침이다. 오랜 만에 길을 나섰다. 늘 매는 가벼운 배낭에 물 하나 과일 하나 초코바 두 개 넣고, 늘 신는 신발을 신고 가볍게 나선다. 이제는 익숙할 만도 한데 걷기 위해 나설 때에는 변함없이 자그만 설레임이 발끝에서부터 시작된다. 걷는다는 것은 나에게 자유로움을 찾아 스스로 나섬을 의미한다. 가볍게 하지만 신중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시선을 멀리한 채 내면을 응시하며 천천히 걷다 보면 나의 심상은 차분해지고 내 마음 속을 누르고 있는 삶의 무거움이 하나씩 하나씩 덜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나만의 걷기 명상이다. 나의 목적지 아니 경유지는 월드컵 공원 내 일주 길. 약 6킬로미터 정도 되는 그 길을 홀로 천천히 걷는 일은 치열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온전히 나를 돌아보는 나만의 세례 의식, 씻김 굿이다.


어린 시절 나는 많이 걸었다. 튼튼한 나의 두 다리는 그 시간의 결과인 것 같다. 특히 보이스카웃을 하면서 야외 캠핑을 많이 다녔는데, 그 때 시골길 혹은 산길을 참으로 많이 걸었었다. 가끔씩 산악 종주도 했었고, 지도와 나침반만 들고 산 속에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오리엔티어링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야외에서 길 찾고 숙박하고 생활하는 것에 상당히 익숙해 질 수 있었다. 야외에서의 자유로움,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느낌. 노마드적인 떠남과 귀향,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그 때의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몸에 스미게 된 나의 코드인 것 같다.


일주 길 옆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으로 이어지는 언덕에는 처음의 난지도 쓰레기 산을 숲으로 바꾸어 준 위대한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있다. 매년 무럭무럭 성장하는 건강한 존재들, 처음 공원이 조성될 때에는 갓 옮겨 심어져 자그맣고 수줍게 서 있더니 이제는 제법 크게 자라나서 공원을 지키는 당당함을 온 몸으로 드러낸다. 이 나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가장 버림받고 비천한 장소를 가장 건강한 터로 탈바꿈 시켰다. 쓰레기 산에서 숲이 울창한 공원으로의 위대한 탄생이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썩은 쓰레기가, 가장 비루한 것의 액기스가 도리어 나무에게는 가장 좋은 양분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쓰레기 산 같은 척박한 곳은 아니었으나 그리 유복하지는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나는 수줍고 조용하고 겁이 많았다. 집은 그냥 먹고 살 정도, 그나마 있던 집도 국민학교 5학년 때 갑자기 할머니 집으로 이사하면서 없어졌다. 이유는 몰랐다. 그리고 이어지던 약국에 딸린 단칸방 시절, 방 하나에서 부모님과 동생들과 함께 잤고 나는 장남이라는 이유로 모두의 머리맡에서 그들과 직각으로 누워서 벽을 보고 누워 잤다. 힘들었지만 가족을 사랑했고, 열심히 공부했다. 성당에 열심히 다녔고, 보이스카웃에서 말하던 ‘일일일선’의 정신과 레지오에서의 수 많은 화살기도와 선행의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하루에 좋은 일을 많이 하려고 애썼던 기억들이 난다. 힘들었지만 노력했던 기억들, 이것이 나의 삶의 토양이 되어 주었다. 그것을 양분 삼아 나는 나무와 같은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걷다 보니 후두둑 후두둑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가 올 것을 예상하고 아니 일부러 비를 맞으며 걷고 싶어서 나선 길이니 떨어지는 빗방울이 도리어 반갑다. 우비를 입고 가방은 방수 커버로 둘러싼다. 비가 예보되어서인지 일주 길에는 사람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비가 거세지더니 굵은 빗줄기가 바람에 실려 내 몸을 때린다. 맞으면 아프게 느껴질 정도로 세게 내리치는 비를 맞으며 걸어가니 관리사무소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웬 천연기념물 보는 듯한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자 갑자기 예전에 대학 1학년 때 혼자 나섰던 우리 땅 순례길이 생각났다. 약 한 달 동안 국내 여기저기를 걸어서 돌아다녔는데, 그때도 맞으면 아플 정도로 쏟아 붇는 장대비를 맞으며 걷던 중 논에서 김매기 하시던 아저씨가 나를 뚫어져라 오랫동안 쳐다봤던 기억이 났다. 그 때만 해도 간첩 사건이 뉴스에 나오던 시절이니 그 아저씨가 외지인인 나를 유심히 쳐다본 것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내 인생에도 비바람이 많았다. 쉽게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누군들 그러하지 않으랴만 유달리 끊임없이 미끄러져 넘어졌다. 학위가 그랬고 사랑이 그랬다. 회사 생활이 그랬고 가정이 그랬다. 가끔은 놓치기도 했고 때로는 놓임을 당하기도 했다. 붙잡고 있으나 놓은 것만 못한 것도 있다. 붙잡지 않으려 했는데 붙잡게 된 것도 있다. 앞으로도 수없이 미끄러지고 넘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미끄러짐에도 지금 돌아보면 꽤 많은 것을 이루었다. 다행히 빗길에 미끄러졌을 뿐 내가 발 디딘 곳이 돌아나올 수 없는 늪은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내가 앞으로 발을 디딜 곳도 늪만 아니라면, 늪만 피해갈 수 있는 혜안이 있다면 어디에서든 미끄러지고 넘어짐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넘어지는 횟수만큼 일어섬의 미덕을 깨닫고 때로는 도리어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길이라면 더욱 기꺼이 즐겁게 미끄러질 수 있을 것이다. 미끄러짐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아주 유용한 방법론이므로. 오만하지 않게 낮은 곳에서 나를 추스리고 무게 중심 낮추고 힘 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지혜를 주므로.


걷던 중 땅에 붙을 듯 낮게 깔려 갑작스러운 비를 뿌리던 두꺼운 구름이 걷히고 잠시 살짝 해의 기운이 느껴진다. 높은 구름이 있어 쨍 하고 내리쬐는 햇살은 아니지만 해의 존재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그런 부채살 같은 햇살이다. 햇살의 시기에는 만남이 생긴다. 밝아진 하늘과 만나고, 햇살에 그 존재가 선명히 드러난 풀, 나무들과 만나고, 지저귀는 새들과 나무 사이를 오가는 많은 동물들과 만나게 된다. 온갖 좋은 것들의 인연이 교차하는 시기에 운명적인 만남과 그로 인한 변화의 기운이 움트게 된다. 나는 그것을 느낀다.


돌아보면 운명적인 발걸음이 있다. 그 날의 내가 그랬다. 2009년 1월 23일의 갑작스러운 도서관행, 그리고 저자 검색 키워드 ‘구본형’, “어 책이 많네. 그 동안 많이 쓰셨네. 설 연휴동안 함 다 읽어볼까.” 10권 대출, 집에서 뒤적이다 숨가쁘게 읽어버린 <나는 무엇을 잘 할 수 있는가>, 마지막 페이지의 연구원 사진, 그 속에서 해 맑게 웃고 있는 이들, 그리고 선생님... 보기에 한 없이 좋았다. “연구원, 이게 뭐지?” 이어진 5시간의 변화경영연구소 홈 페이지 첫 방문 및 구석구석 검색, 운 좋게도 딱 1주일 남은 연구원 선발 마감일. 그리고 새벽 2시의 결심. “나도 해야겠다, 연구원.” 이어진 1주일간 설 연휴도 잊고 미친 듯이 써 내려간 25페이지의 나의 개인사. 그리고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던 한 달 간의 레이스, 최종 선발을 위한 면접여행, 그리고 이제는 나의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동기 연구원들, 그들과의 어울림, 매 주 해야만 하는 힘겨운 독서와 숙제, 숙제 제출 뒤의 신나는 번개, 한 달에 한 번 씩의 장시간의 오프수업, 동기와의 교감, 나와는 너무도 다른 경험으로 영글은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 경험과 살아온 방법은 다르지만 같은 곳을 지향하는 비슷한 기질의 서로에 대한 동감. 그 안에서 느끼게 된 나의 신화, 마음이 가는 영웅들의 역사적 사건, 나의 가장 큰 기억, 그리고 이것들을 통해 느끼게 된 내 안에 잠자던 새로운 나의 발견, '사슴개 조르바'. 이제는 안다, 그가 바로 자유롭게 달리고 싶은 나의 원형임을.


일주 길을 걷다 보면 많은 표지판들이 나온다. 여기저기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들. 예전에는 목표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일에 헤매고 또 불안해 했었다. 그러다가 내가 예전에 오리엔티어링을 했음을 기억해 냈다. 그래, 그 시절에는 표지판 없이도 지도와 나침반만 가지고 더 깊은 숲속도 뚫고 지나 갔었잖아. 표지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지도와 나침반이 중요한 거야. 그것만 있으면 어떤 험한 길도 너 갈 수 있었잖아. 낮에는 산 봉우리를 지침 삼아 밤에는 북극성을 가이드 삼아 너 어떤 길도 갈 수 있었잖아. 사회적으로 정의된 길이 아니라 내 마음의 기준과 목표가 중요한 것이야.


남의 기준으로 살아왔다. 나의 목표와 방향은 온통 사회적인 기준의 성공의 이정표로 채워졌었다. 그 이정표를 바라보고 걸었고 올랐고 미끄러졌고 때로는 엉금엉금 기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었다. 내 삶에 내가 없었다. 나에게 맞는 지도와 나침반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뭔가 끊임없는 배움을 추구했던 것, 배움의 시간 속에서만은 나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돌아보아도 유일한 나의 나다운 삶이었다. 나머지는 그들의 시각에서의 나의 생활, 즉 현실이었다. 처한 현실에 최선을 다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생활의 반복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지겹다.


나만의 방법으로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할 필요를 느낀다. 누가 뭐라하던 의식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은 채 나만의 기준으로 방향을 잡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걸아가는 삶. 가족을 사랑하며 절친들과 함께 뜻을 모아 작은 선을 매일 행하며 살아가는 인간적인 삶. 나의 스승 구본형 선생님께서 살아가셨던 그 길의 족적. 지금은 멀리 계시지만 그 뜻을 따라 옆에 계심을 느끼며 마음으로 함께 걷는 새로운 길... 이 길을 걸음으로서 나는 새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이미 그렇게 되도록 예정되어진 운명처럼.


먼 길을 돌아 걷다보니 일주 길의 시작점에 다시 섰다. 아쉬워서 한 바퀴 더 걷기로 했다. 그런데 같은 길임에도 느낌이 처음과는 다르다. 길도 나무도 그대로인데 새로운 느낌이다. 거센 비에 모든 것이 씻겨서일까? 아니 씻긴 것은 길뿐 만이 아니다. 길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씻겨 있다. 새로이 한 발을 내딛는다. 처음 길을 나설 때처럼 발끝부터 다시 설레인다. 아까와는 또 다르게 새로이 시작되는 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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