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1
작은 비행기는 이따금씩 위아래로 흔들렸다. 비행에 익숙하지 않은 아기들은 그때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창밖의 구름은 이제 땅에 펴진 솜처럼 보였다. 이어폰을 꽂고 낯익은 재생목록 하나를 선택했다. 고상지, 이랑, 무키무키만만수- 결국 2008년 석관동 어딘가에서 얇게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귀에서 흐르던 노래는 시노하라였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 주인공들이 찾아간 조용하고 신비로운 마을. 고조에 다녀온 게 벌써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한때 무키무키만만수에서 장구를 치던 만수는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음악감독이 되었다. 나 역시 그만큼의 시간을 건너 제주에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 돌, 바람, 그리고- 파란색 바다.
버스로 한 시간을 꼬박 넘게 달려 종달리에 내렸다. 차 두 대가 간신히 지나갈 만큼의 길 곳곳에는 우뭇가사리가 널려 있었다. 집마다 둘러진 낮은 돌담을 따라 갈대가 흔들렸다. 처음 와보는 동네였지만 설레기보단 이상할 정도로 편안했다. 이미 질리도록 노트북 화면 속 사진을 들여다본 탓이겠지. 앞으로 두 달 동안 나는 얼마나 더 익숙해지게 될까. 나의 집이자 일터가 될 이곳의 이름은 소심한책방이다.